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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데뷔40년 장항선, '뚝배기연기'로 안방 달구다>

<데뷔40년 장항선, '뚝배기연기'로 안방 달구다>



'팔봉선생'은 극 중 구일중(전광렬 분) 회장과 김탁구(윤시윤)를 비롯해 모든 인물이 닮고 싶어하는 장인이자 큰어른이다. 구일중과 서인숙(전인화)의 팽팽한 대립이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가운데 팔봉선생의 존재는 극의 무게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팔봉선생은 불우한 사람들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엉뚱한 면이 있어요. 김탁구도 그렇기 때문에 제자로 받아들여 인간교육을 하는데 그 점이 시청자들의 호응을 얻는 것 같아요. 사실 전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잘 안 해주는데 드라마에서는 좋은 말만 골라서 해주니 다른 사람 인생을 사는 것 같고 제가 봐도 멋진 것 같아요. 감독과 작가에게 고마울 따름이죠."
그는 함께 호흡을 맞추는 배우들에 대한 배려도 잊지 않았다.

   "좋은 배우들 옆에 있으니 제가 덕을 보는 것이지요. 전인화 씨, 전광렬 씨가 너무 잘해주잖아요. 무엇보다 전인화 씨처럼 예쁜 여성이 독한 연기를 하니 시청자들이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또 극 중 우리 제과점의 박상면 씨, 이한위 씨, 이영아 씨 등도 얼마나 재미있어요? 제가 재수가 좋은 거죠. 살다 보니 이렇게 좋은 날도 있네요."




팔봉선생이 빵을 만드는 모습을 보면 절로 군침이 넘어간다.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쓱싹쓱싹 만드는 손길을 보고 있으면 빵이 살아 숨쉬는 생명체같다.

   "제가 빵을 아주 좋아해요. 특히 단팥빵을 즐기죠. 우리 촬영장에서는 실제로 빵을 굽기 때문에 늘 빵굽는 냄새가 나고 빵을 하나씩 슬쩍 집어먹을 수가 있어 좋아요. 역시 빵은 오븐에서 바로 나왔을 때가 제일 맛있다는 것을 이번 촬영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느꼈어요.(웃음)"
'제빵왕 김탁구'에 앞서 그는 SBS TV '제중원'에서 의사인 아들의 성공을 위해 비천한 자신의 존재를 숨기려고 하는 늙은 백정의 처연한 모습을 절절하게 연기해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고, 그에 앞서 KBS 2TV '남자이야기'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채 회장을 연기하며 화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 2007년 MBC TV '태왕사신기'에서 고구려 오 부족 중 절노부족장 흑개 역으로 화제를 모았다. 대범하고 기개와 카리스마가 넘치는 흑개를 통해 그는 오랜만에 젊은 시청자들도 사로잡았다.

  




"'제중원'에서 백정을 연기하면서 한겨울에 짚신만 신고 눈밭에서 구르고 두들겨 맞는 연기를 했는데 다행히 동상에는 안 걸렸어요.(웃음) 험한 촬영을 했는데 시청자들이 백정 아버지의 삶에 공감해주셔서 '말년에 내가 참 행복하구나' 느꼈어요. 그에 앞서 '태왕사신기'의 흑개를 만나면서 제대로 된 역을 맡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 이후 계속 좋은 역을 맡게 되니 감사하죠."
1970년 KBS 공채 탤런트 9기로 출발해 올해로 연기 인생 만 40년을 맞은 그는 그간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개성 있는 연기를 선보였다. 1991년 MBC '여명의 눈동자'에서 치 떨리는 악역을 비롯해 SBS '모래시계'와 영화 '왕의 남자' '차우' 등은 그의 연기인생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대표작이다.

   그러나 본인은 스스로에게 박한 점수를 매겼다.

   "젊었을 때는 속된 말로 빵을 구하려고 연기를 했어요. 제가 옛날에는 사실 심심했잖아요. 젊었을 때는 잘 나가는 동료가 아팠으면 하고 바랬던 적도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내가 아프면 안 되게 됐어요. (웃음) 드라마에서만 활동하던 제가 본격적으로 영화로 옮겨간 것은 1998년 김기덕 감독의 '파란 대문' 때부터였어요. 드라마 PD들이 저를 잘 안 불러주던 시절 김기덕 감독이 기회를 줬고 그 영화를 통해 '아 이렇게 생긴 사람도 영화를 할 수 있구나'라는 인식을 영화인들에게 심어줬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영화를 많이 하게 됐죠."
그는 "그런데 열 사람 중 영화를 보는 사람은 두 사람이고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여덟 사람이더라"면서 "인기를 먹고사는 장항선은 아니지만 다시 드라마를 통해 내가 죽지 않고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제 내가 연기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몇번 안 남은 기회를 진솔하게 소화해내고 싶다"고 힘줘 말한 그는 배우 김희라의 아버지인 왕년의 명배우 김승호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지금도 김승호 선생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은데 못되고 있어요. 배우 중에 그런 분을 닮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제 연기에 대한 평가는 보는 분들이 해주시는 것이지만 김승호 선생님을 떠올리면 늘 겸손해지게 되네요."
pretty@yna.co.kr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10/07/11 08: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