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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출세주의·기회주의 리더십 시대는 갔다”

“출세주의·기회주의 리더십 시대는 갔다”

시사INLive | 이숙이 기자 | 입력 2010.07.09 10:19 | 수정 2010.07.09 10:27 |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에서 부결된 6월29일, 본회의장에서 유독 카메라 세례를 받은 두 사람이 있다. 한 명은 단상에 올라 '작심하고' 이명박 대통령에 반기를 든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이고, 다른 한 명은 방청석에서 이 과정을 지켜본 민주당 소속의 안희정 충남도지사 당선자다. 안 당선자는 "간밤에 조마조마했다. 차라리 여기라도 앉아 있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 올라왔다"라고 말했다.

투표 결과가 나온 후 두 사람의 표정은 밝았다. 'MB 견제'라는 단기 과제에 의기투합했고, 성공한 셈이다. 하지만 표결 직후 이뤄진 < 시사IN > 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안 당선자는 '아듀 박정희'를 유독 강조했다. 그에게 세종시 문제를 푸는 것과 차기 리더십의 문제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안 당선자는 7월1일 정식 취임식을 거쳐 이제 '안희정 지사'가 되었다.







ⓒ시사IN 안희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됐다. 소감은?

되게 기쁘다. 저의 가장 큰 공약이 취임도 하기 전에 해결됐다.(웃음)

+α 논쟁이 다시 시작됐다. 원안으로 가면 세종시는 황폐화된다는 게 수정론자들의 주장이다.

정말로 그분들이 걱정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α는 정치권이 만든 거고, 원안에 행정부처 이전과 교육과학벨트 조성이 다 들어 있다. 그대로만 추진하면 된다. 문제는 그걸 또 지연시키려고 사보타지하는 거다.


투자나 이전을 약속했던 대학과 기업들이 철회하겠다고 한다. 도지사가 설득에 나설 건가?


세종시 건설의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그리고 이미 자치단체장의 권한을 특별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의 청으로 이관해 놓았다. 대통령은 법을 준수한다는 게 취임 선서문에 있다. 그래서 세종시를 제대로 만드는 데는 대통령과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강조하는 것이다.

인수위 보고를 받으면서 충남에서 가장 절실한 게 무엇이라고 생각했나?

가장 중요한 것은 분권 역량을 보장해주는 일이다. 분권 역량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권한을 주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 권한을 실행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방재정 문제는 본질적으로 손을 봐야 한다. 헌법에 명시된 지방자치의 정신을 지키려면 지금처럼 모든 예산에 꼬리표가 붙어 있는 지방재정으로는 어림없다. 선출직 단체장을 뽑는 의미가 없다.

예산에 꼬리표가 붙어 있다는 게 무슨 뜻인가?

서울 등 일부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다수 지자체가 국고보조금 아니면 예산이 채워지지 않는다. 재정자립도가 대부분 20%, 많이 되어야 30%다. 나머지 70%는 국고보조금이나 일반 교부금으로 충당하는데, 내국세의 18.9%에 해당되는 당연직 교부금을 제외한 나머지 50% 정도는 각 부처의 사업을 정부가 계획한 후 거기에 조건들이 붙어서 내려온다. 그런 '재정 자주도'를 가지고는 선출직 단체장이 자기 역량을 발휘하기 힘들다. 세법과 지방재정에 관한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 다른 지역 단체장들과 긴밀히 협조해서 지방자치 정신에 맞는 토대를 마련하겠다.

법만 바꾸면 되나?

그렇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18.9%의 교부세 관련 규정을 20~30%로 올리고, 그만큼 중앙정부는 자기 업무를 덜어내면 된다.







ⓒ뉴시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왼쪽)가 '좌희정'의 첫 번째 공직 취임을 축하했다.

충남에 특히 절실한 문제는 무엇인가?

저출산 고령화의 현실이 가장 위협적인 요인이다. 충남의 경우 군 단위는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30%에 이른다. 대도시 평균인 7~8%에 비하면 엄청나다. 두 번째로 충남이 농업 지역이니까 농업 문제에 매달려야 한다. 답이 없더라도 매달려야 한다. 농업 분야에서 선진국이 되지 않고 어떻게 선진국이 되겠나. 이 문제는 보조금이나 예산 배분만 가지고는 풀 수가 없다. 그래서 선거 과정 내내 이렇게 말했다. "저도 지금은 답이 없다. 하지만 외면하지 않겠다." 국가 예산 가지고 서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그런 속임수 말고, 정말 진지하게 우리 지역과 국가 발전을 위해 어떤 농업 정책을 펴야 할지 고민하겠다.

다 어려운 문제다. 단순히 성장이냐 복지냐를 논할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나의 도전과 승리는 성장이냐 분배냐, 좌파냐 우파냐 식의 20세기식 구분으로는 설명하기 힘들다. 오히려 저출산 고령화, 농업, 환경, 아이들 교육 문제 등 지금 충남과 대한민국이 처한 문제가 그동안의 리더십 가지고는 더 이상 답을 낼 수 없다고 봐서 (도민이) 리더를 바꾼 것 아닐까.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한 대표 정책은 뭔가?

어떤 영역의 사업을 먼저 시행해야 연쇄 파급 효과가 클지 고민 중이다. 옛날 우리 부모님은 맏이만 잘 키우면 동생들은 잘 따라온다 해서 맏이에 집중했다. 그런 것처럼 맏이가 되는 사업이 뭘까를 연말까지 검토해보겠다.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서 벽돌을 쌓는 게임이다. 내 임기 중에 다하겠다는 욕심 부리지 않고 다음 사람이 그 아래 벽돌을 허물지 않을 만큼 튼실한 토대를 쌓는 데 치중하겠다.

핵심 정책을 연말까지 고민한다면 너무 늦게 출발하는 것 아닌가?

철저히 준비해서 4년 동안 우리 지역사회와 지방정부가 바뀌었다는 움직일 수 없는 전기를 마련하는 게 중요하지, 한 방에 뭘 바꿔보겠다고 하는 게 개혁은 아니다. 어떤 밥상이든 간장 종지나 김치는 다 들어간다. 그런데 갑자기 모든 걸 다 바꾸겠다면서 간장 그릇 다 비우고 김치 다 다시 담고 그렇게 요란 떨 필요가 있나? 중요한 건 메인 메뉴를 어떻게 선보이느냐다. 그런 면에서 천천히 가자는 것이다. 요란하지는 않으나 가장 강력한 변화를 가져올 자신이 있다. 다만 그 사이에 지방정부는 스스로 혁신하려 노력해야 한다. 지방정부와 행정 영역이 이런 모든 변화를 끌고 나가야 할 주동세력이니까. 이제는 행정 영역이 '나 믿고 따라와'가 아닌 '우리가 함께해요'라는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주민과의 사이에 신뢰가 생기고 힘이 모인다.

이완구 전 지사 시절에 성과가 상당했다는 평이다. 계승할 것, 차별화할 것을 정했나?

충남이 지역 총생산으로는 전국에서 1, 2등을 다투지만, 우리 충남 사람들 주머니가 실제로 얼마나 넉넉해졌느냐를 따지면 전국 8위다. (전임 지사가 열심히 홍보한) 기업 유치 실적이 실제 충남도민의 수입과는 별 상관이 없다는 얘기다. 충남 인구의 30%가 농업 인구다. 농업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세우지 않고 기업 유치로 해결하려는 건 한계가 있다. 따라서 그건 그것대로 추진하되 내실을 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지자체는 기업 유치를 최우선 순위로 내세우는데….

정부 역할이 기업 유치하는 건가? 기업을 위해 제일 좋은 건 정부가 방해를 하지 않는 거다. 두 번 째는 기업이든 노동자든 공익적 약속을 잘 지켜내는지 관리·감독하는 거고. 정부가 정말 필요한 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다. 내버려둬도 잘나가는 기업을 위해 정부가 예산과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이 있어도 진입장벽 때문에 밀리는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있는 거다. 괜히 정치인들이 거기에 끼어들어 자기 실적을 내려고 하는 건 좋은 정치가 아니다.

4대강 사업에 대해 '전면 중단'에서 '보와 준설만 빼면 찬성' 쪽으로 바뀌었다. 달라진 건가?

4대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게 준설과 보다. 이 대통령은 강바닥 파고 댐 쌓아 물을 가둬놓으면 물 부족 문제가 해결된다는 단순 논리를 펴고 있고, 반대자들은 "그래서 썩은 물 가둬놓으면 뭐하려고?" 이런 거다. 이 쟁점을 두고 정부는 국가하천 관리하는 건 중앙정부 업무니까 시장·도지사 너네는 손떼라 하지만, 지역 주민이 걱정하는 사안이니까 그걸 대표해서 문제 제기하는 건 지방정부의 의무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걸 당장 내일부터 물리적으로 막겠다는 것도 국민이 바라는 바는 아닐 거다. 국민이 원하는 건 문제의 해결이지 당장의 멱살잡이가 아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서로가 뭘 걱정하는지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논의해야 한다. 적어도 3계절 이상 변화의 추이를 보자고 한 환경영향 평가를 단지 3~4개월에 끝냈다는 지적에 대해 정부가 답을 줘야 하고, 각종 문화재 관련 지표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았다는 지적에도 정부는 부응해야 한다. 나는 4대강이 무조건 잘못된 사업이라고 전제하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많은 사람이 걱정하고 있고, 정부가 중요한 국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법과 규칙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것, 여기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로 486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시각이 있다. 동의하나?

(486 단체장이 선출된 건)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지 요란 떨 일이 아니다. 어렸을 때 제사상 옆에서 밤 깎아놓은 것 얻어먹던 아이가 조금 지나면 주전자 들고 (술을) 따르고, 조금 더 지나면 제주가 되지 않나? 다만 이번 제주가 지난번 제주와 다른 점은 리더십이다. 지난 제주는 박정희식 리더십을 지녔다. 이명박 대통령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리더십은 식민지 거치고 전쟁 거치고 밥 세 끼 못 먹는 절대적 생존의 고통을 겪었던 리더십이다. 합리적 토론이나 이성보다 우격다짐에 능하고, 뒤틀린 식민지 역사를 통한 자기부정, 패배감에 휩싸여 '이기는 게 장땡'이라는 출세주의와 기회주의 역사관이 그대로 반영된 리더십이다. 이게 민주화 이전 모든 나라의 일상적 리더십이었다. 똑똑한 사람이 끌고 가야 한다는 리더십, 그래서 잘하면 철인정치가 되고, 못하면 독재자가 됐다. 완전한 복불복 게임을 국가 운영의 리더십으로 채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 세대는 식민지를 극복한 어엿한 자주독립 국가로서의 대한민국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온 세대고, 전쟁을 극복하고 평화 시대를 살아온 세대, 유년 시절에 역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나눔과 공동체 의식을 보고 배우면서 시민의식을 함양해온 세대다. 이제는 이런 세대가 이끄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역량을 가지고 이끌어보려 했지만 대한민국은 그를 아마추어 지도자라고 했다. 마치 물정 모르는 초임 선생님이 자율학급을 선언한 정도의 아마추어적 리더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다시 증명하고 있다. 호랑이 학생과장님의 리더십으로는 절대 군기가 잡히지 않고 모든 사람이 불행해진다는 걸. 그래서 더 많은 국가적 비용을 초래한다는 걸. 그렇다보니 다시 우리 세대가 이끄는 기회가 왔다. 그래서 민주적 리더십이 핵심이다. 대화와 소통의 리더십.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결론 정해놓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자기도 여럿 중의 하나로 내려와서 토론하는 것.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 기간 내내 '아듀 박정희'란 단어를 주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그만큼 부담도 크겠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또 반동이 있을 수 있지 않나?

역사에서 반동이나 후퇴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더 이상 박정희·전두환이 나올 수는 없다. 따라서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높이 갖긴 해야겠지만, 천지개벽할 변화를 이루겠다는 중압감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왜냐하면 그건 지도자가 만드는 게 아니라 국민이 만드는 것이기에.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이 요구하는 만큼만 가도 훌륭하다. 뭔가 자기가 새로운 걸 끌고 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든 핵심 참모였지만, 공직은 이번이 처음이다. 소감이 남다를 듯한데.

겁먹지 않고 담대하게 가려 한다. 오바마가 왜 '담대하다'는 단어를 썼을까 싶었는데, 그 인생을 보면 아버지도 없고, 유색인종이고, 그러면서 빈민운동하고 그랬더라. 전환기에 있거나 새로운 질서를 만들려는 사람들은 이처럼 무모한 듯, 그러나 간절한 마음으로 자기 양심에 따라 그 길을 걸어나가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본다.

행정 경험이 없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기도 한다.

경험은 그 자체가 보수적이다. 그러나 새로운 현실과 새로운 미래는 과거의 답습으로는 안 되니까 도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새로운 도전과 변화를 일으키라고 선택된 사람한테 경험 없다고 얘기하는 건 잘못된 대구다. 경험에 주눅 들지 말고 자기가 도민으로부터 요구받고 있는 현실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보면 충분히 길이 있다.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야권에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위한 전환점이 된 건가?

첫 번째는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 시대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졌다. 잃어버린 10년이 아니라 진보한 10년이었다. 망가뜨린 10년이라고 생각했다면 어떻게 안희정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었겠나? 두 번째는 '아듀 박정희'다. 박정희 시대의 극복이다. 이제는 더 이상 박정희 시대의 산업정책, 리더십, 대국회관, 대시민관 가지고는 민심을 얻을 수 없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다. 다음 민주당 지도부는 어떤 리더십을 지녀야 할까?

적어도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역사적 정통성과 정체성이 있어야 한다. 또한 '아듀 박정희'를 이끌어갈 시대적 비전과 철학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민주당, 새로운 진보 진영이 될 것이다. 더 이상 국민을 진보와 보수로 나누려 하지 말고, 모든 국민에 어필할 수 있는 비전을 보여야 한다. 어느 주방장이 "이건 특정한 사람들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라며 음식을 만들겠나. 모든 사람이 먹길 바라며 음식을 내놓는 거지.

이숙이 기자 / sook@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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