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켓 생태계/Contents Technology

대중문화 속 유전공학의 진화 ‘멋진 신세계’부터 ‘아바타’까지

대중문화 속 유전공학의 진화 ‘멋진 신세계’부터 ‘아바타’까지 2010년 06월 22일(화)

미국의 세계적인 유전공학자 크레이그 벤터(Craig Venter)박사는 지난 5월 21일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인공합성세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벤터 박사는 ‘A’라는 박테리아의 지놈(Genom, 박테리아 전체 DNA 집합)을 인공적으로 합성한 뒤, 자체 지놈을 제거한 ‘B’라는 박테리아에 이 인공지놈을 주입, 인공합성세포(박테리아)를 발명했다.

벤터 박사의 연구결과는 인간이 최초로 인공적으로 생명체를 만들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이는 앞으로 박테리아와 같은 미생물 수준이 아닌, 조금 더 진화된 진핵세포 수준의 인공생명체를 만들 수 있는 날이 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렇게 초보적이긴 하지만 인간이 신의 영역인 생명체를 만들어내는데 성공할 만큼 유전공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어느 새 대중문화에서도 유전공학을 코드로 한 작품들이 다양한 모티브로 진화했다.

생명창조 단계까지 진화한 유전공학

‘The Fly’ 라는 영화는 한 천재 과학자가 파리로 변해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은 공간이동을 가능케 하는 기계를 발명한다. 주인공이 발명한 공간이동기계의 핵심기술은 분자수준(Molecular Level)에서의 물질 재구성이다. 즉 이 공간에 있는 물질의 분자를 저 공간으로 전송해 재구성하는 기술이다.

▲ 파리유전자와 인간유전자가 합성된 공간이동기계 
주인공은 스스로 실험대상이 돼서 공간이동 실험을 하는데 우연치 않게 공간이동기계에 파리가 들어오게 된다. 결국 주인공과 파리가 기계 안에서 분자수준으로 재구성되면서, 파리 유전자와 주인공의 유전자는 서로 유전적 합성(Genetic Synthesis)이 이뤄진다.

즉 주인공은 인간이지만 파리의 유전자를 같이 가지는 변형 유전자를 지니게 되고, 이 후 주인공은 파리 유전자의 발현(Gene Expression)에 따라 점점 파리인간으로 변해간다.

이 영화에서처럼 파리 유전자와 인간의 유전자가 서로 합성됐을 때 파리의 유전 형질이 발현되는 것은 결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유전공학이라고 말하는 생명공학 기술을 이용해, 인간 인슐린을 생산할 수 없는 대장균(E.coli)에 인간 인슐린 DNA를 주입(Transformation)하면 대장균 내에서 인슐린 생산을 가능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공학의 시발점은 1953년 프란시스 크릭(Francis Crick)과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의 DNA 이중나선구조 발견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크릭과 왓슨의 발견 이후 60여년이 세월이 흐른 2010년, 유전공학 기술은 신의 전유물이라고 여겨지는 생명창조의 단계까지 진화했다.

유전공학의 고전, 올더스 헉슬리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유전공학을 모티브로 활용한 고전 작품이라면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꼽을 수 있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에서 유전공학적으로 열성 유전자와 우성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유전 계급 사회(Genetic Classified Society)를 그린다.

인공수정으로 실험실에서 배양된 신세계의 인간들은 태어날 때부터 감마/세미 엡실론/델타 마이너스/베타/알파 플러스 등 유전자의 우열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정해진다.

영화 가타카(Gataca)는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영화적으로 각색, 재구성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가타카의 사회 역시 태생부터 우성 유전자를 지닌 엘리트 계층과 열성 유전자를 지닌 하류 계층으로 신분이 정해지는 유전 계급 사회이다.

가타카는 ‘열성 유전 태생이어서 엘리트만 지원할 수 있는 우주 비행사가 될 수 없는 주인공’이 ‘우성이지만 장애이기 때문에 우주 비행사를 포기한 엘리트 계층’을 만나면서 겪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DNA를 구성하는 염기인 A, T, G, C를 구성해 만든 제목 GATACA는 유전자에 따른 열성계층과 우성계층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열성 유전자인 사람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수억 년 전 공룡의 DNA를 찾아라, 쥬라기 공원

멋진 신세계와 가타카가 유전 계급 사회의 모습을 그렸다면 영화 쥬라기 공원은 유전공학 기술이 어떻게 이미 멸종한 쥬라기 시대의 공룡을 재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쥬라기 공원 속 유전공학 기술의 핵심은 바로 멸종한 공룡의 모든 유전정보를 갖고 있는 공룡 DNA이다.

▲ 모기 혈액 속 공룡 유전자로부터 재현한 쥬라기 공룡 
쥬라기 시대 공룡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이 모기는 수억 년의 세월동안 호박 속에 갇혀 있다)로부터 공룡의 DNA를 추출해 내고 이를 바탕으로 공룡 DNA를 합성, 공룡을 만드는 것이 쥬라기 공원 속 유전공학 기술의 핵심이다.

쥬라기 공원에 등장한 이 기술은 사실 불가능한 기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서술한 벤터 박사의 인공합성세포에 응용된 기술이 이와 매우 유사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벤터 박사는 모기 속 공룡의 피에서 DNA를 뽑아 낸 것이 아니라, 화학적으로 DNA를 합성한 뒤 이를 생체(박테리아) 내에서 하나의 지놈으로 만들어 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쥬라기 공원에서는 공룡 DNA로부터 어떻게 공룡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하지만 벤터 박사는 합성한 인공 DNA를 자체 지놈을 제거한 세포(박테리아)에 이식함으로써 인공합성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밝혔다.

벤터 박사의 연구과정을 쥬라기 공원에 적용해본다면 쥬라기 공원의 과학자들은 모기에서 뽑아낸 공룡 DNA를 공룡과 유사한 파충류의 세포(지놈이 제거 된 세포)에 이식, 그 세포를 배양해 공룡을 만들었다고 유추할 수 있다.

100% 면역거부반응이 없는 복제인간·복제장기, 영화 아일랜드

쥬라기 공원이 DNA를 영화의 모티브로 활용했다면 영화 아일랜드는 복제배아 기술을 영화의 모티브로 사용했다. 개봉 당시 황우석 박사의 복재배아 기술과 맞물려 국내에도 적잖은 반향을 불어오기도 한 영화 아일랜드는 복제인간으로부터 원하는 장기를 얻어내는 복제장기 기술을 보여준다.

▲ 복제장기를 위한 복제인간을 인큐베이팅 하는 모습 
영화에서 복제인간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구체적인 설명은 없지만 당시생명공학 기술 상황을 고려해볼 때 배아줄기세포(Embryonic Stem Cell, 모든 장기기관으로 분화가 가능한 만능세포)를 활용했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인체의 면역반응(Immune System)은 자기 신체 이외의 모든 것을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자신과 똑같은 복제인간의 장기를 자기 자신에게 이식할 경우 면역거부반응이 전혀 없다는 장점이 있다. 아일랜드는 이 점에 착안 자기 자신과 유전적으로 동일한 복제인간을 만들어 복제 장기를 얻어내는 유전공학의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세계적으로 3D영화의 돌풍을 몰고 온 영화 아바타는 한 단계 진일보한 유전공학 기술을 선보인다. 아바타는 인간의 뇌파와 동일한 구조를 갖지만 외향은 나비족과 100% 동일하다. 이는 유전공학적으로 인간의 지노타입(Geno Type, DNA 타입)을 갖고 있지만 나비족의 피노타입(Phyno Type, DNA발현 타입)을 갖는 새로운 생명체로 해석할 수 있다.

왓슨과 크릭이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이후 유전공학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대중문화 속 유전공학도 더불어 진화하고 있다. 앞으로 유전공학 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얼마만큼 발전할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진진한 일이겠지만, 대중문화가 기술의 발전을 뛰어넘어 어떤 새로운 유전공학 기술을 모티브로 차용할 지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진진할 일이 될 것이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06.22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