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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이슈와 전망] 기업 경영의 해법 `인문학`

[이슈와 전망] 기업 경영의 해법 `인문학`

김신배 SK C&C 대표이사 부회장

독일 출신의 사회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현대의 인간 앞에 놓인 중대한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19세기에는 `신이 죽었다'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20세기에는 `인간이 죽었다'라는 것이 문제"라고 답했다.

이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자아를 상실하고 결국 사회에 종속된 부속품으로 전락해 버린 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소외된 인간에 대한 경고로서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인간성의 회복을 제시하고 있다.

기술의 발달과 경제고도성장으로 물질문명에 억압된 자아를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개인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최근 국내 사회 전반에 걸쳐 인문학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서점에는 인문학 서적이 연일 베스트셀러 코너를 차지하고 있고, 각종 인문학 강의가 넘쳐나고 있으며 TV속 광고에서도 사람을 중시한다는 인문학적 메시지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기업경영에서도 감지된다.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들은 직면한 정치,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문제의 해법을 인문학에서 찾기 시작했다. 文ㆍ史ㆍ哲(문학, 사학, 철학)로 대변되는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을 갖고자 인문경영을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과 인문학의 융합을 통해 아이폰, 아이패드와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출시하며 21세기 IT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애플의 경우 인문경영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애플 성공의 핵심인 혁신적인 UI(유저인터페이스), 기능, 그리고 디자인 개발의 배경에는 기술보다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기업철학이 있으며, 이를 통해 개개인의 다양한 감성적 욕구를 충족시켜 전 세계 소비자들로부터 사랑을 얻게 된 것이다.

IT의 발전과 더불어 지식정보사회의 가속화로 지식과 정보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속도로 쌓여가고 있지만 희로애락과 감성, 꿈과 철학, 아름다움과 욕망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은 거의 변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게다가 이성과 정보가 중시된 20세기와 달리, 21세기는 개인의 다양성과 경험이 중시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 없이는 혁신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 기술력보다 소비자에게 새로운 경험과 가치를 제공하는 능력이 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핵심요인이 되었다. 기업 경영인과 구성원들이 인문학적 소양을 쌓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IT 기술은 인간의 삶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끊임없이 개발돼 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기술이 사람을 향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기술을 좇는 형국으로 바뀌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자 우리의 삶은 점점 피폐해져 갔고 여유도 사라져갔다. 모든 것이 숫자로 결정되는 디지털 패러다임의 시대에 진심으로 `사람을 향한 마음'이 녹아있는 인문경영이 다시 기업 성공의 키워드로 부상한 데에는 인간본연에 대한 자존감 회복이라는 시대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필자가 몸담고 있는 회사 역시 인간중심의 경영 철학을 기반으로 성장해왔다. 공공, 금융, 통신분야에서 제공해온 수많은 IT 서비스는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이를 위해 소통 및 창의혁신 기업문화를 바탕으로 지속적인 인문경영의 실천을 통해 사람을 향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글로벌 IT기업으로의 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기업을 이끌어가는 것도, 그리고 그 기업을 둘러싼 환경을 구성하는 것도 모두 사람이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하고 고도로 산업화된 사회가 돼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바탕을 둔 인류의 삶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 중심의 인문경영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과 글로벌화에 따른 경쟁심화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진 작금의 경영환경 속에서 기업에 창의혁신을 이끌어내 지속적인 성장과 시장을 선도하기 위한 경영의 방향을 제시해 줄 것이다.

"기술은 기술 자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이용하기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인문학이 깨우쳐 주었다" 는 잡스의 말은 오늘날 우리 기업들이 곱씹어봐야 할 뼈 있는 대목이다.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