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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데스크라인] 한국의 스티브잡스를 키우려면

[데스크라인] 한국의 스티브잡스를 키우려면
기사등록일 2010.06.08
컨버전스팀장 jyajang@etnews.co.kr
올해 칸 영화제에서 한국영화 ‘시’와 ‘하하하’가 수상했다. 2편 동시 수상은 한국영화 사상 처음이다. 지난 2000년 ‘춘향뎐’이 경쟁부문에 첫 진출한 이후 10년 만에 겹경사다. 하지만 사람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기대했던 황금종려상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10년전, 칸 영화제 경쟁부문 첫 진출 자체로만으로도 흥분했던 모습과 비교하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그만큼 한국 영화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달라졌다.

한국영화의 변신은 눈부시다. 1990년대 초반, 할리우드 직배 영화에 반대해 상영관에 뱀을 풀어놓은 이야기는 이젠 전설로 들린다. 영화를 고르는 매표소 앞 풍경도 크게 바뀌었다. “한국영화는 돈 주고 보기 아깝다”던 젊은이들이 요즘은 “외국 영화는 재미없어”라고 말한다. 칸·베를린·베니스 등 국제영화제에서 수상도 이젠 흔한 뉴스가 됐다. 한국영화는 정말 영화같은 역전 드라마를 연출해냈다.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한국영화아카데미는 새로운 물결의 진원지로 꼽힌다. 엘리트 교육 논란이 없지 않았지만, 영화아카데미는 한국영화산업의 핵심 인물을 키워냈다. 영화감독으로 ‘괴물’ ‘마더’의 봉준호, ‘전우치’ ‘타자’의 최동훈 등이 그렇다. 촬영감독으로 ‘아름다운 시절’ ‘살인의 추억’의 김형구, ‘미술관 옆 동물원’ ‘주먹이 운다’의 조용규 등도 이 영화학교 출신이다. 프로듀서로 ‘범죄의 재구성’ ‘역도산’의 노종윤, ‘장화, 홍련’ ‘비천무’의 김영 등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성공 스토리는 우수한 젊은이들을 영화판으로 다시 불러 모았다. 한국영화산업의 인재 선순환을 만들어냈다.

지난 주 SW 최고 영재들을 육성할 ‘소프트웨어(SW) 마에스트로 과정 멘토단’이 출범했다. ‘SW판 영화아카데미’ 프로젝트가 닻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기대와 함께 만시지탄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수년전부터 고급두뇌가 필요하다는 말이 학계에서조차 제기돼 온 터이기 때문이다. 때 마침 지난 주에는 인도 간판 정보기술(IT) 업체 위프로테크놀러지가 한국에 상륙했다. 전세계 11만명의 IT 전문가를 보유한 이 회사의 한국 공략 첫 일성은 ‘인도 고급 SW 인력을 직접 공급하겠다’였다. 20여년전 할리우드 직배 영화의 먹구름이 SW판에도 무겁게 드리운 상황이다. SW 마에스트로 과정이 비록 늦었지만,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문제는 인재 양성은 지난한 싸움이라는 점이다. 수년내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지난 1984년 설립된 영화아카데미도 10년, 20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빛을 봤다. 영화진흥공사의 묵묵한 지원이 없었다면, 꽃을 피우기 힘들었다. SW 마에스트로 과정은 ‘아이폰 충격’에 부랴부랴 만든 ‘SW 강국전략’의 일환이다. 성과에 조급증을 낼 소지가 다분하다. 지금 우리 SW산업은 위기고, 탈출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다. 변방에서 중심으로 우뚝 선 한국영화가 그랬다. 조변석개(朝變夕改) 하는 정책으로는 고급 인재 양성은 결코 이룰 수 없다. 결국 사명감을 가진 정책 당국자들이 오늘의 성과보다 내일을 위해 흔들림없이 투자해야 한다. 지금은 신기루 같은 ‘한국의 스티브잡스’를 10년후에는 꼭 만나고 싶다.

장지영 컨버전스팀장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