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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치’의 좌충우돌 아이폰 구입기

기계치’의 좌충우돌 아이폰 구입기

  이여영 2010. 01. 28 (42) 삶/여가/책 |

아이폰 살까 말까?
-하루에도 몇 번씩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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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위약금에 좌절하다

지난해 11월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미국에서의 열풍이나 국내 아이팟터치 마니아들의 입소문으로 당장 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위약금이었다.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소비자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휴대폰을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2년 약정으로 무료 쿠키폰을 사용하고 있었다. 6개월만에 바꾸자면, 위약금을 36만원이나 물어야 했다. 그 돈을 다 물어주고 아이폰을 살 수는 없었다. 조금만 참기로 했다.

2. 정곡을 찌르는 기능들

연말경에는 사람 모이는 자리가 많았다. 그 때 만난 언론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이폰을 칭찬했다. 그 가운데서도 언론인에게는 안성맞춤형인 기능 얘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아이폰은 명함을 제대로 인식할 뿐만 아니라 차곡차곡 저장해줬다. 사실 그런 기능을 하는 휴대폰은 기존에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휴대폰은 잃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아이폰은 일단 인식한 명함을 아예 웹상에 저장해줬다. 그렇잖아도 취중에 휴대폰을 6개월 단위로 잃어버리는 나로서는 고마운 기능이었다. 그간 어렵사리 구축한 연락망을 통째로 분실하는 일은 언제나 타격이 컸다. 과거 경험으로 보자면 연락처를 복원하는 데는 1년 이상 걸렸다. 컴퓨터에 백업해두면 됐지만,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 매번 사람 좀 만났다 싶으면 연락처를 저장해두는 일이.

3. 아이폰 제대로 쓰려면 한 달 이상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이 때도 마음에 걸리는 일이 하나 있었다. 여러 기능을 익혀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게 필요한 애플리케이션은 뭘지, 또 어떤 애플리케이션이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누구는 제대로 쓰게 되기까지 몇 달이 걸렸다는 얘기도 들렸다. 아예 아이폰을 수입하는 KT가 아이폰 기초 강좌를 개설한다고도 했다. 역설적으로 이 소식 때문에 겁에 질렸다. 난 누가 뭐래도 기계치다. 지금껏 사용해온 쿠키폰 기능 가운데서도 사용하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누군가 옆에서 가르쳐주지 않으면 혼자 설명서를 들여다보면서 공부해본 적도 없다. 그런 내가 설명서조차 없이 기계를 통해 배워야 하는 아이폰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까? 이 때도 대리점에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4. 아이폰은 그저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문화다

또 생각을 되돌리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우선은 아이팟에 익숙한 선배의 조언이 유효했다. 아이폰은 공부하는 게 아니라 즐기는 거라는 충고였다. 따로 시간을 내서 공부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남는 시간에 즐기다 보면 익히게 된다는 얘기였다. 연초에 잇달아 만난 잡지 에디터들도 자극이 됐다. 대부분 아이폰을 쓰는 이들은 ‘아이폰이 단순히 상품이 아니라 문화’라고 했다. 라이프스타일을 전문 분야로 하는 기자로서,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자리매김한 아이폰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스타벅스가 국내에 진입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은 비싼 고급 커피 정도로만 인식했다. 그러나 조만간에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워낙 젊은 세대가 열광했기 때문에 스타벅스 본사나 수입업체의 고자세 마케팅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지만.

5. 열린 아이폰과 그 적들

아이폰을 사기로 작정하고 몇 군데 대리점을 전전했다. 동시에 부지런히 아이폰과 관련한 기사나 네티즌 리뷰를 찾아봤다. 흥미로운 사실은, 부정적인 기사가 많은 반면 네티즌 리뷰는 긍정적인 쪽이 많았다는 것이다. 기사의 부정적인 논조는 한결같았다. 기능 학습의 어려움과 애플리케이션의 한계, 그리고 수입업체인 KT의 딜레마 등. 무엇보다도 AS 문제를 많이 지적했다. 그런 기사를 보다 보면 다시 마음이 흔들렸다. 아예 대리점측에 구매 선언을 해둔 상태였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이동통신 업계에 출입하는 후배 기자를 만났다. 후배가 휴대폰 제조업체들, 특히 내로라하는 국내 경쟁업체가 아이폰에 대해 느끼는 반감과 질시, 그리고 노골적인 대응책에 대해 들려줬다. 그렇다면 천편일률적으로 부정적인 기사는 그 산물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니아 소비자를 둔 제조업체의 오만과 독선이라면 굳이 애플만의 문제도 아닐 테니까.

아이폰을 살까 말까를 두고 한 2달여의 고민은 장편 소설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사냐느 마느냐 사이를 왔다갔다 했다. 특히 주변 사람들의 말이나 글에 지배당했다. 이제 더는 휘둘리지 않을 참이다. 막 사온 아이폰을 들여다본다.

이 순간마저도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문다. 어쩌면 나는 엄청난 돈을 들여서 불편함과 번거로움을 샀을지도 몰라. 남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그래도 일단 사용하다 보면 비용 이상을 뽑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기계치인 나에게 좌절만 안겨주는 것은 아닐까? 이보다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드는 상품을 사면서도 이렇게 잦은 감정 변화를 경험한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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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영

헤럴드미디어와 중앙일보를 거쳐 프리랜서 기자로 일한다. 시대상과 사회 분위기가 반영된 라이프스타일 분석이 주 관심사다. KBS 인터넷 '이여영의 아지트'를 진행하고 KBS 1TV '책 읽는 밤'의 고정 패널, SBS 파워FM '아름다운 이아침, 김창완입니다'의 '이기자의 마이 스타일'코너를 맡고 있다. 저서로는 여성을 위한 사회생활 지침서 '규칙도 두려움도 없이'가 있다. yiyoyo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