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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과학기술 발전은 제로(0)에서 시작했다 제로의 DNA를 찾아서

과학기술 발전은 제로(0)에서 시작했다 제로의 DNA를 찾아서 (1) 2010년 05월 19일(수)

21세기의 화두는 창의성이다. 모방만으로는 경쟁력에서 이길 수 없다. 따라서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사이언스타임즈는 고등과학원(KIAS)과 공동으로 제로의 기원과 역사에 얽힌 미스터리를 이야기로 풀어보는 ‘제로의 DNA를 찾아서’를 선보인다. [편집자 註]

수학은 모든 과학의 기본이다. 그래서 수학을 과학의 여왕이라고도 한다. 숫자 가운데서는 제로(0)가 으뜸이다. 오늘날 강대국들이 새롭게 경쟁하고 있는 우주과학을 가능하게 한 것도 제로 덕분이다. 파인먼 교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제로의 여행’을 떠나보자.

‘천의 얼굴과 만의 해학(諧謔)을 지닌 사람’.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아니라 1965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고 양자물리학의 최고봉에 섰던 리처드 파인만(Richard P. Feynman) 교수를 지칭하는 말이다.

그는 희극배우 뺨칠 정도의 해학을 펼쳐 보였다. 상황에 따라 얼굴 표정이 바뀌었다. 임종 때까지도 그의 농담과 장난이 이어졌다.

천의 얼굴과 만의 해학, 리처드 파인만

▲ 양자역학의 최고봉에 있던 파인만은 그의 날카로운 해학으로 전설적인 인물로 꼽힐 정도다. 
비즈니스위크(Business Week)는 2004년 특집기사를 통해 파인만을 ‘20세기를 변화시킨 위대한 혁신가’로 평했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파인만의 전설은 1988년 사망 이후 3권의 자서전과 그가 남긴 그림과 글, 그리고 그의 해학들을 담아 책으로 펴낸 ‘파인만씨, 농담도 잘 하시네요’로 유명세가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그의 인생관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말이다. 암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와중에 혼수상태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주위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죽는 것도 참 피곤한 짓이군.’” 

하루는 한 제자가 당시 중학생이었던 딸 미쉘을 보고 맘에 들어 “딸이 크면 결혼하고 싶다”고 하자 파인만이 그 학생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야말로 걸작이었다.

“자네 부모 중에 한 명은 남자고 다른 한 명은 여자겠지? 아니라면 설명을 해보게나.(Do you have one male and one female parent? If no, explain.)”

부모가 혹시 동성애 부부는 아닌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요절복통할 질문을 던지기 일쑤였다.

천문학수치보다 경제적 수치가 더 크지 않나요?

어느 날 양자물리학 강의시간에 파인만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세상에서 가장 큰 숫자를 천문학적 숫자(astronomical number)라고 부릅니다만, 천문학적인 숫자보다 더 큰 숫자는 없을까요?”

자신 있게 나서는 학생이 없자 파인만이 답을 내놓았다.

“은하수에는 10의 11제곱이나 되는 많은 별이 있다고 합니다. 거대한 숫자입니다. 그러나 그 수는 천억 정도에 불과하죠. 미국의 재정적자보다 작은 숫자입니다! 우리는 그걸 천문학적인 숫자라고 불러왔습니다. 차라리 경제학적 숫자(financial number)라고 고쳐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수십조 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를 안고 있는 미국 정부의 무능함과 경제정책의 실패를 꼬집는 이야기다.

우주과학을 가능케 하다

이제는 방향을 돌려 작은 숫자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 수학은 가장 기본적인 기초과학으로 근대 과학기술을 탄생시킨 원동력이다. 그러한 수학의 중심에는 제로가 있다. 
작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제로(0)’가 없었다면 현대 과학과 기술을 가능케 한 거대한 수가 등장할 수 있었을까? 제로라는 개념이 없었다면 모든 과학과 기술, 심지어 생명을 다루는 생물학 연구에 이르기까지 필수적인 천문학적인 숫자들이 등장할 수 있었을까?

우주과학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공상과학에나 등장할 법한 우주여행이 10년 이내에 그 길이 열린다고 한다. 돈 많은 유명인사 몇몇은 여행 목적으로 인공위성에 몸을 싣기도 했다.

이에 따라 우주경쟁에 다시 불이 붙었다. 달에 물이 발견되고 화성에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우주경쟁은 우주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마저 보인다. 우주가 신세기의 서부개척지로 등장했다는 소식도 외신을 타고 전해온다. 바다 위 무인도처럼 누군가 먼저 차지하면 임자가 된다는 것이다.

거대한 우주과학이 탄생한 데에는 천문학적인 숫자가 큰 역할을 했다. 숫자 중에서도 ‘제로의 혁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학과 철학의 바탕 마련한 제로(0)

무의 숫자, 제로(0). 그것은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유(有)인가 무(無)인가? 존재인가 비존재인가? 철학적 사변의 소재가 되는 제로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엄청난 폭발력을 발휘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속에도 새롭고 신비로운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제로는) 신성한 영혼이 머무는 훌륭하고 놀라운 피난처이자, 존재와 비존재 사이를 오고 가는 양서류와 같은 동물이다.(...a fine and wonderful refuge of the divine spirit – almost an amphibian between being and non-being.)"

근대 미분과 적분론을 확립한 유명한 독일의 수학자이자 철학자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Gottfried W. von Leibniz)의 말이다. 제로는 수학과 철학의 중심이자 출발점이다. (계속)

김형근 편집위원 / 감수 고등과학원 박종도 박사 | hgkim54@naver.com

저작권자 2010.05.19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