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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나폴레옹이 프랑스 현대문학 탄생시켜

나폴레옹이 프랑스 현대문학 탄생시켜 김화영 교수, 프랑스 현대소설 분석 2010년 05월 17일(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협력,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문강좌 행사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행사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석학들이 진행하는 인문강좌를 연재한다. [편집자 註]

석학 인문강좌 지난 15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불문학)는 ‘프랑스 현대소설의 형성과 전개’란 제하의 강연을 통해 “프랑스 현대문학이 탄생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은 나폴레옹”이라고 밝혔다.

▲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 
지중해 코르시카 섬 출신인 나폴레옹(Napoléon Bonaparte, 1769 ~1821)은 프랑스혁명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파리 육군사관학교를 나와 포병사관으로 지방 연대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나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생한 후 반란 토벌로 명성을 얻는다.

뛰어난 지략으로 큰 공을 세우면서 프랑스군 국내 사령관에서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그 뒤 이집트 등 원정을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둬 국민들로부터 큰 신망을 얻었다. 1799년에는 쿠데타를 일으켜 통령 정부를 세우고, 선거를 통해 종신 통령(황제)이 됐다.

시골 출신의 열등생이었던 나폴레옹이 프랑스 황제에 오른 사건은 당시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귀족, 천민의 신분을 뛰어넘어 누구나 황제와 같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충분한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었다.

심리적으로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평민 계층을 통해 나폴레옹처럼 되고 싶다는 희망이 용솟음치기 시작했다. 왕족과 귀족, 사제가 지배하던 기존 전통사회에 대한 평민들의 반란이었다. 이 같은 사회풍조는 평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현대문학 양식의 소설을 통해 생생하게 재현된다.

나폴레옹의 성공은 프랑스 평민들의 희망

▲ 스탕달(Stendhal, 1783~1842) 
대표적인 작품으로 1830년 출간된 스탕달(Stendhal, 1783~1842)의 장편소설 ‘적과 흑(Rouge et le Noir, Le)’, 같은 해 출간된 발자크(Balzac, Honore de, 1799~1850)의 장편소설 ‘고리오 영감(Le Père Goriot)’이 있다.

스탕달의 장편소설 ‘적과 흑’에 등장하는 주인공 줄리앙 소렐은 어린 시절 시골 베리에르에 있는 아버지 제재소에서 일해야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무서운 야망을 갖고 있었다. 아버지 사업을 돕고 있던 형들과는 달리 항상 책만 읽었고, 아버지는 그를 무섭게 구박한다.

얼마 후 그는 베리에르 시장 레나르 씨의 라틴어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레나르 부인을 만난다. 레나르 부인은 줄리앙이 가난한 환경에서 어렵게 자란 것을 측은히 여겨 그를 다정하게 대해주다 사랑이 싹튼다. 줄리앙 역시 레나르 부인에게 사랑을 고백한다.

그러나 이 불장난은 오래 가지 못한다. 줄리앙을 사랑한 하녀 엘리자의 고자질로 줄리앙은 가정교사를 그만 두고 신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한다. 그리고 필라드 신부의 추천츠로 라몰 후작 비서 일을 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줄리앙의 야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라몰 후작의 아름다운 딸 마틸드에게 접근해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라몰 후작은 평범한 목재상의 아들에게 자기 딸을 주어야 한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으나 마틸드의 진심을 이해한 후 결혼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그러던 중 라몰 후작 앞으로 한 통의 편지가 전달된다. 레나르 부인의 편지였다. 줄리앙의 과거 사실을 알게 된 라몰 후작은 마틸드와의 결혼을 백지화한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줄리앙은 즉시 마차를 타고 레나르 부인이 편지를 부친 베리에르 성당으로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레나르 부인을 향해 총을 발사한다. 줄리앙의 야망과 사랑이 무참히 깨지는 순간이었다. 얼마 후 재판정에 선 줄리앙에게 배심원들은 계획적인 살인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리고 사형을 언도한다.

소설 ‘고리오 영감’에서도 비슷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고리오 영감을 중심에 놓고 있지만 작가의 시선은 시골 앙굴렘에서 파리로 올라온 야심찬 법학도 으젠드 라스티냐크를 따라 움직인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더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야망을 갖고 있었다.

스탕달과 발자크, 당시 사회상 통렬하게 풍자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곳은 파리 안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넘쳐나는 하숙집이었다. 그러던 중 고리오 영감을 만나게 된다. 고리오 영감은 남작 부인인 두 딸이 있었고, 두 딸을 위해 그동안 어렵게 모은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 발자크(Balzac, Honore de, 1799~1850) 
라스티냐크는 먼저 고리오 영감에게 환심을 산 후에 딸들을 소개 받는다. 그리고 사교계 진출을 위해 남작부인들을 마음속으로 경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환심을 사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가 가깝게 지내고 있는 친구 보드렝 역시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나는 민중을 위해 부자들을 비난하는 것은 아닐세. 상류이건 하류이건 중류이건 인간은 다 마찬가지니까”라는 말은 프랑스혁명 후 새로 형성되고 있는 보편적인 사회상을 보여주고 있다.

소설 줄거리 마지막 부분에서는 고리오 영감이 사망한다. 고리오 영감이 죽었지만 두 딸은 얼굴도 안 비친다. 어쩔 수 없이 장례에 참석한 라스티냐크는 장례가 끝난 후 고리오 영감 묘지로부터 파리의 휘황한 등불들을 바라보면서 소리친다.

“파리여, 이제 너와의 승부다!”

김화영 교수는 ‘적과 흑’의 스탕달과 ‘고리오 영감’의 라스티탸크가 닮은 데가 너무나 많다고 말했다. 청년다운 고지식함과 신선함이 그렇고, 파리라는 거친 파도 속에서 그들을 통해 풍겨나는 그 우아한 매력이 그렇다고 말했다. 출세욕도 그렇고, 여성을 이용하려 하는 등 양심을 거부하는 면도 그렇다.

그러나 이 청년 주인공들은 소설을 통해 당시 사회상을 통렬히 풍자하고 있다. 김 교수는 “왕족과 귀족이 세상을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배후에 가톨릭 사제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전통적인 사회에서 시민사회로 변해가는 상황에서 당시 사회상을 거울처럼 비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5.17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