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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Weekly Biz] [Cover Story] 1시간 강연료 '10만달러 사나이' 게리 해멀 교수 紙上특강

[Weekly Biz] [Cover Story] 1시간 강연료 '10만달러 사나이' 게리 해멀 교수 紙上특강

탁상훈 기자 if@chosun.com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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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스의 애플'요리하는 법 공개 "따라 해선 따라잡을 수 없다"
"모방해서 되는 경우는 1위가 멍청해야만 가능
애플이 바보인가요? 새판 짜라, 그래야 이겨"
"기업의 DNA를 바꿔라" 기강 효율 통제→실험 혁신 창조
"애플이 '아이폰'과 '앱스토어'로 대변되는 지금 같은 휴대폰
생태계를 내놓기 전에는 아무도 이를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이전까지는 다들 이동통신업체가 제공하는 닫힌 정원(walled garden)
안에서만 콘텐츠를 다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이런 정원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삼성전자애플의 방식을 따라가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노(No)'입니다. 물론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IT 업계에서 예측한다는 것은 위험한 일이긴 합니다. 하지만 애플 식의 수익 모델은 어쩌면 생각보다 오래 못 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2008년 월스트리트저널이 선정한 세계 경영 대가(大家·guru) 20인 중 1위에 오른 게리 해멀(Gary Hamel·56) 교수의 말은 뜻밖이었다. '애플 쇼크' 이후 모두가 애플을 이야기하고 벤치마킹하려고 안간힘 쓰는 시대가 아닌가.

그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더욱 높이며 말을 이어갔다. 33㎡(10평) 규모의 인터뷰 룸이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보다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이겁니다. 삼성전자가 만일 애플이 거둔 것 같은 성공을 거두고 싶다면, 애플이 한 것과 같은 방식을 택해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애플이 멍청한(stupid) 기업이라면 애플이 만든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2등이라도 할 수 있을지 모르죠. 하지만 애플은 결코 멍청한 회사가 아닙니다. 따라서 삼성은 자신만의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서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애플이 한 것처럼 급진적인 아이디어야 합니다."

그의 말은 애플을 뒤쫓는 국내 기업들에 경종(警鐘)을 울리는 듯했다. 진정한 혁신이란 1등 모델을 좇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판을 짜는 것이란 지적이었다.

그는 날카로운 충고를 더 이어갔다. "기업이 결정하기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기존의 수익 모델에서 벗어나는 비즈니스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경영자들로선 자신의 아이와 같은 것인데 어떻게 버릴 수 있느냐고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비즈니스입니다. 삼성이 휴대폰 제조를 그만둬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익 모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빠른 움직임이 보일 때 빠르게 대응할 수 있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기존의 전략을 버릴 수도 있어야 합니다."

해멀 교수는 세계에서 몸값이 가장 비싼 경영 석학 중 한 사람이다. 한 시간 강연료가 5만~10만달러에 이르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허락한 인터뷰 시간은 인색했다. 단 30분.

기자는 잡담 없이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냈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내용을 전달하겠다는 그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에 몰입한 그는 약속된 30분을 넘어 정확히 1시간 5분을 이야기했다. 예정된 점심 약속마저 잊은 듯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엔 카랑카랑했던 그의 목소리도 갈라졌다. 그는 과연 열정적인 '혁신 전도사'였다.

그는 지금은 거의 보통명사가 된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이란 개념을 1990년대에 창안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지속적 혁신'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핵심역량도 혁신의 대상인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그의 대답은 이랬다. "최적의 핵심역량은 어떤 특정한 스킬이나 기술이 아닙니다. 혁신 자체가 최적의 핵심 역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혁신을 북돋우고 꽃피우게 하는 조직문화야말로 기업의 가장 중요한 역량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은 자연스럽게 최근 수년간 그가 강조하는 '관리 혁신(management innovation)'으로 옮아갔다. 관리 혁신이란 회사 관리자들이 하는 일을 바꾸는 것, 즉 의사 결정 구조, 조직 구성 등 사람 관리와 관련된 혁신을 의미한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혁신 사다리의 가장 꼭대기에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애플을 보면 교수님이 관리 혁신의 아랫 단계라고 한 '업계 구조 혁신(industry architecture innovation)'을 한 것 같긴 한데, 관리 혁신 기업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솔직히 저는 애플의 내부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일반적으로 스티브 잡스의 스타일을 보면 여전히 수직적 의사 결정 모델을 갖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애플은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만들어내고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기업에선 찾기 힘든 열정 같은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최근 아이패드 발표 때 했던 얘기 중에 '애플은 변함없이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에 서있었다(Apple has been always existed between technology and liberal arts)'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껏 어느 기업의 CEO도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애플이 재무나 기획 분야에서 다른 회사와 다른 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애플은 다른 형태의 관리 혁신 DNA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직원들에게 왼쪽 뇌를 활용한 이성적·논리적 업무를 강조하기보다는, 오른쪽 뇌에서 말하는 창의적·예술적 감각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분위기가 갖춰져 있다는 것이지요. 이는 제가 관리혁신에서 강조하는 '급진적 아이디어(radical idea)'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게리 해멀 교수와 Weekly BIZ의 만남은 2008년 가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다. 그는 짙은 청색 정장 안에 스카이블루색의 와이셔츠를 받쳐 입고 있었다. 그리고 트레이드 마크인 잘 다듬은 콧수염과 동그란 뿔테 안경. 도회적 세련미가 느껴졌다.

그의 대답은 그때나 지금이나 막힘이 없었다. 어떤 질문도 피하지 않았고, 까다롭다 싶은 물음에는 10분 넘게, 그렇지만 장황하지 않도록 첫째, 둘째 식으로 단락을 지어가며 대답했다.

게리 해멀 교수는 “1등 기업일수록 기존 시장 잠식을 두려워하지 말고 더욱 적극적으로 혁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인터넷에 관리혁신의 답이 있다

―교수님이 강조하시는 '관리 혁신'의 의미를 다시 한번 설명 부탁드립니다.

"관리(management)를 기술의 하나로 본다면, 저는 '사회적 기술(social technology)'이라고 봅니다. 다양한 층(scale)의 사람이 함께 모이도록 하는 기술이고, 인간을 완성(human accomplishment) 시켜주는 기술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문제는 지금 세상이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급진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데, 현재의 관리 시스템은 100년 전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이전 세대의 경영 파이오니어들은 사람을 고용해 할당받은 일을 정확히, 또 성실히 이행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왔죠. 기강과 효율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딜레마는, 진짜 가치란 것이 기강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것, 창조적인 것에서도 나온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회사는 지금도 비용 절감, 효율성, 기강과 같은 것을 DNA로 갖고 있습니다. 실험하고 혁신하고 창조하는 DNA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 이것을 바꿀 때가 됐습니다. 제가 주장하는 것은 이를 위해 관리 자체를 재창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굉장히 큰 모험이지만 매우 흥미로운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바뀌어야 합니까?

"혁신적이고 유연하고 창조적인 인간의 속성이 발휘될 수 있도록 창의적인 조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강제로 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기업의 조직이 중앙집권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수직적 조직을 수평적이고, 시장 지향적으로 바꾸는 것이죠."

해멀 교수는 인터넷이야말로 자신이 평소 강조하는 조직 상(像)을 잘 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선 인터넷은 수직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평평한 구조이고, 변화에 유연하며, 실력 위주인 데다가, 오픈되어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인터넷을 혁신적이고 변화에 유연한 것으로 바꾸었죠. 웹 공간에서 일어나는 이런 사회적 혁명의 방법을 기업들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말해 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다음 세대(next generation)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웹을 알고 자랐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겐 절대 포기하지 않는 어떤 가정(assumption)이 있습니다. 모든 아이디어는 동등한 위치에서 경쟁을 거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실제적인 기여도(contribution)가 자격증(credential)보다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유튜브나 다른 사이트에 동영상을 올릴 때 아무도 당신이 영화학교를 나왔는지 물어보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그것이 재미있는지 유익한지만 따집니다. 또한 그들은 모든 계급 체계(hierarchy)가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리더는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따르고 싶어서 따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자 그럼 직장으로 돌아가서 생각해 봅시다. 당신이 일하고 싶은 조직은 바로 앞서 말한 인터넷 세상의 체계를 닮은 곳일 것입니다. 오픈되어 있고, 평평하고, 실력 위주인 그런 곳을 말합니다. 미래의 직장에서 일할 다음 세대들은 더욱더 그렇겠죠."

■카니벌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을 두려워 말라

―혁신 기업의 대표적 예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낸 구글이나 애플의 사례가 많이 거론됩니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혁신에 굼뜬 기업으로 종종 묘사됩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몇 년 전만 해도 굉장히 혁신적인 회사였습니다. 가장 큰 혁신은 20년 전 모든 이용자가 공통으로 사용할 PC 운영체제(OS)를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는 점이죠. MS는 당시, 요즘 애플이 그러는 것처럼 'MS 개발자 네트워크(Developer Network)'라는 것을 만들어 개발자들에게 응용 프로그램 개발 도구나 자금을 열심히 지원했습니다. 이를 통해 MS의 OS 위에 수많은 프로그램이 올라올 수 있도록 했죠.

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성공을 거둔 이후엔 현재의 비즈니스모델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MS도 마찬가지였죠. MS는 10년 전부터는 소프트웨어 산업에서 너무 느리게 대응해왔습니다. 인터넷이라는 중요한 트렌드에 대해서도 그랬고, 구글이 주력으로 삼는 광고 기반 매출 구조의 가능성에도 소홀했습니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구글이 MS보다 더 혁신적인 기업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어떤 점에서는 이젠 구글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가령 요즘 인터넷에서 한창 화제인 소셜미디어 네트워크 서비스가 어떤 식으로 발전해 구글의 자리를 뺏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다만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당신이 경영자라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는 데 신경을 쓰기보다는, 새로운 탐험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각 사업의 1등 기업들은 새로운 사업이 기존 사업 매출을 갉아먹지 않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가령 KT의 경우 주력 사업인 가정용 유선전화를 대체하는 인터넷전화 사업을 시작한 이후 유선전화 매출 감소를 겪었습니다(인터넷전화는 유선전화와 기능은 동일하지만 요금은 30% 정도 저렴하다). 그래도 스스로 이런 혁신을 시작해야 하는 건가요?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MS나 KT 같은 기업들은 그런 과정에서 기존 시장의 잠식(cannibalization) 현상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일시적으로 매출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혁신 사업을 먼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현존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약화시킬 수 있는 비즈니스모델일지라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절실합니다. 첫째, 무엇보다 당신의 경쟁자가 쫓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안 하더라도 당신의 경쟁자가 할 게 뻔합니다. 그들이 먼저 찾아내면 결국 당신은 2위로 떨어지게 됩니다. 둘째, 장기적으로는 그런 시도 자체가 기존에는 없었던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기도 한다는 점입니다. 새로운 사업 과정에서 예상 못 한 수익원을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혁신의 성공사례들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비즈니스모델의 아래에는 또 다른 비즈니스모델의 원천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장기적으로 이것이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기도 합니다.

물론 MS나 KT 같은 회사들은 똑똑하고 강력한 회사이기 때문에, 나중에라도 뒤처진 변화를 따라잡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다른 회사가 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그전에 스스로 카니벌라이제이션을 해야 합니다. 한번 트렌드에 뒤처지면 쉽게 따라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IT 시장 패러다임도 하루게 다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제조'라는 기존의 휴대폰 사업 가치에 충실했던 사이, 애플은 같은 휴대폰 사업을 하면서도 소프트웨어를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반화해서 말하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만 얘기하자면, 정보통신 생태계에서 수익원은 점차 디바이스(휴대폰 같은 전자제품)에서 콘텐츠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IBM도 마찬가지죠. IBM은 15년 전만 해도 개인용 컴퓨터를 판매하는 회사였지만 이 부문에서 수익을 내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서비스·컨설팅회사로 변신했습니다.

애플은 여기서 한 단계 더 진화했죠. 애플이 '아이폰'과 '앱스토어'(네티즌의 참여로 운영되는 휴대폰용 프로그램 장터)로 대변되는 지금 같은 휴대폰 생태계를 내놓기 전에는 아무도 이를 구현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런 생각조차 못했죠. 이전까지는 다들 이동통신업체가 제공하는 닫힌 정원(walled garden) 안에서만 콘텐츠를 다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은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이런 정원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습니다."

■혁신 능력이 최고의 핵심역량

―교수님은 1990년대엔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을, 2000년대는 지속적 혁신(innovation)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둘은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요?

"먼저 혁신에 대해 이야기해보죠. 내가 지난 20년간 연구한 결과 그간 이루어진 많은 혁신이 기업 내의 기존의 시스템을 무시해야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존 시스템에선 많은 것들이 혁신을 오히려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혁신을 할 시간이 없다든가, 지원해 줄 여유가 없다든가 하는 식이죠. 심지어 고위 관리자가 혁신의 아이디어를 거절해 버려서 담당자가 몰래 숨어서 혁신을 진행해야 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바로 이처럼 시스템을 무시해야만 혁신이 가능해지는 상황 자체가 문제라는 게 내가 강조하는 포인트입니다. 즉 21세기 기업에서는 혁신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또 자연스러운 일로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분위기와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때문에 결국 기업이 가진 최고의 핵심역량은 어떤 특정한 스킬(skill)이나 기술(technology)이 아니라, 혁신 그 자체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가령 혁신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사내 시스템이나 분위기 같은 것이 그 기업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역량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질문에 대한 그의 답변은 거의 '강의'에 가까웠다. 그는 시대가 바뀌면서 경영자의 혁신하려는 의지와 유연한 사고 자체가 기업의 핵심역량이라고 말하려는 듯했다.

―혁신과 핵심역량이 한몸이란 말씀이죠?

"네. 물론 핵심역량을 스킬이나 기술로 가진 기업도 있겠죠. 하지만 보다 강력한 핵심역량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창조할 수 있는 능력과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업의 관리 시스템이란 것은 한 번도 조직이 혁신을 받아들이는 것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적이 없습니다."

―수평적 조직도 중요합니다만, 기업에 있어선 일사불란한 실행도 중요한 것 아닌가요.

"물론 실행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실행은 그냥 실행하면 되는 것이지 별다른 구조가 필요한 건 아니죠. 제가 강조하는 것은 바로 기업의 경영 조직이 중앙집권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겁니다. 특히 수평적 조직이 효과를 보기 위해선 '스코어보드(scoreboard)'가 필요합니다. 회사의 목표, 직원 입장에서 자기가 한 일의 성과, 그리고 그에 따른 보상을 직원들이 구체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인데요. 모든 직원이 스코어보드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성과가 뭔지 알아야 합니다. 고객 만족인지, 비용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인지, 제품 배달의 정확도를 높이는 건지 등을 말입니다. 이러한 구성 요소들이 직원들에게 명확히 보여져야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CEO들이 직원들과 정보를 공유하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직원들은 멍청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자기가 하는 일이 회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또 구체적으로 어떤 보상을 받게 되는지 모르는 직원들이 회사와 하나로 동화될 수 있을까요."

―갓 시작한 신생 기업에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제가 실리콘밸리에 있을 때 아주 많은 신생 기업들을 지켜봤는데요.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관리 방식은 대부분 대기업을 그대로 옮겨 놓은 수준이었다는 겁니다. 성장 속도에 맞춰서 점점 더 유연해져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경영 혁신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단 말씀이죠. 결국 상당수의 기업이 경영 혁신의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기업 규모에 관계없이 경영자들은 혁신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직원들에게 혁신할 만한 동기를 줘야 하고, 사내에 혁신이 수용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직 이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던 기업이라면 지금 당장에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이런 모든 실험을 내일이나 혹은 내년까지 모두 끝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건 일단 당신이 시작을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직전에 KT 임원들을 대상으로 1시간짜리 강연을 하고 나온 뒤였고, 다소 낯선 질문들에 지칠 법도 했건만, 그는 마지막까지 총총한 눈빛으로 열정적 답변들을 쏟아냈다. 만 56세의 나이에도 자세 하나 흐트러짐 없이, 또 천하의 애플도 영원할 수만은 없다고 말하는 그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난 15년간 그가 세계적인 경영 전략 대가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건 바로 그 자신이 기존의 명성에 안주하지 않는 혁신의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