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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한국의 신화

어디에 내놔도 손색없는 한국의 신화 정재서 교수, ‘바리데기 신화’의 세계화 주장 2010년 05월 10일(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협력,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문강좌 행사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행사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석학들이 진행하는 인문강좌를 연재한다. [편집자 註]

석학 인문강좌 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는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의 4회 강연을 마무리하는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토론자로 참석한 울산대 전호태 교수(역사문학), 한국중앙연구원 김일권 교수(역사천문학), 성균관대 임태승 교수(중국미학), 그리고 청중들은 정재서 교수 강연 내용과 관련, 다양한 질문을 내놓았다.

▲ 8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종합토론으로 진행됐다. 

특히 한국과 중국신화의 관계를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는데, 정재서 교수는 “우리나라의 단군(檀君)신화, 주몽(晝夢)신화의 경우 중국신화의 구조, 모티프 등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선후 관계를 단정하기는 매우 어렵다”며 “일단은 중국신화 자체가 다원적인 문화 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동아시아 문화가 근대 이후 민족, 국가 개념으로 경계를 확정지을 수 없는 총체적, 복합적 실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한국과 중국신화 공유하는 부분 많아

“따라서 중국신화와 한국신화 사이에는 각자의 고유한 실체도 있고, 공유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며, 과거 동아시아 문화를 근대 이후 국가와 민족 개념으로 재단하려는 시도에 대해 큰 우려를 표명했다.

▲ 고구려 고분 벽화. 중국신화와 겹치는 많은 모티프들을 담고 있다. 
정 교수는 또 한국의 바리데기 신화의 경우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훌륭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서구, 중국신화와 비교해 단조로운 감이 있다면 그것은 문화적 전통의 차이로 인해 스토리텔링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우리 신화의 내용을 보다 많이 발굴하고, 스토리텔링화할 경우 대중적,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질 것이라며, 학계와 창작인, 관련 산업계 등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줄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정재서 교수와 질문자들과의 일문일답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Q. 신화를 연구하는 신화학 자체가 서양적이다. 서양신화에서 유추된 신화분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동양신화에서 서양신화와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다면 동양신화를 분석하는 관점을 새롭게 구축할 필요성이 있지 않겠는가.

A. 상당히 중요한 제안이다. 사실 현재의 신화학은 그리스-로마 신화 등 유럽 신화를 표준으로 성립된 혐의가 짙다. 이 때문에 신화의 개념, 분류 등에 유럽 신화 특성이 반영됐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창조신화, 영웅신화 등의 일반적 분류를 무비판적으로 따른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서양신화를 무조건 배척할 이유는 없다. 동양신화, 서양신화 모두 원시 인류의 공통적인 관심사를 담고 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 형성에 대해 신화형식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창조신화가 대표적인 경우다.

Q. 중국신화의 경우 신화 자체의 속성이 많이 탈각되고 규범신화, 역사신화적인 요소가 많이 삽입됐다. 진시황(秦始皇)의 통일제국 이후의 신화,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예로 들 수 있다.

A. 매우 일찍이 인문화된 그리스-로마 신화와는 달리 중국신화는 역사화의 경향이 매우 강하다. 양자 모두 해체를 통해 신화의 실상을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특히 중국신화에 있어서는 역사를 걷어내고 원시적 모습의 신화를 보아야 한다.

Q. 다민족 국가인 중국이 국민통합을 위해 신화를 활용했다고 보아도 되는가.

A. 그렇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한 제국의 정통성을 마련하기 위해 ‘오제본기(五帝本紀)’를 통해 신화를 역사하, 체계화시켰고, 황제를 중국인의 시도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근대에 이르러 염제(炎帝)가 추가했으며, 최근에는 황제의 적대자인 치우(蚩尤)까지 조상신에 포함시켰다. 이것은 소수민족들을 중국민족이라는 더 큰 단위에 통합시키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Q. 중국신화와 한국신화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나.

▲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 
A.
중요한 문제를 제기했다. 고구려 벽화에 출현하는 수많은 중국신화의 모티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하는 것이 바로 이 문제와 직결된다.

일단은 중국신화 자체가 다원적인 문화 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과거 동아시아 문화가 근대 이후 민족, 국가 개념으로 경계를 확정지을 수 없는 총체적, 복합적 실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따라서 중국신화와 한국신화 사이에는 각자의 고유한 실체도 있고, 공유하는 부분도 있다. 양국 신화가 공유하고 있는 부분은 고대 이래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들이다. 

Q. 우리나라의 단군(檀君)신화, 주몽(晝夢)신화, 박혁거세(朴赫居世)신화 등이 중국신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받았다면 어떤 영향을 받았나.

A. 영향을 받은 것도 있고, 받지 않은 것도 있다. 단군신화, 주몽신화의 경우에는 중국신화의 구조, 모티프 등과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선후 관계를 단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국의 대표적인 신화집으로는 일연(一然)의 ‘삼국유사(三國遺事)’를 꼽을 수 있다.

Q. 우리나라의 건국신화, 무속신화 등을 보면 스토리 전개가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을 갖는다. 우리 신화 속에서도 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발견할 수 있는 가.

A. 발견할 수 있다. 가령 바리데기신화 같은 경우는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서구, 국신화와 비교해 단조로운 경향이 있다면, 그것은 문화적 전통의 차이로 인해 스토리텔링이 활성화되지 않은 결과다. 한국 신화 자체에 인간성과 감정 요소 등이 풍부하지 않다고 볼 수는 없다.

Q. 신화의 현대적 의미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전달해야 하겠나.

A. 학계에서는 우리 신화의 내용을 보다 많이 발굴하고, 그 의미를 연구해야 할 것이다. 산업 분야에서는 게임, 에니메이션, 영화, 만화 등 여러 방면으로 좋은 이야기들을 가공해, 대중적, 국제적 인지도를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특히 아동, 청소년들이 우리 신화를 재미있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동화, 소설 등을 창작해내는 일이 중요하다. 현재 젊은 작가들을 통해 이런 시도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5.10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