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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 영토는 평양 아닌 발해만 인근” 중국신화에 고대한국 관련기록 남아 있어

고조선 영토는 평양 아닌 발해만 인근” 중국신화에 고대한국 관련기록 남아 있어 2010년 05월 03일(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협력,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문강좌 행사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행사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석학들이 진행하는 인문강좌를 연재한다. [편집자 註]

석학 인문강좌 중국신화는 한 종족만의 신화가 아니다. 오랜 옛날 수많은 종족들이 활동했던 대륙의 다원적인 문화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이야기다.

중심 민족인 한족에 의해 보존되고 전승되었다 할지라도 그 속에는 주변 민족의 문화가 적지 않게 배어 있다. 그중에는 한국문화와 관련된 것들도 많이 있다. 특히 동이(東夷)계 문화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산해경(山海經)’에는 고대 한국과 관련된 기록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는 1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고조선(古朝鮮)과 관련된 기록을 소개했다.

“동해(東海)의 안쪽, 북해(北海)의 모퉁이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하늘이 그 사람들을 길렀고 물가에 살며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동해’는 지금의 서해를, ‘북해’는 발해(渤海)를 의미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인들 고조선에 대해 매우 우호적

▲ 신도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에서 여신 여와가 거북이의 네 발을 잘라 하늘을 받치게 했다는 중국신화를 연상할 수 있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고조선의 영토는 지금의 평양 근처가 아니고 발해만 연안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는 것.

또 ‘하늘이 그 사람들을 길렀다’라는 구절은 우리 민족의 천신(天神) 숭배 관념, 혹은 천손(天孫) 의식 등을 표현한 듯하고, ‘남을 아끼고 사랑한다’란 구절은 당시 중국인의 고조선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양호했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신화에는 우리말의 흔적도 남아 있다. 중국신화에서 유명한 바람의 신, ‘풍백(風伯)’은 이전에 ‘비렴(飛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다.

장익(蔣翼, ~264년)의 산대각주초서(山帶閣住楚辭)에 인용된 삼보황도(三輔黃圖)에 따르면 “비렴은 신령스러운 새로 능히 바람의 기운을 불러온다. 몸은 사슴과 같고 머리는 참새 같은데 뿔이 있고 뱀 꼬리에 무늬는 표범과 같다”고 적고 있다.

중국신화가 한국 시가문학에 수용된 것은 고려시대에 이르러서다. 무인정권 시대 오세재(吳世才), 이인로(李仁老) 등과 죽림고회(竹林高會)를 결성하고, 폭압적인 현실에 저항했던 임춘(林椿)의 ‘기몽(記夢)’이란 작품을 보면, 항아(姮娥) 신화, 서왕모(西王母) 신화 등의 내용들을 솜씨 있게 적용하고 있다.

조선시대 들어와서는 단학파(丹學派) 시인들의 선시(仙詩)와 16, 17세기 일기 시작한 당시풍(唐詩風) 및 유선시체(遊仙詩體)의 유행으로 중국신화의 수용이 매우 활발해진다.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가를 예로 들 수 있다.

옥꽃 위로 미풍이 불자 파랑새가 날고 서왕모의 기린 수레는 봉래섬으로 향하네. 목란깃발 꽃술 배자의 흰 봉황 수례를 몰거나 붉은 난간에 기대어 옥풀을 줍기도 하지. 푸른 무지개 치마 바람에 날릴 새 옥고리 패옥 소리는 댕그렁댕그렁 선녀들 쌍쌍이 옥거문고 타자 삼주수(三珠樹) 주위에 봄 구름이 향기롭네.

허난설헌은 중국신화를 소재로 초월적인 경지를 창작해냄으로써 자신의 불우한 처지를 초탈하려고 했다. 허난설헌 외에도 대다수 유선시에는 중국 신화의 영향이 두드러진다. 이는 서왕모 숭배가 절정에 달했던 당대(唐代) 시가의 영향 때문이다.

고소설에서도 중국신화 적극 수용

시가와는 달리 서사문학에서 중국신화 수용은 단군신화, 고구려 건국신화뿐만 아니라 무속신화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조(成造)풀이’에서는 “여와씨 후(後)에 나서 오색(五色)돌 고이 갈아 이보천(以補天)하신 후에 여공제기(女工諸技) 가르치며 남녀의복(男女衣服) 마련하고”란 구절이 나온다.

고소설의 경우에는 중국신화의 수용이 훨씬 다채롭게 이루어진다. 작자미상의 ‘강태공전’과 ‘여와전’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강태공전’은 강태공(姜太公)이 도술로써 (포악한 주왕이 다스리는) 은나라를 징벌하고 주왕의 재상이 되기까지의 활약상을 그린 소설로 명대의 소설 ‘봉신연의(封神演義)’와 흡사하다.

▲ 경주 안압지에 있는 세 개의 섬은 중국신화에 나오는 세 개의 신령스러운 산들을 상징하고 있다. 
‘여와전’은 여신 여와(女媧)가 문창성(文昌星)을 시켜 현부열녀(賢婦烈女)들이 황제로 참칭하는 것을 징벌하고, 관음보살을 굴복시켜, 유교의 불교에 대한 우위를 입증시킨다는 내용의 소설이다. 여와가 소설의 발단이 된다는 점에서 중국신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 민속에 있어 중국신화의 수용 사례는 다방면에 걸쳐 이루어졌다. 조선 후기 학자인 홍석모(洪錫謨)가 지은 민속해설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보면 궁중이나 양반가에서 단옷날에 전쟁의 신, 치우(蚩尤)의 이름과 형상을 그린 부적을 붙여 질병을 물리칠 것을 기원했다고 한다.

귀신이나 요괴를 쫓는데 복숭아, 혹은 복숭아나무가 효험이 있다고 믿어졌는데 이는 세 가지의 관련된 중국신화가 있다. 그중의 하나는 영웅 예(羿)가 제자 봉몽(逢蒙)에게 복숭아나무 몽둥이로 맞아죽은 후 귀신의 우두머리로 부활했는데, 그 후에도 여전히 복숭아나무를 무서워했다는 이야기다.

섣달 그믐날 잠 안자는 풍속, 중국신화서 유래

또 다른 영향은 사명신앙과 관련된 것이다. 사람의 목숨을 관장하는 사명신이라고 부르는데, 죽음을 맡은 북두칠성을 비롯, 인간의 잘못을 천제에게 주기적으로 고하여 수명을 깎게 만드는 조왕신(竈王神), 신은 아니지만 조왕신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삼시충(三尸虫)이 있다.

이중 북두칠성에 대한 숭배는 중국신화와는 관련이 없이 한국 무속전통을 통해 독자적으로 발전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북두칠성의 존재라든지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칠성판(七星板)을 까는 습속은 북두칠성 숭배의 역력한 증거들이다.

조왕신, 삼시충에 대한 신앙은 인간 수명과 관련돼 있다. 사람들은 수명이 줄어들까봐 조왕신에게 제사를 드리기도 하고, 혹은 삼시충을 제거하는 약을 먹기도 했다.

▲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 
그러나 가장 실천하기 쉬운 방법은 이들이 하늘에 올라가는 날 밤, 잠을 자지 않는 것이었다. 이들은 사람이 잠들 때에만 승천할 수 있기 때문. 우리나라에서 섣달 그믐날 밤에 잠을 안자고 버티는 풍속은 중국신화와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고 미술자료에서도 중국신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노량해전에서 장렬히 전사한 이순신 장군을 기린 남해 충렬사(忠烈祠) 현판에는 ‘보천욕일(補天浴日)’이라는 글귀가 쓰여 있다. 중국신화를 모르면 이 글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보천욕일’이란 뚫어진 하늘을 기운 대모신(大母神) 여와와 매일 해를 목욕시켜 세상을 새롭게 비추게 하는 태양신 희화(羲和)의 신화에서 나온 성어다.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陳璘)은 충무공을 두고 “천지를 주름잡는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공적이 있다”고 극찬했는데, 진린은 이 말 속에서 ‘보천욕일’이란 글귀를 사용하고 있다.

주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신도비(神道碑) 역시 중국신화와 관련이 있다.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무덤 앞에 세워진 이 비석은 거북이가 비신(碑身)을 등에 업고 있는 모습인데 이 모습에서 여와가 거북이의 네 발을 잘라 하늘을 받치게 했던 신화적 사건을 연상할 수 있다.

백제 무녕왕릉에서 발굴된 매지권(買地券)과 동경인 방격규구신수문경(方格規矩神獸紋鏡), 의자손수대경(宜子孫獸帶鏡) 등도 중국신화와 관련이 있다.

이중 매지권은 피장자가 지하세계의 신으로부터 묘지를 구입한다는 내용을 적은 글을 말하는데, 무녕왕릉 매지권에는 돈 1만 문(文)으로 토백(土伯)으로부터 묘지를 구입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토백은 중국의 남방 지하세계를 관장하는 신을 말한다.

경주의 안압지에 중국 삼신산 신화 재현

주목할 것은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와 경주의 안압지(雁鴨池)다. 1993년 부여의 백제 공방(工房0 터에서 발굴한 백제금동대향로는 삼신산 중의 하나인 봉래산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 위에는 날개 돋친 우인(羽人), 곧 신선들과 상서로운 동물들이 새겨진 낙원의 정경을 보여주고 있다.

안압지에는 세 개의 섬이 조성되었는데, 그것들은 발해에 떠 있는 봉래, 방장, 영주 세 개의 신령스러운 산들을 상징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곤륜신화와 더불어 중국의 대표적 신화라고 할 수 있는 삼신산(三神山) 신화가 한반도에 일찍부터 전래됐음을 알 수 있다.

▲ 1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고대 한국의 미술자료 중 중국신화와 관련된 내용을 가장 많이 담고 있는 것은 고구려 고분벽화라고 할 수 있다. 고분벽화에는 중국신화에 나오는 염제(炎帝) 신농씨가 3번 이상 출현한다. 견우직녀 신화도 다소 만화 같은 모습이 덕흥리(德興里) 고분에 그려져 있다.

중국신화에는 고대 한국문화의 일부 내용이 담겨져 있다. 한국 문화 역시 문학, 민속, 고미술 등 각 방면에 걸쳐 중국신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한국과 중국이 문화적으로 떼려야 떼어낼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상당 부분 같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는 문화적 관계를 말해주고 있다.

정재서 교수는 “따라서 근대 이후 성립된 배타적인 민족, 국경 등의 개념으로 양국의 문화를 구분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며, 동아시아의 상상력 혹은 동아시아 문화라는 넓은 단위에서 사고하고, 호혜적인 관점에서 높은 문화 창달을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5.03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