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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 괴물은 인간 본래의 모습

신화 속 괴물은 인간 본래의 모습 중국신화 ‘산해경’ 통해 천인합일 관념 표현 2010년 04월 19일(월)

인문학과 과학이 서로 협력, 미래를 만들어가는 인문강좌 행사가 최근 줄을 잇고 있다.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행사는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학문 간 경계를 넘어, 세상과 대화를 시도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 엿보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석학들이 진행하는 인문강좌를 연재한다. [편집자 註]

석학 인문강좌 중국의 대표적인 신화집 가운데 ‘산해경(山海經)’이 있다. 기원전 3~4세기경에 쓰여진 이 책에는 중국과 변방 지역의 기이한 사물·인간·신들에 대한 기록과 그림이 실려 있다.

근대 이후 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이 책이 종교적으로 샤머니즘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산신에 대한 제사에서 쌀을 바친다든지, 곤륜산(崑崙山) 등의 커다란 산, 건목(建木)과 같은 세계수에 대한 숭배, 가뭄 때 희생되는 무녀(巫女)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무당들의 지침서였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또한 일부 학자들은 이 책이 고대 여행기였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의 입장에서 ‘산해경’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중국의 신화뿐만 아니라 인근의 여러 민족과 한국·일본·월남·티벳·몽고 등 동아시아 전역의 고대문화와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도연명, 루쉰 등 산해경 읽고 깊은 감명

왜냐하면 ‘산해경’ 신화가 형성되던 시대의 대륙은 오늘날 같이 하나의 중국이 존재했던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종족이 이합집산을 거듭했던 무대였기 때문에 학자들은 . ‘산해경’을 중국만의 신화집으로 보지 않고 있다.

▲ 산해경. 현대인이 보기에 기묘한 이미지들을 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산해경’에 남자인어, 머리 없는 인간과 같은 독특한 그림들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언뜻 보았을 때 기괴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국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陶淵明, 365~427년)을 비롯, 근대의 문호 루쉰(魯迅)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준 그림들이다.

1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에서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는 이 ‘산해경’ 이미지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첨가했다.

정 교수는 산해경이 본래 그림이었다는 가설에 동의한다면, “본래 그림책이었던 ‘산해경’은 무당 계층의 사람들에 의해 해석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그림들에 대해 설명을 첨가했는데,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몸’이라고 말했다. ‘산해경’을 이해하려고 하려면 신화에서 표현하고 있는 ‘몸’에 대해 그 의미를 읽어내야 한다는 것.

세계를 창조한 신 반고(盤古)를 예로 들 수 있다. 그의 몸은 단순히 썩어 없어지는 덧없는 존재가 아니다. 반고의 몸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로 거듭난다. “인간의 형상을 한 우주적 거인 반고을 인간으로 환치(換置)하면 인간의 신체는 곧 우주라는 등식이 성립한다”고 말했다.

“인간과 자연은 하나가 돼야 한다”

다시 말해 소우주인 인체는 대우주인 우조와 유비(類比)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유는 고대 동아시아에서 “인간과 자연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라는 이른바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관념으로 정착했다.

한(漢) 대의 도가서 ‘회남자(淮南子)’는 이 관념을 다음과 같이 확대했다. “머리가 둥근 것은 하늘을 본뜬 것이며, 발이 네모진 것은 땅을 본뜬 것이다. 하늘에 사계절, 오행, 아홉 지점, 366일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사지, 오장, 아홉 개의 구멍, 366개의 골절이 있다. 하늘에 비, 바람, 춥고 더움이 있듯이 사람에게도 빼앗고 줌, 기쁘고 슬픔이 있다.”

▲ 정재서 이화여대 교수(중문학) 
천인합일관은 후대에 이르러 청(淸) 대에 그려진 ‘내경도(內徑圖)에서 한폭의 그림으로 재현된다. 이 그림을 보면 인체가 마치 산, 강, 들, 숲, 바위 등으로 형상화되어 마치 지형도와 비슷하다.

도교에서는 인간 신체 내 오장에 신들이 깃들어 있는데, 이들 신이 각자의 자리를 잘 지키고 있으면, 그 기관은 건강하고, (신이) 자리를 떠나거나 불안정하면 병이 든다고 상상했다. 따라서 명상이나 호흡법 등을 통해 체내신(體內神)을 안정시키려 했다.

한(漢) 대의 도교경전인 ‘태평경(太平經)에서는 체내신을 “사계절과 오행(五行)의 정(精)과 신(神)이 사람의 몸에 들어가면 오장(五臟)의 신이 되고, 나가면 사계절과 오행의 신과 정이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자연의 기운은 인체에 들어가 체내신이 되어 오장 각 기관에 진좌(鎭坐)한다. 체내신은 자연의 기운이 형상화된 셈인데, 그 결과 자연의 가장 생동적인 현현인 동물의 이미지를 취한다.

따라서 주작(朱雀), 머리 둘 달린 사슴 등 체내신의 원형은 신성한 복합동물이다. 이 동물들의 이미지가 체내에 들어옴으로써 인간과 자연의 합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대인들, 천인합일 관념 상상력으로 표현

‘산해경’을 보면 각양각색의 기형적 모습을 한 이미지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전쟁의 신 형천(刑天)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형천이 이곳에서 천제와 신의 지위를 다투었는데, 천제가 그의 머리를 잘라 상양산에 묻자 곧 젖으로 눈을 삼고 배꼽으로 입을 삼아 방패와 도끼를 들고 춤추었다.”

혼돈의 신 제강(帝江)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곳의 어떤 신은 그 형상이 누런 자루 같은데 붉기가 빨간 불꽃같고, 여섯 개의 다리와 네 개의 날개를 갖고 있으며 얼굴이 전혀 없다. 가무를 이해할 줄 아는 이 신이 바로 제강이다.”

탐욕의 화신 상류(相柳)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공공(共工)의 신하를 상류씨(相柳氏)라고 하는데 아홉 개의 머리로 아홉 개의 산에서 나는 것을 먹는다. 상류가 이르는 곳은 모두 못이나 골짜기로 변한다. 우(禹) 임금이 상류를 죽였는데, 그 피가 비려서 오곡의 씨앗을 심을 수 없었다.”

불사약을 지닌 미모의 여신으로 알려진 ‘서왕모(西王母)’ 모습이 산해경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인반수의 모습이다. 호랑이, 표범 등 맹수와 합쳐진 무시무시한 모습의 신이다.

▲ 17일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석학과 함께 하는 인문강좌' 

신화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런 모습들은 자연과 인간의 합일사상을 갖고 있던 고대인들의 생각을 진솔하게 담고 있다.

그들은 자연의 화신인 체내신의 신화적 이미지를 매개로 현실에서도 완전한 개체를 이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요즘처럼 건강관리와 미용, 성형 등을 통해 만들어지는 외형적인 몸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몸이었다.

고대인들은 상상력을 통해 끊임없이 천인합일을 꿈꿔왔으며, 이 같은 상상력이 중국 신화를 통해 지금까지 전달되고 있으며, 또한 지금까지도 현대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4.19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