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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과학기술의 역사를 돌아본다 (5) 한국과학창의재단 출범과 나로호 발사까지

우리 과학기술의 역사를 돌아본다 (5) 한국과학창의재단 출범과 나로호 발사까지 2010년 04월 23일(금)

1967년 4월, 정부는 과학기술처 설립을 기념해 21일을 ‘과학의 날’로 선포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21일을 전후해 일주일간 이어지는‘과학주간’을 맞아, 세계 정상을 향해 치달아온 한국 과학기술의 역사를 5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註]

'과학의 달' 특집 한국의 과학기술은 어느 수준인가. 지난 2008년 말 교육과학기술부는 과학기술기본계획(2008~2012년)에 따라 중점 개발해야 할 10개 분야 364개 기술수준을 분석했다.

1천943명의 전문가가 참여한 이 조사결과 미국은 전체의 74.2%에 달하는 270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EU가 60개, 일본이 34개를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한국은 아직 단 한 개의 최고 기술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한국은 향후 5년 간 예측에 있어서도 단 하나의 최고 기술을 보유하지 못할 것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반면 중국은 의료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고 기술 1개를 등록한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매우 암담한 조사결과였다.

당시 조사대상 분야는 정보·전자·통신, 의료, 바이오, 기계·제조공정, 에너지·자원, 우주항공·해양, 환경·기상, 나노·소재, 건설·교통, 재난·재난 등 10개 분야의 현재 대규모 R&D가 진행되고 있는 364개 분야를 모두 포괄하고 있었다.

세계시장 1위 점유율 품목 127개

다행스러운 것은 이 같은 기술격차에도 불구하고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 삼성 D램. 한국산 D램이 세계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해 세계적 브랜드컨설팅 그룹인 ‘인터브랜드’는 글로벌 100대 브랜드를 발표했다. 가치평가 결과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19위, 현대자동차가 69위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전년 대비 2단계, 현대자동차의 경우 전년 대비 3단계가 상승한 것이다.

지난 2008년 말 지식경제부가 발표한 세계시장 점유율 1위 품목에 있어서도 1위를 차지한 품목이 127개로 5년 전인 2002년 49개보다 78개가 증가했다. 두 배를 훨씬 넘어선 수치다.

한국산 D램(시장 점유율 49.1%)과 LNG 운반선(점유율 80.5%), TFT-LCD(38.5%) 등은 세계 1위를 굳건히 지켰다. 비디오테이프도 점유율 85%로 세계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카지노에서 쓰는 모니터(60.3%), 새수 담수화 설비(43%), 자전거용 신발(34%), 오토바이 헬멧(32.5%) 등도 수출 효자노릇을 했다.

그러나 한국의 세계 1위 품목이 앞으로도 그 자리를 굳건히 고수할 만큼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시기 한국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한국의 1위 품목은 2002년에 비해 10% 가량 줄어들었다. 이런 차이가 발생한 것은 조사 방법과 인용 통계가 달랐기 때문.

원전 수주는 한국 과학기술력의 개가

무역연구원 보고서는 유엔 통계를 분석한 것으로 매년 같은 품목을 놓고 세계 1위가 어느 나라 제품인지 조사하고 있다. 반면 지식경제부는 매년 수십 개의 일류상품을 더 추가하면서 이중 세계 1위가 어느 품목인지 잡아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을 포괄적으로 진단했을 때 중국 등 신흥 공업국의 맹추격으로 한국의 1위 상품 입지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선진국과 신흥 공업국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된 한국의 입장에서 탄탄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신고리 원전 건설현장. 최근 UAE 수주에 성공한 차세대 경수로 'APR1400'과 동일 모델이다. 

문제는 국가경쟁력이다. 한국 제품의 경쟁력은 아직 선진국 수준에 훨씬 못 미치고 있다. 지난 2007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와 한국무역진흥공사는 산업정책연구원에 의뢰해 미국, 중국, 영국, 독일, 일본 등 21개국 대도시에 사는 성인남녀 2천809명을 대상으로 ‘국가브랜드 맵(map)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동일 제품을 놓고 한국 제품·서비스와 외국 제품·서비스 가치는 큰 차이를 보였다. 동일한 제품·서비스를 놓고 각국 제품별로 얼마나 받을 수 있을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100달러)을 기준 독일이 155달러, 일본이 148.7달러, 미국이 각각 148.6달러라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 제품이 71.2달러로 한국 제품보다 매우 낮은 가격임을 위안 받을 수 있지만 최근 중국의 급속한 변화를 생각했을 때 마음을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한국이 지금의 자리를 넘어서 선진국으로 부상하기 위해서는 세계 시장에서 선진국들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원천기술 확보가 관건이다.

원천기술 확보가 손쉬운 일이 아니다. 지난 연말에 있었던 원전 수주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선진국들이 한국을 경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확보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다.

과학기술 없이는 선진국도 없다

그러나 한국은 1978년 고리 1호기를 건설했던 경험을 기반으로 1992년부터 신기술 개발에 총력을 기울였고, 1999년 차세대 원전 ‘APR1400’, 2007년에는 이를 업그레이드한 ‘APR+’ 완성했다.

‘APR+’을 보고 한국 원전 기술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평가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 원자력 전문가들의 이런 평가는 지난해 12월 한전이 주도하는 ‘한국형 원전 컨소시엄’이 아랍에미리트(UAE)가 발주한 원전 건설사업자로 선정되는 쾌거로 이어졌다. 1959년 국내 최초의 연구용 원자로인 ‘TRIGA MARK-II' 기공식을 가진 지 50년 만의 일이다.

▲ 지난해 8월 나로호 발사장면. 오는 6월19일 2차 발사를 앞두고 있다. 

한국형 원전의 성공 사례는 기술력이 단 기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온 국민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나로호(KSLV-1) 발사 또한 마찬가지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9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오는 6월19일을 나로호 발사 예비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발사가 진행되고 있는 지금 한국 우주개발의 역사가 20년도 채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한국의 위성발사체 개발은 1993년 고체추진 과학로켓인 ‘과학 1호’를 발사한데서부터 시작한다.

1957년 소련이 인류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했던 것과 비교하면 약 40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단 기간에 발사체를 쏘아 올리는 만큼 선진국들로부터 기술과 경험을 전수받기 위해 어떻게 보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과학기술의 미래 책임질 창의인재 키워야

최근 KAIST 서남표 총장은 최근 과학기술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미국이 어떻게 반 세기만에 놀라운 성과를 이룰 수 있었는지에 대해 설명한 적이 있다. 서 총장은 이어 우수갯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미국이 과학기술에 모든 힘을 집중하도록 만든 것이 히틀러와 소련이었다고 말했다.

히틀러는 유럽의 훌륭한 과학기술자들은 미국으로 망명하도록 한 장본인으로, 당시 미국은 망명 과학기술자들을 대학, 연기기관, 정부 및 기업 등지에 기꺼이 받아줌으로써 향후 미국 과학기술이 크게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련 역시 큰 기여를 했다. 미국은 냉전시대 소련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연방예산의 약 6%에 달하는 금액을 국방예산에 투입했다. 제한된 수의 대학들을 선택해 특정 분야 연구에 집중했는데, 그 결과 미국은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었다.

미국과는 달리 유럽 국가들은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과학기술자에 대한 대우는 물론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관심도가 미국보다 훨씬 덜한 상황이었다. 그 결과 지금 유럽의 대학들은 과학기술의 변방지대가 됐으며, 국가 과학기술력에 있어서도 미국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한국 역시 지금 미국과 비슷한 상황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 안보문제가 새롭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산업 측면에서는 주변 국가들과 거의 전쟁에 가까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해나가기 위해 무엇보다 과학기술 인력과 인프라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국에는 조선시대 말기 실학운동, 일제시대 조선인을 중심으로 추진된 ‘과학데이’, 해방 이후 한국과학창의재단을 중심으로 진행돼온 과학 대중화운동의 전통이 있다.

▲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지난해 9월 기존 한국과학문화재단에서 확대·개편되어 새로이 출범했다. 

신기술 개발을 위한 창의성 역시 미래 관건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을 비롯 모든 교육기관에 있어 창의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교육제도 전반에 있어 창의성을 위한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여러 모로 보았을 때 이번 나로호 2차 발사가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나로호 발사에는 과학 대중화는 물론 한국 과학의 기술력, 창의성, 가능성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과학의 달 특집 ‘우리 과학기술의 역사를 돌아본다’를 마치며, 나로호 발사가 성공하기를 다시 한번 기원한다.

이강봉 편집위원 | aacc409@naver.com

저작권자 2010.04.23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