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인터뷰

[커버스토리]한국IT ‘샴페인’ 일찍 터뜨렸나

[커버스토리]한국IT ‘샴페인’ 일찍 터뜨렸나

위클리경향 | 입력 2010.04.22 10:53

 

ㆍ애플발'모바일 혁명'에 "삼성의 시대 가고 애플의 시대 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애니콜신화'는 이미 먼 기억속으로 사라졌다. 아이폰을 대명사로 한 스마트폰의 광풍은 이미 '제2의 IT혁명' '모바일혁명'이라는 고유명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경영 복귀 일성인 "앞으로 삼성을 대표하는 상품이 10년 안에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말은 도요타 사태와 더불어 아이폰 돌풍을 염두에 둔 말로 해석되고 있다.

↑ 애플과 레인콤이 몇 년 전에 MP3 플레이어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모습의 이미지 컷.

↑ 삼성전자가 지난 2월 14일(현지시간)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개막된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10’에서 독자 플랫폼인 ‘바다’를 탑재한 스마트폰 ‘웨이브’를 공개하는 모습.

그동안 한국의 정보통신(IT)산업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고속성장을 해 왔다. 반도체와 휴대전화를 필두로 하는 IT산업의 눈부신 발전은 한국을 가구당 인터넷보급률 1위로 끌어올렸고,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휴대전화는 전 세계 시장을 잠식해 나갔다. 특히 삼성전자의 '애니콜'은 '일류삼성'을 외치는 '갑옷'이었다. 그러나 1996년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 확정되고 불과 1년만에 외환 위기가 닥치자 외국 언론이 "한국이 샴페인을 너무 일찍터뜨렸다"고 비아냥대던 기억이 채 가시기도 전에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거대 통신사 스스로 장벽 만들어


한국사이버대 컴퓨터공학과 곽동수 교수는 "소니의 시대가 지고 삼성의 시대가 왔었지만 이제 삼성의 시대가 가고 애플의 시대가 왔다"면서 "이제는 '양'이 아니라 '질'로 승부하는 시대다. 통계자료만 봐도 '얼마 팔았냐'가 아니라 '이익이 얼마인가'가 중요하다. 현재의 시장점유율은 무의미하다"라고 분석했다. 곽 교수는 또 "지난해 말 스마트폰의 전망에 대한 간담회에 참석했을 당시 정부 관료와 업계 임원들이 내린 결론이 '스마트폰 별 거 없다'란 것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 당하는 이유다"라고 밝혔다.

유진투자증권 정보통신분야 김동준 애널리스트는 "지금 같은 상황은 오히려 잘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동안 '위피'(한국무선인터넷표준화포럼이 제정한 무선 인터넷 플랫폼 표준 규격)를 가지고 철옹성을 구축했던 국내정보통신업계가 정신을 차릴 수 있는 계기이기 때문이다"면서 "불과 수 년 전에 위피를 앞세워 국내산업 보호를 명분으로 외국산 휴대전화가 들어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했기 때문에 우리나라만 혼자 잘 나가는줄 알았고, 그 결과 '고립된 섬'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위피 때문에 국내에 경쟁상대가 없었고, KT나 SK텔레콤 등 거대 통신사업자들이 폐쇄적인 구조를 가지고 휴대전화에 독점적인 콘텐츠를 올려 독·과점을 해 왔기 때문에 지금 진행 중인 개방형 유통시장에 대응을 못하게 됐다"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애플발 '모바일혁명'이 삼성전자와 LG전자를 IT부품업체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금은 '디바이스+플랫폼+서비스+콘텐츠 기반'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애플발 융합의 시대'이지만 삼성전자나 LG전자는 디바이스만 잘 만들 줄 알 뿐 플랫폼과 서비스와 콘텐츠를 엮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하는 애플식 추진력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곽동수 교수는 "삼성전자가 만든다고 하는 새로운 운영체제(OS)를 탑재한 스마트폰은 급조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면서 "애플은 이미 시대를 앞서가는 리더가 됐고, 내놓는 것마다 새로운 트렌드를 창출하고 있어 삼성의 반격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LG전자 부품업체로 전락 우려

삼성과 LG가 스마트폰의 위력을 뒤늦게 깨닫고 안드로이드폰으로 한 발짝 대안을 찾는 사이 애플은 벌써 '두 발짝'을 내딛고 있다. 지난 4월 8일 애플은 새로운 OS 4.0을 발표했다. 애플은 OS 4.0을 발표하면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디바이스)+애플OS 4.0(플랫폼)+아이튠스, 앱스토어, 아이북스, 아이애드(광고서비스)+음악, 동영상, 애플리케이션, 전자책, 광고, 게임(콘텐츠)을 망라하는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했다고 선포했다. 현재까지 아이폰은 세계적으로 5000만대 팔렸고, 연말에는 1억대를 예상하고 있다. 국내시장에서도 아이폰의 위력은 놀랄 정도다. KT에 따르면 아이폰은 국내에 출시된 지 4개월여 만에 50만대 판매를 돌파했다. 아이폰이 출시된 전 세계 88개국 가운데 1년 내 판매량 50만대를 돌파한 국가는 미국 등 7개국에 불과하다. 이미 300만대를 돌파한 일본도 50만명을 넘어서는 데는 7개월이 걸렸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라던 삼성전자나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공짜폰'이라도 팔아야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는 입장이 됐다.

대한민국의 거대 통신사업자인 KT나 SK 텔레콤은 서로 애플의 아이패드를 출시하겠다고 선포한 상태다. 이제 막 시작된 전자책 시장에서 국산 단말기는 몇 대 팔아보지도 못하고 애플 아이패드에 시장을 내줄 지도 모른다. 국내 가요 음원을 관리하는 한국음원제작자협회는 애플의 아이튠스를 통해 전 세계 81개국에 음원서비스 공급을 시작했다. 국내 신문, 잡지 등 미디어업체들도 애플 아이폰용 및 아이패드용 애플리케이션을 만들기에 바쁘다. 이것이 IT 강국이라던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애플발 '모바일혁명'은 물론 국내업체에만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휴대전화 세계시장점유율 1위인 노키아는 자체 OS인 '심비안'을 가지고 있고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사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블랙베리'를 만든 LIM은 이미 스마트폰 분야에서 충분한 투자를 해 왔다. 대만 업체는 OS 개발 대신 스마트폰 제조국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대만 아수스(ASUS)와 손잡고 운영체제 '윈도폰7'을 탑재한 자사 브랜드 휴대전화를 개발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애플의 '아이폰'과 구글의 '넥서스원', 'MS폰'까지 최근 '핫아이템'을 모두 대만 업체가 장악하게 됐다. '아이폰'은 대만의 폭스콘에서 제조하고 '넥서스원'은 역시 대만의 HTC에서 만든다. 이 때문에 휴대전화 시장이 격변하는데 한국만 어정쩡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지적도 나온다. 구글은 소니에릭슨과 삼성에 대만의 HTC보다 먼저 '넥서스원' 제조 제의를 했지만 양사는 모두 이를 거절한 바 있다.

국내업체 OS 개발 전환점 삼아야

그러나 아직 낙담은 이르다는 견해도 우세하다. LG경제연구소 전자전략실 김치헌 선임연구원은 "국내 업체가 OS 개발에 뒤처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경쟁력으로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애플의 OS 자체가 좋은 것이라기보다는 스마트폰 유저들의 '사용경험'(UX:User eXperience)에서 좋은 점수를 얻었다고 볼 수 있다" 고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또 "삼성전자, LG전자를 비롯한 국내 업체는 이런 추세를 빠르게 따라갈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서 "삼성과 LG 등이 기존의 피처폰(일반폰)시장에서 지니고 있는 안정적인 수익구조와 기본 역량을 최대화하면서 차별화한 서비스로 승부한다면 오히려 새로운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 이라고 분석했다. 키움증권 안재민 연구원은 "삼성전자가 현재 새로운 OS를 서두르는 이유는 이대로 가면 결국 구글에 끌려 다닐 수 있는 절박한 입장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플과 구글의 OS 장점을 받아들여 차별화한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는 잠재력이 충분히 있다"고 전했다.

삼성 '아이리버 전철' 밟을 것인가


'아이리버'가 '아이팟'에 완패했듯이 '애니콜'도 '아이폰'에 결국 발목을 잡힐 것인가?

한때 MP3의 대명사였던 아이리버의 '크래트프'는 미국 시장 진출 6개월만에 시장점유율 1위라는 놀라운 기록을 달성했다. 1999년 3억원의 자본과 7명의 직원으로 태동한 아이리버는 이듬해 미국 소닉블루에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 브랜드로 납품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디자인으로 아이리버의 신화를 탄생시킨 '프리즘'을 만들었고, 연이은 신모델 '크래프트'의 돌풍으로 미국 시장 진출 5년만인 2004년에 무려 4540억원의 매출을 올려 400배가 넘는 신장세를 보이면서 세계 MP3 시장의 11%를 잠식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은 아이리버 제품을 미국 최대의 소비자가전쇼(CES) 공개시연회에서 수차례 소개할 정도로 인정해 줬으며, MS의 스티브 발머 사장 역시 "한국은 혁신과 하이테크의 나라"라고 치켜세울 정도였다. 당시 MS의 전략은 애플의 아이튠스 서비스에 맞춰 아이리버를 우군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2005년 애플의 '아이팟'이 등장하면서 아이리버는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소비자들의 열광에 당황한 레인콤은 정작 중요한 기술 개발은 도외시한 채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었고,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만든 'H10'은 아이팟의 '짝퉁'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결과 'MP3 종가'로서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매출은 3분의 1로 떨어지고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후발주자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고 놀림받던 애플의 아이팟은 2001년 출시된 이래 5년만에 1억대 판매를 돌파, 아이리버를 완패시키고 MP3의 대명사로 군림하기 시작한다.



아이리버의 완패는 여러 가지로 분석된다. 첫 번째는 초기 성공에 너무 안주해 자만했다는 평가다. '프리즘'과 '크래프트'의 성공에 취해 몇 년 동안 새로운 디자인 혁신을 보여 주지 못했다는 평가다. 아이팟이 나왔을 때 아이리버는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를 쫓아가지 못했고, 더 이상 혁신적인 디자인이 나오지 못했다. 두 번째는 아이튠스와 같은 새로운 트렌드를 몰랐기 때문이다.



이미 레드오션이 된 MP3 플레이어 시장을 회생시킨 애플의 온라인 음악서비스인 아이튠스는 아이팟에 내장해 쉽게 접속할 수 있도록 한 새로운 발상이었다. 반면에 아이리버는 이런 시장의 트렌드나 소비자의 니즈(needs)를 전혀 읽지 못했다.



최근 스마트폰 시장에서 이러한 일이 재현되고 있다는 평가다. 원래 휴대전화 제조업체도 아닌 후발주자인 애플이 독특한 디자인과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한 첨단 기능과 안정적인 플랫폼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고 있다.



아이리버가 프리즘과 크래프트로 잘나가고 있을 때 아이팟으로 빠르게 시장을 잠식한 것과 비슷하다. 아이튠스와의 결합으로 아이팟의 새로운 가능성을 연 애플이 아이폰에서도 앱스토어를 통해 아이폰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는 점도 그렇다. 아이리버가 아이튠스라는 새로운 트렌드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처럼 삼성과 LG도 지금 마찬가지다. 또 하나는 아이폰의 성공신화에 삼성과 LG의 휴대전화 디자인이 아이폰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옴니아2나 아이폰은 디자인 측면에서 매우 유사한 컨셉트다. 과거 슬라이드폰이나 폴더폰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이는 아이리버가 아이팟의 성공에 자극받아 아이팟 디자인을 모방한 것과 유사하다.

<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

- 대한민국 희망언론! 경향신문, 아이폰 애플리케이션 출시 -

ⓒ 경향신문 & 경향닷컴(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