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좀 먹으면 안되냐
와인잔이 그렇게 생긴 데에도 다 이유가 있고 소주잔이 그렇게 생긴 데도 다 이유가 있다.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 잡는 방법만 틀려도 맛이 다르다고 호들갑이다. 게다가 맛만 문제가 아니다. 분위기도 좌우한다. 와인을 사발에 마시면서 우아한 분위기를 잡긴 어려울 것이다.
또 경제적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가 막걸리 전용잔 개발에 뛰어든 이유를 들어보자. 농식품부 쪽은 “소주나 맥주, 위스키 하면 떠오르는 정형화된 잔이 있는데, 막거리는 다들 제각각이라 한잔의 평균 용량이 얼마인지도 모른다”며 “적정 음주량을 측정하고 알리는 데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 “막걸리 수출과 함께 잔 수출도 늘어날 텐데 용량이나 모양을 표준화해놓으면 민간 기업들이 잔을 만드는 데 좋은 참고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막걸리가 뜬 김에 잔도 같이 띄워 더 큰 부가가치 창출을 해보자는 이야기다.
[매거진 esc] 전문가와 술집이 말하는 막걸리잔의 이상적인 용량·재질·모양
김아리 기자
» 막걸리잔, 최적의 조건을 찾아라
막사발 vs 글라스 혹은 전통 vs 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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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잔을 둘러싼 고수들의 입장은 대략 두 갈래로 나누어져 있다. 막걸리는 후루룩 단숨에 들이켜며 막사발로 마셔야 제맛이라는 쪽과 새로운 막걸리 음주문화를 창조해야 한다며 다양한 잔을 시도하는 쪽이다.
일단 전문가들은 전통을 고수하거나 전통에서 약간의 개선을 가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전통주연구소 쪽은 “막걸리의 특성은 도수가 낮고 청량감이 강하다는 것”이라며 “따라서 시원함을 보존하는 재질에 한번에 들이켜기에 알맞은 크기로 제작하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론 “지금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사발 정도의 크기면 한번에 들이켜기에 부담도 없고 적당하며, 재질의 경우 양푼은 너무 쉽게 차가워지거나 뜨거워져 시원함이 유지되기 어렵고 플라스틱 또한 시원함을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도자기가 가장 낫다”고 지적했다.
신라대 막걸리세계화연구소 배송자 소장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막걸리는 숨을 쉬는 옹기로 만든 사발에 마시는 게 제맛”이라며 “소박하고 투박한 모양의 사발이 막걸리의 전통과도 맥락이 같지 않겠냐”고 말했다.
국순당 쪽은 “막걸리는 소주나 와인과 달리 벌컥벌컥 마셔야 맛있기 때문에 일반 술보단 상대적으로 용기가 커야 하고 단맛·신맛 등 오미를 한번에 느낄 수 있게 잔의 표면이 넓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백세주마을과 우리술상 등의 전통주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국순당은 사기 재질의 ‘막사발’을 쓰고 있다. 크기는 밥공기와 국그릇 중간 정도 된다. 단 걸쭉하고 도수가 12.5도로 상대적으로 독한 고급 막걸리인 이화주는 용량이 작은 자기에 서빙하고 있다.
반면 젊은이들이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뜨고 있는 막걸리집에서 쓰는 잔들은 이런 전통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고 있다.
서울 홍대 앞 막걸리집 ‘친친’에선 소주잔보다도 더 작은 백자(흰색 자기)에 술을 내놓고 있다. 기존의 막걸리 음주문화가 힘든 일이 있을 때 벌컥벌컥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경향이 강해 천천히 음미하면서 맛있게 마시라는 의도란다. 술잔을 받은 대부분의 손님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하단다. 친친 쪽은 “술집의 취지를 잘 설명하면 흔쾌히 받아들이기도 하는데 간혹 더 큰 잔을 요구하는 손님들도 있다”고 말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큰 유리잔과 밥공기 크기의 사기그릇도 준비해 놓고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압구정동에서 잘나가는 카페 ‘무이무이’에선 자체 제작한 파란빛이 감도는 유리잔을 내놓고 있다. 이 술집의 콘셉트가 ‘모던 갤러리’이기 때문에 이런 분위기에 맞게 유리공예가가 잔과 병을 세련되게 디자인한 것이다. 용량은 밥공기보다 약간 작은 크기로 잔 윗부분의 일부가 돌출돼 그쪽으로 입을 대어 먹을 수도 있고 손잡이로 써도 되게 만들었다.
전용잔 주도권을 잡아라…업체들 경쟁 치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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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발빠르게 시판 전용잔을 내놓은 도자기업체는 젠한국. 지난 1월 샘플을 출시한 데 이어 4월부터 판매에 들어갔다. 젠한국이 내놓은 전용잔(오른쪽 사진)의 특징은 용기 아래에 손잡이가 달렸다는 점. 기존 막걸리잔들이 손잡이가 없어서 건배할 때 불편한 점과 손이 잔에 닿아 술의 제 온도가 유지되지 않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행남자기는 분청을 소재로 한 전용잔을 개발중이며, 국순당 역시 산학협력으로 개발중인데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이란다.
글 김아리 기자 ari@hani.co.kr
사진〈한겨레〉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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