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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콘텐츠 유료시장의 현황과 신규 유료 시장의 창출 가능성


만화콘텐츠 유료시장의 현황과 신규 유료 시장의 창출 가능성 만화 이야기

오픈마켓,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 7월 10일 만화계 토론회
서찬휘 발제자료 : 만화콘텐츠 유료시장의 현황과 신규 유료 시장의 창출 가능성


자료집 용으로 준비한 글입니다. A4 18쪽 분량입니다.
발제용 PPT는 별도로 준비했기 때문에 이 내용엔 오늘 발표한 부분 가운데 일부가 없습니다.




- 문제의 대두

지난 5월 28일 네이버는 모바일 전용 서비스인 '네이버 모바일'을 개편하고 기존에 이동통신망이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모바일 369)가 아닌, 아이팟 터치라는 애플 사의 기기를 이용하여 활용할 수 있는 여러가지 기능들을 제공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엔 관심 정보를 구독할 수 있는 네이버 식의 뉴스 채널 격인 오픈 캐스트, 실시간 교통 정보를 볼 수 있는 지도 등이 있었습니다. Wi-Fi(와이파이), 흔히 무선 랜 또는 무선 인터넷이라 부르는 무선 신호가 잡히면 이동통신망에서 제공하던 서비스와는 전혀 다른 빠른 속도로 이 정보들을 검색하고 이용할 수 있지요.

그 가운데 하나로 웹툰 서비스도 들어갔습니다. 네이버로서는 자사의 자본으로 꾸준히 생산하고 갱신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콘텐트로서 웹툰에 주목한 셈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서비스가 단순히 모바일 기기에서 웹툰에 맞춘 프로그램에서 무선 인터넷을 통해 서버에 접속, 작품을 읽어다 보여주는 브라우징 방식(또는 스트리밍) 뿐 아니라 기기에 내려받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제공했다는 것입니다. 무료로 말이지요. 30일이라는 기한 제한이 있습니다만, 다시 받으면 그만입니다.

그리하여 6월, 이와 관련해 만화계에서 비판 여론과 논란이 거세게 일기 시작합니다.


- 애플 앱스토어 개괄과 사례 소개

이동통신망을 이용한 모바일 서비스인 모바일369와는 달리 네이버의 새 서비스는 애플에서 나온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 터치(iPod Touch)를 이용, 애플에서 제공하는 콘텐트 오픈 마켓인 애플 앱스토어에 접속해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좀 의아해하실 분들이 계실 듯합니다. 아이팟 이용자가 몇이나 된다고? 근데 애플 앱스토어를 비롯해, 아이팟의 인터페이스와 구동 가능 프로그램들은 같은 애플에서 제작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폰(iPhone)과 호환됩니다. 아이팟이 MP3 플레이어라면, 아이폰은 그 멀티미디어 재생 기능도 포함하고 있는 '전화'입니다. 사실은 이게 본론이죠. 요 얼마간 뉴스를 눈여겨 보신 분이라면, 아이폰이 국내에 들어올 예정이네 아니네 하는 이야기를 들어 보셨을 겁니다.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도입을 꺼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말이죠.

애플 앱스토어는 지난 4월 기준으로 애플이 전 세계 1600만 대를 판 아이팟과 2100만 대를 팔아먹은 아이폰을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콘텐트 오픈 마켓입니다. 최저가 0.99달러를 시작으로 다양한 가격대를 단 어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들이 올라오고 있고, 이용자들은 아이팟/아이폰 특유의 간결한 인터페이스를 이용해 몇 번만 누르면 유료로 결제해 자기 기기에 간편하게 설치해서 쓸 수 있습니다. 요금은 나중에 휴대전화 요금에 합산되어 나오고요.

앱스토어는 App Store라고 씁니다. 여기서 App란 애플리케이션(Application)의 앞 글자를 딴 표현입니다. 여기에 오르는 프로그램들을 가리켜 복수형을 써서 앱스(Apps)로 부르기도 합니다. 즉, 앱스토어란 모바일 기기에서 이용할 수 있는 앱스들을 사고 팔 수 있는 온라인 매장을 뜻합니다. 그리고 '애플 앱스토어'는 애플이 열어놓은 앱스토어인 거고요.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앱스토어에 '상품'을 내놓는 주체는 애플이 아니라 일개 개인 또는 소규모 회사 단위라는 겁니다. 즉 누구나 콘텐트를 제작해 올리고, 이를 유료로 팔아서 수익을 낼 수 있습니다. 이동통신사를 통해야만 내보일 수 있었던 기존 모바일 콘텐트 시장과는 시작 지점부터가 완전히 다릅니다.

여기에 오르는 건 기본이 프로그램인지라 일정관리나 사무 등을 돕는 데 쓰일 수 있는 기능들을 담은 경우가 많지만, 한편으로는 간단히 즐길 수 있는 게임 등도 많이 오릅니다. 뷰어를 응용해 간단히 읽을 수 있는 책 종류들도 오르기도 하며, 만화 또한 그 가운데 하나로 다양한 작품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일개 개인 단위도 직접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발상이 먹힌 덕에 앱스토어 시장은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줍니다. 1년도 채 되지 않은 9개월만에 전 세계적으로 10억 다운로드를 기록한 것이죠. 중간중간 판촉을 위한 무료 콘텐트도 있지만 가격이 천차만별임을 감안해 ±로 생각해 단순히 0.99달러로 10억을 계산해 보면, 적당히 이 시장이 어느 규모인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9억9천 달러란 말이에요. 자그마치 1조2천억여 원. 게다가 매일 평균 150건 안팎의 앱스가 새로 등록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우리나라 화성에서 살고 있는 한 직장인이 개발한 게임 헤비 매크(Heavy Mach)가 0.99달러로 앱스토어에 올라 전체 5위, 게임 분야 3위에 오르면서 한 달여 만에 10만 달러 이상의 순수익을 거둔 사례가 대표적인 사례죠. 이거 직장인 둘이서 만든 게임입니다. 10만 달러면 얼맙니까. 억 단위군요.

일개 개인이 이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앱스토어의 장점이자 매력입니다.


- 출판만화와 웹툰의 반목(?)

문제는 네이버가 이런 곳에 진출하면서부터입니다. 사실 무선 랜(Wi-Fi) 신호가 잡히는 곳에서 기존 네이버 웹툰 서비스에 접속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해 주는 서비스라면 이미 지금도 이동통신사를 통해 제공하고 있는 거고 오즈 같은 기기가 지원하는 풀 브라우징으로도 가능한 거니까 문제가 없습니다만, 문제는 무료로 내려받아 기기에 저장해 두는 소장 개념을 덧붙였다는 거였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논란이 시작됐지요.

근데 애플 앱스토어에 관한 이야기를 해야 할 시점에 느닷없이 감정싸움이 끼어들기 시작합니다. "돈도 못 버는 퇴물들의 질투" 대 "만화계를 무너뜨린 웹툰이 또 무슨…"의 구도를 형성하질 않나, 네이버가 돈을 잘 주는 데 무슨 문제냐 나는 네이버가 좋아요 분위기로 나서는 작가들이 나타나질 않나. 한가지 덧붙이자면 연구가 계열인 이들은 작가도 아니면서 괜히 나서서 나대는 잉여물 취급까지 당했습니다. 안 그래도 앱스토어와 관련한 논의만으로도 복잡할 판에 감정싸움이 끼어드니 앞으로 나가긴 커녕 퇴행할 조짐마저 보이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논의의 한 축을 이해하려면 무슨 소리가 왜 나오고 있는지를 아는 것도 필요하기에 지루하지만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출판만화 시장은 1980년대 말 일본식 잡지 시스템을 도입한 출판사들이 대거 등장하며 한 때 활황을 맞이했지만, 1997년 청소년보호법 사태와 도서대여점과 만화총판을 기반으로 한 시장 기형화를 겪으며 판매 시장을 제대로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도서 대여점의 몰락과 함께 동반 축소를 겪었죠. 마침 당시는 초고속 인터넷이 전국에 유행하기 시작하던 때였고, 많은 이들이 그 대안점으로 새로 등장한 무대인 웹을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초기에 시장 선점을 위해 "넌 아직도 만화를 돈 주고 사 보니?"라던 라이코스 코리아를 비롯해 코스닥 상장이 목표였을 뿐인 N4 등은 자체 동력이 전혀 없는 상태여서 성장을 할 수 없었고, 데이터 보안마저 지극히 취약해 만화 불법 복제를 촉진하는 효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만화계는 이런 상황을 극복하고 시장을 만들어야 했겠으나, 이미 그 즈음엔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며 웹에서의 주도권을 장악합니다.

그게 바로 웹툰(Webtoon)이지요. 이전부터 조금씩 일기 성향의 간단한 만화들이 나오다 2003년 강풀의 「순정만화」가 '스크롤'을 이용한 문법과 연출을 장르로 정립하면서 폭발력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컴퓨터에 인터넷만 연결돼 있으면 누구나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점과 보는 데 비용을 낼 필요가 없다는 점은 큰 장점으로 작용하죠. 많은 신인들이 포스트 강풀, 강도하, 양영순을 꿈꾸며 포털의 나도 만화가 게시판 등에 도전하기 시작했고, 출판 만화계에 계시던 분들의 웹툰 진출 사례도 하나둘 생겨납니다.

하지만 이러한 웹툰에도 큰 단점이 있었으니, ① 수익을 내기 위해선 포털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과 ② 웹 페이지이자 포털의 한 페이지라는 특성에 따라 짧은 호흡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①을 이야기하자면, 한 시장 전부가 회사 서너 곳, 좁히면 세 곳 - 그나마도 전문업체도 아니고 만화가 주 종목도 아닌 업체에 완전히 기대고 있는 기형적 구조라는 점이 큽니다. 포털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구도 자체가 위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죠.

게다가 사람들은 웹 환경에서는 한 페이지에 머무르는 시간이 극단적으로 짧습니다. 웹 사용성 분야의 권위자 제이콥 닐슨(Jakob Nielsen)이 집필한 『웹 사용성 중심의 웹 사이트 제작론』에 따르면 홈페이지 평균 체류 시간은 경험이 적은 사람은 35초 이내고 경험이 많은 사람은 25초 이내. 한 곳엔 평균 30초를 체류하며 2분 내에 판단하고 이용 여부를 결정합니다.

또 포털은 '사람들이 자사 사이트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고 굳이 다른 곳으로 나가지 않는 것'을 기본 속성으로 삼는 곳이죠. 만화는 포털이 사람들을 붙잡아 두기 위한 용도로 생산하는 콘텐트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자사가 직접 비용을 대 갱신을 하는 종목입니다. 뉴스가 있긴 하지만 뉴스는 타사에서 사 오는 것이고, 자기 브랜드를 걸고 생산하는 종목은 만화 정도죠. 근데 웹 페이지라는 특성과 포털의 기본 속성에 비추어 볼 때, 사람들의 시선을 짧은 시간 안에 잡으면서 계속해서 붙잡아두기 위해서는 한 편 한 편이 길고 담은 내용이 많기보다 다품종 물량 공세인 편이 훨씬 유리합니다. 또한 공정이 복잡해서도 안 됩니다. 작가에게 간섭하지 않고 모든 걸 맡기는 것이 보통 웹툰의 기본 방향입니다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간섭을 하려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해서도 안 되고요. 그래선 유지가 안 되거든요. 포털 웹툰이 회사마다 수십 개지만 담당자가 한두 명에 불과한 판이기도 하고요.

웹툰의 현재 모습은 돈을 줄 곳이 한정돼 있다는 점과 그 돈 줄 곳의 특성, 그리고 웹이라고 하는 무대의 특성이 조화를 이룬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구도에서 벗어나는 시도를 보이는 작품들은 어찌 보면 상당히 모험을 하는 셈이지만, '일부'일 뿐인데다 이들조차 대체로 길어야 단행본 3∼5권을 넘지 않습니다. 호흡 자체가 다른 거죠.

문제는 이로 말미암아 장르적인 한계에 직면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웹툰은 태생적인 한계를 전혀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모니터에 최적화한 문법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스크롤 방식이지만 오로지 그것만 남은 데다, 그나마 기본 화면을 넓혀 보려는 포털 쪽의 시도조차 어느 작가도 제대로 이를 소화하려 들지 않는 통에 유야무야 되고 말았습니다. 수가 많지만 그만큼 식상할 뿐이죠. 기존에 출판 만화계에 있던 작가들이 밀려들어오고, 또 이들이 통하는 까닭은 간단합니다. 그들이 지닌 기본기와 내공이란 게 웹툰이라는 한계 안에서도 극단적으로 여타 다른 웹툰들과 비교대상이 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신인급인 웹툰 작가분들은 이 점을 무겁게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이미 여러분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셈이니까요. 신인이 치고 올라오는 구도를 보이는 출판만화계와는 정 반대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얕다'는 겁니다.

만화적인 자산이란 측면에서 웹툰은 이미 한계치이고,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습니다만 문제는 이러한 논의와는 쓸데없는 감정싸움이 일어난다는 데 있습니다. 이를테면 출판 만화 쪽에 있거나 좋아하는 이들은 웹툰을 만화 같지도 않은 만화라고 하거나 웹툰이 만화 시장을 죽였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대로 웹툰 쪽에 있거나 좋아하는 이들은 돈도 제대로 벌지 못하면서 질투나 한다고 외치죠. 사실은 양쪽 다 '일부'가 극단적인 면에서 똑같이 콤플렉스를 발산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그게 아니죠. 시장 상황의 흐름을 짚으면 웹툰은 '출판 만화의 한계' 지점에서 새로 등장한 장르일 뿐이지 웹툰 때문에 시장이 죽은 건 아니죠. 당시 상황 흐름은 그리 간단하진 않았거든요. 웹이란 공간을 제대로 대안으로 끌어내지 못한 채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박탈감이 없진 않겠지만, 말은 바로 해야 합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한국 만화계는 1950년대 말엽 이후 잠시 반짝 몇 번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판매 중심의 시장을 '제대로' 창출한 적이 없습니다. 웹툰이 등장할 시점에는 이미 장르만화를 중심으로 하는 주류 출판만화 시장은 한계 지점이었어요.

웹툰도 마찬가지에요. 일단 웹에서의 만화라는 게 웹툰(스크롤 만화)이 전부가 아니라는 점과 인터넷이 곧 포털인 것도 아니라는 점, 포털 말곤 수익을 낼 곳이 없는 '사실은 취약한' 구조인 포털 웹툰에서 스크롤 방식 외의 만화는 나오기 어렵다는 것과 그나마도 태생적 한계에 봉착하며 식상함에 빠지고 있다는 것. 이건 '웹툰'이 아니라 '만화'라는 장르 차원으로 볼 때 그다지 건강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겁니다. 분명 '웹툰이 만화계를 죽였다'라는 외침은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 시점에 관한 문제제기 또한 웹툰이 잘 나가고 있는 걸 질투하는 이들의 말인 건 아닙니다. 다만 그 한계 상황에서 다른 방향을 찾아보려는 것일 뿐이고, 실패 사례에 관한 우려가 심할 뿐입니다.

논의를 생산적으로 진행하고 싶으면 이 쓸데없는 싸움부터 버리는 게 먼저입니다. 하물며 편가르기를 해서 무엇이 남겠습니까? 지금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만화'지, '출판만화'만도 아니고 '웹툰'만도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은 '만화'입니다. 이 사안에서 '기존 만화계' '웹툰계'를 굳이 나누어 감정싸움을 주도하고 있거나 속을 긁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무엇보다도 바로 그 사람이 문제이자 최대 민폐꾼입니다. 주변에서 좀 말리세요.


- 만화가 애플 앱스토어에 눈을 돌린 까닭

감정 싸움은 정리가 됐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다시 돌아옵시다. 논쟁의 발단은 애플 앱스토어라는 새로운 공개 시장(오픈마켓)에 네이버가 자사 웹툰을 밀어넣은 데에서 시작했습니다.

애플 앱스토어는 판촉용 무료 앱스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구나 직접 애플이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 : Software Develop Kit)를 이용해 개발한 앱스를 자유로이 올릴 수 있습니다. 개발자로 등록하는 데 99달러가 들고, 앱스 판매 가격을 7:3으로 나눕니다만 집세와 관리비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죠. 출판만화 시장의 불황에 관해선 앞서 언급한 대로입니다. 기존 체제의 기본 틀 가운데 하나인 잡지가 생존하기 어려운 환경이 되고 있고, 이로 말미암아 호흡이 긴 만화가 나올 환경 자체가 무너지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모든 만화가가 웹툰을 할 수는 없지요. 현실에 맞춰 무대를 바꾸는 노력을 보이는 이도 있지만 자기 방식을 바꿀 수 없는 이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종종 착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웹툰이 현재 수익을 가장 잘 올리는 쪽에 속하고 있고 출판만화계가 많이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만화계의 외연 자체는 오히려 확장되고 다양해졌습니다. 그래픽 노블 방식을 도입한 작품이 나오는가 하면, 점차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작가와 기획사 단위로 움직이며 영업을 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죠. 학습만화 쪽도 여전히 큰 축을 형성하고 있고요. '작품'으로서의 주목을 못 받아서 그렇지.

요 몇 년 사이는 이러한 다양한 시도들이 명멸하면서 좀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많은 이들이 고민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화두는 '포털이 아닌 쪽'이었죠. 웹툰 작가분들은 일부 분들이 말씀하신대로 포털이 돈 잘 줘서 너무 좋아요~ 우리 포털 좋은데 왜 욕하나요~ 그러고 계십니다만, 스크롤 만화가 아닌 방식을 포털은 구조적인 문제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단순히 출판 만화형 뷰어를 다는 수준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이유는 앞서 설명했습니다. 퍼블리셔의 영역에서 가능한 역할을 플랫폼을 자처할 뿐인 포털은 할 수 없습니다. 정확하게는 그럴 여력이 없는 거죠. 포털의 성격에 비추어볼 때 그런 류 콘텐트가 늘어나는 건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물론, 그런 점들을 감안해 영역과 인력을 들일 생각이 있다고 나서준다면 그건 또 나름대로 재미난 상황이긴 할 텐데,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또한 아무리 현재의 강자라 하더라도, 포털의 이익을 나눠받는 방식으로는 오래 갈 수 없다는 인식도 어느 정도는 있는 거지요. 만화계는 이미 시장 독식에 따른 결과가 어땠는지를 오랜 시간에 걸쳐 몸소 체험했고, 또 학습효과가 어느 정도 남아 있습니다. 1960년대 중후반에서 198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20년에 걸쳐 한국 만화의 유통망 전반을 쥐고 흔들면서 만화가의 연재 분량과 고료 등을 좌지우지하고 필명까지 '하사'하는 등 강대한 권력을 행사한 '신촌대통령' 합동의 사례, 또 1990년대 중반을 전후해 등장해 오래지 않아 시장 전반을 쥐고 흔들었던 도서 대여점의 사례가 여전히 생생합니다. 나올 수 있는 창구가 한정되고 여기에 천착한 순간, 당장은 어느 정도 돈을 벌 수 있을지라도 그 창구가 한계에 다다른 순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한계가 언제 찾아올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죠. 애플 앱스토어가 사람들의 눈에 띈 것이 바로 이런 고민이 어지러이 오가던 시점입니다.

기존에 우리가 쓰던 일반적인 휴대전화를 가리켜 피쳐폰(feature phone) 또는 노말폰(normal phone)이라 합니다. 전자수첩 기능을 강화했던 PDA를 휴대전화에 합쳐 거의 준 노트북 수준 성능을 내는 휴대전화를 가리켜서 스마트폰(smart phone)이라고 하죠. 스마트폰의 특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컴퓨터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터넷 사용환경과 더불어 애플리케이션(응용 프로그램)을 직접 설치해 자기에게 맞는 사용 방향을 맞춰나갈 수 있습니다. 애플 앱스토어는 바로 이러한 스마트 폰 가운데 애플이 내놓아 디자인과 성능 면에서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은 아이폰(iPhone)에 설치할 수 있는 어플리케이션들, 즉 앱스를 모아놓은 온라인 오픈 마켓입니다. 물론 애플의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iPod)에서도 구동할 수 있긴 하지만 MP3와 휴대전화는 이용 빈도, 활용성 자체가 다르죠. 준 컴퓨터 수준인 스마트폰이면 말할 것도 없고요.

앞서 언급했듯, 애플 앱스토어에선 개발자가 직접 개발한 앱스를 올려 그 수익을 낼 수 있죠. 이런 류의 시장 개념을 도입해 전 세계적인 성과를 일궈냈다는 점에, 국내 이동통신사와 CP(콘텐트 프로바이더 : 정보제공자)와의 수익 배분 문제에선 CP가 늘 불공평한 위치에 서 있었던 점- 참고로 음원 수익은 이동통신사, 중간 유통 마진을 제외하면 정작 음반 제작사와 가수에게 돌아가는 몫은 25%에 불과하다고 하죠 -을 감안하면 애플 앱스토어가 매력적으로 보인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프로그램이나 게임 뿐 아니라 다양한 콘텐트도 직접 판매할 여지가 있단 말이죠. 비주얼과 용량 문제 등으로 비추어 볼 때 텍스트보다 볼 거리가 많고 이야기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동영상보다 용량이 훨씬 적은 만화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이용하기가 좋은 장르 매체였고요.

마침 스마트폰 시장이 T옴니아를 비롯해 슬슬 국내에서도 불을 지피고 있고, 아이폰이 곧 들어올 거라는 예측도 있고요. 심지어 포털마저도 점차 스마트폰에 대응하는 다양한 서비스들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뭔가 흐름이 바뀌고 있는 시점이다 보니 이곳저곳에서 '그럼 우리는 애플 앱스토어를 통해 무언가를 해 보자, 그것이 현 시점에서 포털 웹툰 중심의 구도와 만화 전문 출판사들이 주도해 오던 시장이 겪는 불황에서 웹툰이 아닌 만화를 내보여서 수익을 낼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이곳저곳에서 나오던 차였고, 직접 작가들과 만나고 다니는 업체들도 늘어났죠.

비단 만화만의 문제는 아니었-겠습니다만 어쨌든 만화 쪽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5월 말, 네이버가 바로 이 애플 앱스토어에 들어서겠다 선언한 겁니다. 웹툰을, 그것도 무료 다운로드를 가능하게 해서 말이죠.


- 네이버 웹툰의 애플 앱스토어 진출과 논란

애초에 애플 앱스토어를 생각하던 것이 포털의 방식 말고는 수익 부분의 답이 나오지 않아 고민하다 떠올린 대안에 가깝습니다. 또한 앱스토어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만화는 스크롤 만화 뿐 아니라 출판 만화 형식, 모션 코믹 등 다양한 형태를 갖출 수 있습니다.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 자기 작품을 대중들에게 내놓아 보고자 하는 작가군부터 소규모 기획사, 작가집단 등의 접근이 가능하죠. 또한 포털 연재 작가도 저작권 자체를 작가 자신이 쥐고 있으므로 새로 묶는 식으로 또 다른 방식의 2차적 수익원을 만들 수 있습니다. 아직 아이폰이 들어오지 않은 상태고 언제 들어올지도 정확하지 않았던 시점인지라 다들 명확한 확신은 지닐 수 없었지만 새로운 가능성과 시장성을 보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자리에 네이버가 물량을 앞세워 고개를 들이민 겁니다. 아직 한국어 앱스는 물론 한국인 이용자층조차 거의 형성이 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포털을 비껴난 새 시장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있던 이들이 순식간에 절망에 빠진 건 말할 것도 없지요. 앱스토어라는 화두를 이번에야 알게 된 분들로서는 애플 앱스토어의 규모와 성장세를 보며 이걸 빼앗으려 드느냐고, 라이코스 코리아의 악몽이 되살아난다고 분노했지만 사실 그보다 조금 더 깊이 들어와 보자면 애초에 애플 앱스토어를 바라보던 작가나 회사들은 애초에 포털 밖 시장을 노리고 있었던 상황이란 말이지요? 게다가 이들은 규모로 치자면 하나하나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동네 슈퍼마켓 정도고, 이들의 생존방식은 어디까지나 작게 내놓고 작게 먹되 수를 늘려가며 작은 수익을 모아 크게 키우는 모델입니다. 말하자면 일종의 롱테일 시장입니다.

롱테일(long tail, 긴 꼬리)이라는 용어는 웹2.0이라는 화두가 유행을 타면서 그 주요 개념 가운데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경제용어입니다. 웹2.0은 표준에 바탕을 둔 열린 서비스 구조를 통해 사용자들의 참여를 유도하여 콘텐트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웹 환경이자 비즈니스 모델이죠. 웹2.0의 대표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인 롱테일은 잘 팔리는 상위 2할 상품이 나머지 8할 만큼의 매출을 차지한다는 전통적인 시장 개념인 2:8 법칙(또는 파레토 법칙)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온라인의 발달로 진열 방식 등에 제한이 사라져 비인기 상품, 작은 규모 상품을 다수 노출하는 게 가능해지고, 이를 모으면 각각의 매출은 작지만 이것이 모여서 상위 2할에 해당하는 만큼의 매출을 보여준다는 것이죠. 그래프를 그려보면, 큰바위 얼굴 같던 파레토 법칙 때와는 달리 머리는 작고 꼬리는 길게 늘어뜨린 모양새가 나옵니다. 그래서 이러한 온라인 시장의 특성을 가리켜 롱테일이라고 합니다.

애플 앱스토어를 롱테일 시장으로 보는 까닭은 대형 자본과 물량 공세가 아닌 개개인 또는 소규모 회사가 작은 매출을 모아 가져갈 수 있는 구조기 때문입니다. 사실 앱스 하나 팔려고 지면이나 배너 광고를 하겠어요, 아무리 스마트폰이 준 컴퓨터 수준이라곤 하지만 개발기간 수 년 급인 묵직한 게임을 만들어 올리겠어요. '자잘하게 꾸준히'라는 화두가 잘 어울리고 반응과 인기에 따라서는 고액을 챙길 수도 있는 가능성이 잠재된 시장. 그것이 롱테일 마켓입니다. 애플 앱스토어는 바로 그런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롱테일 시장에 포털이라는 시장지배자가 물량을 푸는 방식으로 접근을 한다고 하는 건 동네 슈퍼마켓 근처에 SSM(Super-Supermarket : 기업형 슈퍼마켓. 대형 할인매장들이 소형 점포로 특화한 브랜드들이 대부분)을 배치해 할인경쟁을 붙이려 든다든가, G마켓이나 옥션 같은 일반인들이 직접 올릴 수 있는 오픈 마켓에 이마트나 롯데마트가 들어서서 상품권을 뿌리는 것과 다름없는 결과물을 낳는 것이죠. 지난 10여년에 걸쳐 일개 회사가 온라인에서 포털을 상대해서 이겨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만 두든가 먹히든가 둘 중 하나입니다. 물론 인수를 지상 목표로 서비스를 개시하는 곳이 없지 않긴 합니다만.

여기서 논조를 엉뚱하게 해석하면 단순히 유료 대 무료로밖에 이야기를 전개할 없게 됩니다. 애플 앱스토어도 홍보나 맛보기 등을 위한 무료 콘텐트가 없는 게 아니거든요. 하지만 단순히 '무료'여서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채 형성조차 되지 않은 한국인 대상의 - 즉 한국어권 - 앱스 시장을 그 시장의 성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규모를 지닌 사업자가 자기들의 규모와 방식으로 선점을 하려 드는 모양새가 됐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겁니다. 비판이 터져 나오는 까닭은 바로 이러한 공정 경쟁과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물량공세로 밀어붙이는 모습을 본의든 아니든 보여주고 말았기 때문인거죠. 일부 작가 분들이 언급한 '네이버가 작가들에게 얼마나 잘 대우해 주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또한 '네이버가 잘 하고 있기 때문에 시장 전반을 네이버 식으로 끌고 가면 작가들에게 좋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와 연관지어 '어차피 애플 앱스토어에 올려봐야 얼마 벌지 못하는데 네이버는 잘 주고 있다' 식으로 생각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고 본질에서도 너무나 많이 떨어진 발상입니다.

시장이 독과점 또는 독점으로 흐르면 경쟁 따윈 사라집니다. 한(또는 일부) 회사의 방향대로만 가야 하는 상황이고, 웹툰은 이미 그 지점에 서 있죠. 적어도 '웹툰 시장' 은 곧 포털의 것입니다. 그러나 웹툰이 곧 만화의 전부는 아니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안정적이든 아니든, 많든 적든 사람들은 특정 회사를 통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시도해 보고 그에 따른 수익을 낼 있는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에 애플 앱스토어를 바라봤던 겁니다. 이곳에 오르는 콘텐트의 틀거리나 형태, 장르는 어느 한 방향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죠. 이러한 '가능성'과 '다양성'이야말로 사람들이 바라보던 가치였습니다. 그 지점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면,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겁니다.


- 네이버의 조치와 보완점, 그리고……?

논란 초기, 졸지에 퇴물들과 작가도 아닌 것들의 준동으로 폄훼 당하던 이 논쟁이 그나마 수습이 되어가는 건 참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문제를 제기하고, 감정싸움을 자제시켜 가면서 화두를 유무료 논쟁이 아닌 시장의 문제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죠. 네이버 대표 연재 작가라 할 수 있는 어떤 작가 두 분의 훌륭하신 말씀 덕에 졸지에 '긁어 부스럼' 내지는 집안싸움 수습도 못하는 바닥으로 전락할 뻔하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만화계의 위기의식이 단순한 피해의식이 아니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데에까진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양 쪽이 방향만 다를 뿐 결국 같은 피해의식을 지니고 있었음을 드러내기도 했다는 점에서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합니다.

7월 9일 네이버 측은 만화계를 대표하는 두 단체 앞으로 공문을 보내 왔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자면, ① 30일 다운로드 기능 삭제 ② 불안정한 네트워크 조건에 대응하기 위한 짧은 시간의 임시 저장 기능 제공(72시간) ③ 1회 임시 저장되었던 웹툰은 다시 임시 저장되지 않음 ④ 외부 제작사를 통한 타이틀별 유료 어플 제작 지원 ⑤ 스트리밍(인터넷 접속을 통한 웹툰 보기) 기능 유지입니다. 만화계로서는 많은 양보를 얻어낸 결과라 생각하며, 네이버로서도 양보할 수 있는 최대한까지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논점은 여전히 남을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스트리밍… 저는 웹 데이터에 접근한다는 뜻에서 브라우징(열람하는 것)이라고 표현해 왔습니다만 말이죠. 이 스트리밍조차도 금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겠습니다. 적어도 저는 이 지점에서 스트리밍 방식까지 막을 수 있는 근거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웹은 어떤 브라우저 어떤 OS 어떤 디바이스를 통하든 그냥 웹입니다. 앞서도 언급했듯 이미 오즈 등에서 풀 브라우징이란 개념으로 모바일 기기에서 웹에 접근하는 방식을 선보이고 있습니다만, 모바일에서 보든 PC에서 보든 웹은 그냥 웹이니까요. 게다가 무선 랜(Wi-Fi)이 되는 곳에서만 읽어올 수 있다는 한계점도 있습니다. 차세대 무선 인터넷으로 주목받던 와이브로(Wibro)가 전국망 확대를 포기하다시피 했다는 비극적인 소식이 얼마 전 들려왔음을 감안할 때, 현 시점 만으로도 상당한 리스크를 안은 조치라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오히려 ③ 항목을 포털 측에서 제시했다는 점을 반갑게 생각합니다. 본래 저는 외국어 번역판 제작 등 애플 앱스토어용 2차적저작물 제작에 관한 부분은 네이버가 나서지 말고 작가에게 맡겨야 하지만, 만약 작가가 번역판을 네이버를 통해 서비스를 하길 원한다면 네이버 웹툰 통합 앱스가 아닌 작품별 앱스로 제작해 일부 판촉을 제외하곤 유료로 내놓는 방식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제안을 하려고 했습니다.

외국인 대상으로는 노출이 많이 되지 않은 이상 웹툰 작가들에게도 유료 모델의 성립이란 점을 맛보여 주고 또 부가 수익을 올릴 수 있게끔 해 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하지만 한국어판에 관해서도 유료 앱스를 타이틀별로 제작하는 것을 지원하겠다고 한 것은 그에 못지않게 전향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포털이 과연 유료 모델을 받아들이고, 스마트폰에 맞는 만화라는 부분을 만들어갈 수 있을지도 앞으로 지켜봐야 할 부분이 되겠습니다. 스마트폰의 화면은 일반 휴대전화와는 다르지만, PC와도 다릅니다. 이 때문에 현재 웹툰의 길이를 스크롤로 내려 보는 방식은 되레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이에게 먹히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대로 얹는 전략은 생각 이상보다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할 가능성도 있지요. 어쩌면 스마트폰과 앱스토어 시장은 또 한 번 새로운 문법을 등장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누가 먼저 그 화두를 잡게 될까요.

이번 사례를 겪으면서 저는 일전에 양병설 씨가 이현세 씨에게 걸었던 「뽕짝」 관련 고소가 떠올랐습니다. 이현세 씨가 당시 스토리 작가였던 양병설 씨에게 스토리를 받았지만 당시 계약… 무계약 관행에 따라 암묵적으로 처리된 모양입니다만, 그 조건에 온라인 전송권이란 걸 안배하진 않았던 거죠. 그래서 새로운 시장이 나왔을 때의 수익 분배에 관한 해석이 달라 고소까지 가게 된 거였습니다. 당시 양병설 씨는 “이현세 씨가 내 동의 없이 인터넷 회사와 계약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흔히 이런 류 일일만화는 CP를 통해 온라인 만화방에 서비스됩니다만, 이현세 씨는 매절계약을 한 것으로 간주했으니 동의를 안 구했던 거고 양병설 씨는 그 지점에 반발한 셈입니다.

고소 사건 자체는 유야무야되긴 했지만 이 사건으로 만화계에서 새삼 스토리 작가와 만화가와의 저작권 관계, 또 계약 시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새 시장 새 수익구조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관한 논의를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계약서를 꼼꼼하고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다 검토해가며 도장 찍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도 되새기게 해 주었고요. 저는 이번 사안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포털이 적도 아니거니와 네이버가 적인 것도 아니고, 하물며 웹툰이 만화의 전부도 아닌 이상 우리는 언제나 만화와 판, 그러니까 시장을 두고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상업만화를 하고 또 이야기를 해야 하는 사람으로서 더더욱 그러하죠.

이번 논의는 단순히 네이버의 양보를 끌어냈다, 애플 앱스토어가 롱테일 시장이다 하는 류의 이야기에서 그치면 안 됩니다. 아니, 사실 이제 시작해야죠. 과연 모바일 콘텐트 시장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애플 앱스토어만이 전부인 걸까, 대응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사실 이 논의를 계속 봐 왔지만 너무나 지엽적인 이야기만을 반복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애플이 선이라고 생각하느냐-라든지, 앱스토어에 올린다고 떼돈을 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든지, 네이버가 발 빼면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라든지, 네이버의 판을 더 키우면 되잖느냐든지 등등등.

판세가 어떻게 바뀌어갈지, 환경이 어떻게 바뀌어갈지에 관해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는 점. 모두가 한 번쯤 생각을 해 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럼 가볍게 몇 가지만 더 짚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안 남았습니다. 조금만 더 눈에 힘을 줘 보세요.


- 설마 바뀌겠어, 라며 안주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자주 착각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터넷과 포털을 동일시 한다는 겁니다. 포털은 인터넷의 전부가 아닌 그저 현 시점에 시장을 지배하고 있을 뿐인 일개 회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요즘 그들은 일제히 모바일 쪽의 진출을 모색하며 다양한 서비스 개발과 인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스카이뷰, 로드뷰 등을 비롯한 지도 서비스 개편을 단행했고 네이버는 모바일에 잘 어울리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인 국산 마이크로블로그 미투데이를 인수해 오바마도 윈프리도 연아도 한다는 마이크로블로그 트위터의 영향력을 자기들 쪽으로 돌려놓을 태세입니다. 지도도 뉴스도 사전도 모바일에 어울리는 앱스들이죠.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뜻하는 게 뭘까요. 다음 관계자는 로드뷰 서비스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죠. "아이폰과 아이팟터치를 등에 업고 3년 내 모바일 왕좌를 차지하겠다"라고 말입니다.

이에 질세라 냅다 고해상도 파노라마 사진과 위성사진으로 맞불을 놓은 네이버 지도와의 승부가 어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포털들은 이렇게 '3년' 가량 앞을 내다보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형 무선인터넷 플랫폼의 표준 규격으로 국내 들어오는 모든 휴대전화에 의무적으로 깔아야 했던 WIPI(위피, Wireless Internet Platform for Interoperability)가 올 4월 초 의무 탑재 조항이 폐지되면서 다양한 모바일 플랫폼이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게 됐고, 이와 맞물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다양한 플랫폼을 탑재한 스마트폰 시장이 슬금슬금 국내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죠. 이동통신사들이 자사 수익과 주도권이 약해질 것을 우려해 더불어 여러모로 무선 랜(Wi-Fi), 와이브로(Wibro) 등의 기술을 직접적으로 활용하게끔 놔두고 싶어 하지 않는 인상이 아주 역력합니다만 오래 가지 않을 겁니다.

이렇듯 PC 기반 웹 환경을 독과점하고 있는 포털들조차 스마트폰 기반의 모바일 시대가 오고 있음을 직시하고 준비하고 있는 판입니다. 그들도 2∼3년 뒤 판세가 어떻게 변할 지 알 수 없기에 대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자. 과연 2∼3년 뒤의 환경이 현재와 똑같을까요? PC 모니터로 보던 웹툰 환경이 그 때도 똑같이 유지가 되고 있을까요? 없어지진 않겠지만 뭔가 많이 뒤바뀌어 있을 거란 예상은 안 드시는지요? 주도권 경쟁에서 한 회사가 반드시 그 때에도 현재와 같은 영향력을 공고히 하고 있을까요? 이런 "포털 님이 다 해 주실거야" 같은 믿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안주하고 있으면 뒤떨어집니다. 지금의 환경변화는 미리 준비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PC를 안 쓰는 사람은 있지만 휴대전화를 안 쓰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그만큼의 시장이 새로 생긴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재밌지 않습니까.


- 애플 앱스토어를 향한 환상을 깨라

지금까지 꿈과 희망에 찬 어조(?)를 행여나 조금이라도 느끼신 분이 있다면 죄송합니다. 이 대목에선 그 시각을 깨자고 외칠 참이라서요.

앞서 제가 롱테일 시장이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앱스토어가 바로 이 롱테일 개념에 가깝다고 했지요. 즉, 상위 2할을 차지하는 인기 상품이 나머지 8할만큼을 집어삼키는 전통적인 오프라인 시장의 파레토 법칙과는 달리 나머지 8할에 달하는 상품들의 매출이 모여 상위 2할만큼의 매출을 넘는다. 이 역전 현상은 롱테일을 웹2.0 비즈니스의 중심 화두로 각광받게 하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근데 말이죠. 롱테일 마켓에서 대부분의 상품은 8할 속에 속합니다. 8할의 규모가 2할을 압도하게 되는 건, 하나하나는 적은 매출인데 이게 모여서 집단을 이루자 2할 만큼이 된단 소리입니다. 즉 앱스토어에서 앱스가 차지하는 비율은 일부를 제외하면 매출이 절대로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골드러쉬 때 돈을 번 건 금광 캐고 다니던 광부가 아니라 청바지랑 곡괭이 판 사람이라고요. 3:7에서 3을 먹는다곤 하지만 전체로 볼 때 돈 제일 많이 버는 사람은 애플이지 앱스 올린 사람들이 아닙니다. 냉정해져야 합니다. 올리면 떼돈을 버는 시장이 아닙니다. 무턱대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risk high-return)을 적용해 매우 굵직하고 멋진 녀석을 만들어 올리려 들면 그냥 쪽박 차기도 쉽습니다. 스마트폰은 성능이 준 PC 수준이라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본질은 모바일 기기고, 무선 인터넷이 아무리 빠르다 해도 전송량이 많아지면 당연히 로딩 시간 등의 문제가 걸립니다. 가볍고 간단하면서 아이디어가 좋은 쪽이 살아남죠. 스마트 폰에 어울리는 콘텐트가 무엇인지, 연출 방식이 무엇인지에 관해 고민을 하지 않으면 제아무리 애플 앱스토어가 꽃밭이래도 잡초 역할밖엔 못한단 말이지요. 앞서도 말했지만 스크롤 만화 문법이 이 액정 화면에서 그대로 통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입니다.

애플 앱스토어의 등장은 어디까지나 다양성과 가능성이란 화두를 던져주고 있을 뿐입니다. 거기에서 살아남는 건 어쩌면 나도 만화가 게시판에서 작가로 데뷔하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이야기를 단순히 현실 안주를 위한 변명으로 이용하는 건 더 우습겠지만요. 롱테일 마켓의 한 개체로 '잘' 되려면 더더욱 무시무시한 경쟁을 거쳐야 합니다. 애플 앱스토어가 무슨 엘도라도일 것 같나요?

준비 없이 안일하게 덤벼들면 실망만 하게 될 겁니다. 반대로 말하면, 준비를 하고 덤비한다면 그만큼 성공할 가능성이 크겠죠.


- 애플 앱스토어가 전부가 아니다

이제 막 애플 앱스토어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이런 게 있었어?라는 분들이 대부분일 텐데, 난감하게도 앱스토어는 애플 것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제가 앱스토어 이야기를 할 때 계속 앞에 '애플'을 붙인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라는 개념을 지금 현 시점에서 가장 유행시키고 큰 시장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 분명 애플입니다만, 현재 많은 회사들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이 애플리케이션 스토어를 열 예정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애플 앱스토어는 아이폰 또는 아이팟이라는 애플 사의 기기에서만 돌릴 수 있거든요.

지금 사람들이 아이폰에 열광하는 까닭은 단순히 애플 팬이라서가 아니고 디자인이 좋아서만도 아닙니다. 국내 이동통신사의 독과점 속에 한계에 다다른 모바일 콘텐트 시장의 문법을 바꿀 수 있는 정책과 기능들을 담고 있기 때문에 변화라는 측면에서 일종의 방아쇠 역할을 해 줄 것이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이폰이 아무리 대단해도 출시되자마자 국내 휴대전화 사용자들이 몽땅 아이폰으로 바꿀 리는 없죠. 전 연아 때문에 햅틱도 당기고 2NE1이랑 빅뱅 덕분에 롤리팝도 당겨요. 휴대전화 기종이 한둘인가요 어디. 제조사가 다르고 돌아가는 OS 플랫폼도 모두 다 다릅니다. 언급했듯 WIPI까지 지금 의무 사용이 폐지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경우의 수가 늘어나죠. 애플 앱스토어는 그 중 하나인 아이폰용 앱스 시장일 뿐입니다. 그리고 애플 앱스토어의 성공을 보면서 여타 회사들도 자사 휴대전화에 맞는 앱스들을 사고 팔 수 있는 시장을 만들려 하는 거죠. 가능성과 시장성을 봤기 때문입니다.

해외 사례를 들자면, 일단 바로 얼마 전 브라우저로 만들었던 크롬을 OS로 만들겠다고 선언해서 사람들을 몽땅 뒤집어놓은 구글은 모바일용으로 개발한 오픈소스 OS 안드로이드(Android) 용으로 '안드로이드 마켓(Android Market)'을 열 예정입니다. 정확히는 구글이 주도해 휴대전화 제조사, 이동통신사, 칩셋 업체들과 함께 결성한 OHA(Open Handset Alliance : 개방형 휴대전화 연맹)가 주도하는 거지만요. 마이크로소프트도 이에 질세라 모바일용 플랫폼으로 한껏 밀고 있는 윈도우즈 모바일(Windows Mobile) 용 공개 시장인 '윈도우즈 마켓플레이스 포 모바일(Windows Marketplace for Mobile)'을 준비 중이고, 세계 1위 휴대전화 업체 노키아도 오비 스토어(Ovi Store)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바마가 써서 잘 알려진 기업형 스마트폰 블랙베리의 제조사 림(RIM)도 블랙베리 앱 월드(Blackberry App World)란 걸 준비중이라는군요.

국내는 또 어떻습니까. SKT가 모바일 콘텐츠 오픈 마켓(SKT Mobile Contents Open Market)이란 걸 준비 중인가 하면, LG전자(LGE)는 코리안 앱 스토어(Korean App Store)라는 다소 상상력이 부족해 보이는 이름으로, KT와 LGT도 각각 쇼 앱스토어(Show App Store), 오즈 앱스토어(OZ App Store)등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에선 SKT가 단연 화제성에서 앞서고 있는데요. 국내 최대 이통사 답게 자사 이통망에 대응하는 다양한 업체 기기들에서 함께 돌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한 솔루션(SKAP)까지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어지간히 돈 때문에 욕을 많이 먹고 있어서인지, 무선 데이터 전송 요금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을 위해 PC에서 받은 후 전송하는 방식으로 우회하는 방법도 지원하겠다고 합니다.

스마트폰 시대를 앞두고 이통사, 제조사들이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콘텐트를 공급하기 위해 뛰어들고 있습니다. 사실 상황만 봐선 복마전이라는 기분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만, 애플 아이폰과 애플 앱스토어를 시작으로 터져나오기 시작한 모바일 콘텐트 시장은 전에 없이 광활한 넓이를 자랑할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활용하기 나름일 테지요. 전략을 어떻게 써야 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앱스토어 앱스토어 하니까 애플 앱스토어 용만 생각하셨던 분들이 계시다면, 이 시점에서 앞에서 '애플'을 빼셔야 합니다.

이런 '앱스토어'라는 공개 시장들은 서로 다른 조건과 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콘텐트 자체가 중요해지겠죠. 기기 성능이 상향평준화를 이루면 그 안에 뭐가 더 들어갈 수 있고 들어갈 게 얼마나 많은지가 기기 선택을 좌우하니 더욱 그러습니다. 그렇다면 이를 내놓고 어떻게 포팅, 즉 이식시킬 수 있는지에 관해 고민을 하셔야 합니다. 앱스토어라는 화두가 앞에 떨어진 순간 작가 여러분들이 고민을 해야 할 게 너무 많이 늘어났습니다. 이전처럼 그림 파일만 보내면 돈을 받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죠. 하지만 그런 만큼 웹툰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만화로 승부를 해 볼 여지가 더 많아지는 겁니다. 요는, 작가가 일일이 알아서 그걸 다 해야 하는가 하는 겁니다. 답은 아니다입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잡지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출판시장에 관해 아예 무지하고 웹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웹을 모르면 곤란하지요. 이 말은 무엇이냐면, 자기 작품이 돌아갈 환경만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조금만 시선을 돌려 보시면 작가 뿐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틀과 도구를 준비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작가 단위 기획집단으로는 누룩미디어와 같은 업체가 있겠고, 플랫폼으로는 스토리베리와 같은 도구를 예로 들 수 있을 겁니다. 전략적으로 한 번을 작업하면 여러 기기에서 같은 장면을 연출할 수 있고 효과도 자유자재로 넣을 수 있는 방식이 이미 어느 정도 나와 있습니다. 관련한 전략을 짜고 접근방법을 모색하는 것 또한 이미 앞서서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만 몰라서 선택을 못할 뿐입니다. 멀리 보지 말고, 눈에 띄었다면 손을 내밀어 보십시오.

다양한 시장이 열렸다면, 한 곳만 쳐다보는 게 바보일 수 있습니다.


- 만화만으로 끝내지 말자

앱스토어는 애플리케이션 스토어의 준말이라고 했습니다. 애플리케이션은 응용 프로그램이죠. 다시 말해 어쨌거나 기능성을 갖춘 컴퓨터 프로그램입니다. 아이폰에 들어간 맥용 OSX의 모바일 버전이든, 구글폰에 들어가는 안드로이드든 노키아 쪽의 심바인이든 MS의 윈도우즈 모바일이든 어느 OS에서든간에 어쨌든 그 위에 얹어서 돌아가는 '프로그램'입니다. 콘텐트 시장으로 전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 때문에 이처럼 주목받고 있는 것이지 기본적으로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건 업무용 프로그램과 게임입니다. 물론 지난 4월 애플 앱스토어 쪽 통계를 보면 전자책(eBook)의 점유율이 매우 놀라울 정도로 크게 성장한 걸로 나타나긴 합니다만 꾸준히 오랜 시간 널리 쓰이는 것이 프로그램임이 변하진 않습니다. 뭐 저는 스마트폰이 전자종이 단말과 더불어서 잡지, 신문 등을 아우르는 또 다른 텍스트 콘텐트 시장을 열어주길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스마트폰은 아무리 달리 쓰일 가능성이 있다 해도 기본적으로 전화기에 소형 컴퓨터 붙여 놓은 거니까요.

만화라는 콘텐트를 얹으려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스마트폰에서 많이 쓰이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 안 된 모양이지만 국내 모바일 업계에서도 아이토핑이라는 브랜드로 여러 기능들을 마음대로 얹을 수 있는 서비스를 내놓은 적이 있었죠. 이 작지만 각자 별개로 작동하는 기능들을 악세서리처럼 배치해 효율을 높이고 재미도 느끼는 것을 가리켜서 위젯(widget)이라고 합니다. 구글이나 MS는 가젯(gadget)이라고도 부릅니다만 요즘은 위젯으로 거의 통용하는 분위기죠. 이 블로그에도 몇 개 붙어 있고- 위젯 전문 제작사도 생겼습니다. 의류업체인 유니클로는 유니클락이라는 말 없이 춤추는 소녀들이 나오는 위젯으로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봤죠.

위젯은 악세서리 형태로 만들어진 작은 응용 프로그램(위젯)이라 보시면 됩니다. 배경화면 등에 박혀서 무언가를 읽어온다든가 일정을 알려준다든가 시간을 알려준다든가 하는 것들을 취향에 따라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죠. 스마트폰 활용의 백미는 앱스도 앱스지만 바로 이 위젯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화만큼 캐릭터를 활용할 수 있는 장르 매체가 없는 만큼, 만화 연재와 위젯의 노출 등을 병행하는 방식을 고민해보는 것도 전략 가운데 하나가 될 것입니다. 악세서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만 스마트폰 액정용 바탕화면 등의 아이템들을 활용한 마케팅도 부수적으로는 꽤 좋은 방안이 될 것입니다.

반드시 작품을 먼저 앱스토어에 노출하는 것이 아니라 블로그나 게시판 등을 통한 인지도와 화제성을 확보한 후 앱스토어에 본편을 연재하는 방식을 생각해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이미 비 포털 연재가 책으로 엮이는 사례는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를 통해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포털에 기대지 않고 활동폭을 넓히는 방식은 앱스토어에서 더욱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블로그 등에는 힘을 뺀 작화와 임팩트 있는 내용을 꾀하고, 유료 콘텐트로는 힘을 주는 형태로 이원화하는 것도 전략이겠죠.


- 외국을 직접 노려라

사실 네이버가 진출을 해도 외국어 버전을 직접 게재하는 방식을 택한다면 크게 겹치지만은 않습니다. 문제는 아직 태어나지도 못했던 한국인 대상 시장이 시작도 전에 네이버의 '룰'로 선점당할 소지가 너무 다분했다는 것이고, 그 때문에 이러한 논의를 진행했던 것이지만 말이죠. 내수(?) 시장이 튼튼해야 밖으로도 나갈 때 힘을 받는다는 건 만고의 진리입니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앱스 형태로 콘텐트를 앱스토어에 올리려 하는 이들은 외국어판을 함께 제작할 생각을 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동안 해외진출이라는 것이 에이전시를 끼고 출판사를 끼지 않으면 힘들었던 것에 비해, 앱스토어는 기본적으로 올리면 그만인 시장이죠. 이만큼 직접적으로 해외진출 기회가 열린 시장도 드뭅니다. 물론 어떤 반응을 얻을 것인가, 얼마만큼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까는 작품의 힘과 전략의 유무에 따라 다를 것이고, 다시 말하지만 롱테일 시장인 이상 올린다고 각각이 바로 큰 반응으로 돌아오는 건 아닙니다. 긴 꼬리 중의 하나에 머물 가능성도 큽니다. 물론 이를 역이용하면 작게 수량을 많이 만들어서 수익을 '모으는' 발상도 가능하긴 하지만 말이죠. 단행본도 나오지 않은 한국 작품을 불법 스캔 - 영어로 번역(소위 대패질)해서 공유하는 서양 쪽 커뮤니티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 만화를 향한 관심이 없다고 보이진 않습니다. 물론 불법이지만 말입니다.

일본에서도 얼마 전인 7월 1일부터 MANGA SOURCE(운영사 주식회사 핫소스)라고 하는 서비스가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세계 최초 iPhone 전용 오리지널 코믹스 판매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는 MANGA SOURCE는 아예 iPhone/iPod 터치 화면 사이즈에 맞춰 작화한 만화를 단행본을 읽는 감각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는데요. 이전 전자책과는 달리 억지로 줄이지 않은 깨끗한 화상을 제공해 스트레스 없이 읽을 수 있다고 합니다. 판매 가격은 일률적으로 세금 포함 315엔이라는데 생각보단 조금 세지만 발상이 좋네요. 초창기 콘텐트로는 「달려라 메로스」 「라쇼몽」 「은하철도의 밤」 「타카노 히지리」 등 일본의 유명 문학 작가들의 소설을 만화화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건 바로 언어 부분으로, 일반적인 일본 만화와는 달리 가로 쓰기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언어는 메뉴에서 일본어-영어로 바꿀 수 있다고 하네요. 참고로 이 메뉴를 부르는 건 무려 흔들기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아이팟이란 디지털 기기를 어떻게 아날로그 성격인 만화와 활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아타리 쇼크를 경계하자

앱스토어를 이야기할 때 종종 우려하는 목소리 가운데 하나로 나오는 화두가 아타리 쇼크(Atari Shock)입니다.

아타리(Atari VCS)는 1977년 미국에서 발매된 가정용 게임기입니다. 게임을 내장롬이 아니라 미디어를 갈아끼우며 실행할 수 있게 한 데 이어 프로그래밍 방법을 공개해 어느 회사라도 직접 게임을 개발해 판매할 수 있게 안배했습니다. 요즘 식으로 치자면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SDK)를 공개한 셈이죠. 근데 문제는 이게 전혀 제어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팽창한 시장 규모에 억지로 따라가려고 '아타리 용'으로 온갖 저질 게임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단순히 표절 게임 순이면 모르겠는데 빈곤한 아이디어를 섹스 같은 소재로 때운 표절작들이 대거 등장했습니다. 대체 어떤 게임들이 나왔었는지는 졸작 비디오 게임을 주리줄창 욕하고 씹고 모욕하는 AVGN(Angry Video Game Nerd : 빡돈 비디오 겜덕) 시리즈 중 한 편을 참고해보시면 될 듯합니다. 대략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감이 잘 안 잡히신다면 플레이 스테이션이나 XBOX360에 표절작과 질이 너무 낮은 성인용 게임(섹스가 저질이란 게 아닙니다)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어쨌든 그 상황에 완전히 질리고 만 사람들이 더 이상 아타리 용 게임들을 구매하지 않기 시작했고 수많은 제작사들이 연쇄 도산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마치 우리 게임 시장에 주얼판 돌았듯이 떨이로 팔리는 게임들이 늘어나며 정상적인 시장의 모습을 잃었고 이윽고 급속하게 붕괴하기 시작합니다. 재고를 끌어안고 쓰러지는 소매점들이 늘어나면서 미국 비디오 게임계는 한동안 완전한 암흑기로 빠져들고 맙니다. 이게 1983년 일입니다.

이 아타리 쇼크는 시장의 팽창에 콘텐트의 질적인 측면이 따라가지 못할 때 팽창한 속도만큼 급속하게 무너지기 쉽다는 사실을 일깨워줍니다. 애플 앱스토어는 “애플은 포르노 등 부적절한 콘텐츠를 담고 있는 애플리케이션은 배포하지 않는다”라 밝히는 등 성인물 쪽을 규제하고 있습니다만 그 이외에는 자유에 가깝죠. 요는 콘텐트 내용의 질적인 부분을 평가 받는 방식은 해서도 안 되긴 하지만, 전체 시장을 채우는 콘텐트가 시장 팽창만을 보고 부랴부랴 떡고물을 챙기려는 식으로 제작이 됐을 때엔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전체가 아니라 한 장르 부분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화라는 콘텐트가 앱스토어라는 공개시장'들'을 통해 공개가 될 때, 적당히 웹툰을 옮겨 담는 수준의 안일한 방식으로 일관한다면 과연 유료 무료 이전에 시장 자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또 내러티브나 연출에 관한 고민이 없이 접근했을 때 소비자들이 어느 정도까지 참아줄 것인가.

시장 초창기에 진입하는 이들은 앞서서 이런 부분도 고민을 해야만 합니다. 결국 콘텐트 시장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서는 질 좋은 콘텐트들이 계속해서 나와줘야 합니다.


- 마치며

어쩌면, 아직 우리 앞에 오지 않은 시장이기 때문에 말이 많고 탈도 많고 번잡한 논쟁도 많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막상 열어놓고 보면 Y2K 마냥 별 게 아닐 수도 있죠. 그렇지만 모든 가능성, 모든 방향성을 열어놓고 서로 접점을 찾는 과정은 새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아이디어들을 나누고 공유해야 하고요.

논쟁이 터진 지 약 한 달여, 단순히 진영논리나 감정 싸움이 아니라 서로 왜 반목이 일어났는지부터 시작해 서로의 입장차와 관점차, 드러내고 양보할 수 있는 한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까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다행히도 서로의 노력이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결실을 맺어가고 있어 보입니다. 미진한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은 조금씩 더 다듬고 조금씩 더 만들어가야 하겠지요.

한국 만화계는 여러모로 특수한 환경을 지니고 있습니다. 100년이라고 하지만 현대적 의미의 만화계가 정립된 것을 50년대로 볼 때 약 60년에 걸치는 동안 이 좁은 판 안에서 얼마나 많은 계열이 명멸해 갔는지 모릅니다. 서로 성격이 너무나 다른 계열이 교차하는 가운데 교체기가 언제나 평화롭지만은 않은 탓에 서로 서 있는 판에 따라 입장차가 지나칠 정도로 나 왔던 것도 사실입니다. 웹툰이라고 하는 새 장르가 장르적 의미로 정립된지 이제 6년이 흘렀습니다만, 웹툰과 그 이전의 만화계와의 반목은 말할 것도 없고 웹툰 안에서도 흐름이 갈리는 모습을 봅니다.

이번 애플 앱스토어와 연관한 이야기들을 옆에서, 또는 앞에서 지켜보면서 한편으로는 참으로 서글펐습니다. 누가 시켜서 그리 갈린 것도 아닐진대 서로에 관해 이해도 지식도 없이 이를 갈며 내뱉는 언변들이 가슴 아팠습니다. 눈앞에 떨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전에 안쪽부터 다잡을 필요를 느꼈습니다. 과연 그런 과정이 얼마만큼 의미를 남겼을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새 시장을 만들어가는 데에 어느 누가 적이고 어느 누가 아군이고가 아니라 - 또 웹툰이나 비웹툰이냐가 아니라 '만화'로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 마지않습니다.

고맙습니다.


- 서찬휘 올림 (2009. 7.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