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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 이건희 회장 ‘위기감’ 진원은 [중앙일보]

스페셜리포트 - 이건희 회장 ‘위기감’ 진원은 [중앙일보]

2010.03.28 21:33 입력 / 2010.03.29 03:03 수정

애플 아이폰 만들 때 삼성 뭐했나
‘소프트파워 밀리면 끝’ 절박감

“위기다. 글로벌 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10년 내 삼성의 대표 제품들이 모두 사라질 수 있다. 다시 시작하자. 앞만 보고 가자.”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24일 삼성전자 회장으로 복귀하면서 임직원들에게 털어놓은 첫 메시지다. 그의 발언은 삼성의 공식 트위터인 ‘삼성인’(http://twitter.com/Samsungin)을 통해 전해졌다. 그가 삼성의 수장으로 복귀하면서 언급한 ‘위기’의 실체가 무엇일까.


주력회사인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돌파라는 사상 최고 실적을 내지 않았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업계 전문가들은 “급속히 성장해 정보기술(IT) 산업의 지형도를 새로 쓰고 있는 스마트폰과 3차원(3D) 입체 TV 분야가 위기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것 아니냐”고 입을 모은다.




◆소프트파워의 충격파=지난해 말부터 국내에 불어닥친 아이폰 열풍이 위기의식을 고조시킨 계기다. 삼성전자의 강점인 하드웨어(HW)에다 소프트웨어(SW)를 접목한 강력한 비즈니스 모델이 국내 시장을 휘젓는 모습은 불안감을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미국 애플이 다음 달 해외 출시하는 태블릿PC ‘아이패드’에 이어 TV 제품에까지 진출할 경우 세계 최대 TV 회사인 삼성의 ‘수성’이 큰 위협을 받을 것이다. 삼성은 지난달부터 3D TV 분야에서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지만 콘텐트 면에서 우위인 소니, 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PDP)의 강자인 파나소닉, 두 일본 업체와 사투를 벌여야 한다.

두 달 전 불거진 도요타 리콜 사태는 명망 있는 글로벌 정상업체가 한순간에 고전의 늪에 빠질 수 있음을 보여준 충격적 사건이었다. LG전자의 남용 부회장도 최근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향후 3년은 우리 회사의 운명을 가를 결정적 시기가 될 것”이라고 임직원의 분발을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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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치부심 스마트폰=삼성전자의 담당 임직원들은 지난해 11월 말의 쇼크가 여전히 생생하다. 영하의 날씨에도 아이폰 출시행사를 보려고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앞에서 밤새 줄 서 기다리던 아이폰 매니어들의 모습, 그리고 시판 1주일 만에 10만 대를 돌파한 판매 기록…. 최지성 총괄사장은 공개석상에서 “충격적이고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되씹었다. “애플이 크는 동안 삼성은 뭐했나”라는 지적이 안팎에서 일기도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삼성전자가 컬러 휴대전화 이후 뾰족한 시장 선도 제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의견을 올 초 보도했다. 삼성의 지난해 세계 휴대전화 시장 점유율은 19.9%(2억2710만 대)로 핀란드 노키아에 이어 2위인 데 비해 스마트폰은 3.7%(640만 대)로 부진한 편이다. 애플이 2007년 6월 출시한 아이폰 한 품목으로 3년 만에 스마트폰 시장 세계 3위(14.4% 점유율)에 오르는 동안 삼성은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이야기다.

물론 반도체나 액정화면(LCD)·프리미엄 TV 등 삼성전자 주요 품목의 비교우위는 확고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부진은 단순히 한 첨단 휴대전화 품목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권기덕 수석연구원은 “미국처럼 통신산업이 비교적 덜 활발한 선진국들이 스마트폰이 득세한 뒤 연관 산업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에 불러 쓸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이하 앱) 시장만 해도 올해 68억 달러에서 2013년에 295억 달러 규모로 급증한다는 전망이다. 권 연구원은 “2013년에는 휴대전화 중 스마트폰 사용자 비중이 40%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은 단말기를 잘 만드는 데 온통 힘을 쏟은 나머지 소프트웨어(SW) 분야엔 소홀했다.

애플도 원래는 하드웨어(HW) 업체였지만 ‘아이튠스’ ‘앱스토어’ 같은 온라인사이트를 우수 SW와 콘텐트가 가득한 아이폰 생태계로 일군 것과 대조된다는 것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김민식 책임연구원은 “플랫폼 개발 등 스마트폰 인프라는 선발 기업보다 일부 분야에선 4년까지 뒤진 듯하다”고 분석했다.

성균관대 정태명(정보통신공학부)교수는 “삼성 내에도 SW 인력이 적지 않지만 조직이 HW 중심 체질에 길들여져 창의적 발상이 잘 먹히지 않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삼성이 1990년대 초반의 한바탕 혁신 바람 덕분에 오늘의 번영을 구가하는 만큼 스마트폰 전쟁에서 혁신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이건희 회장의 지적처럼 위기를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성전자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구성원들의 창의적 아이디어를 최대한 살리는 쪽으로 업무방식과 조직형태를 바꾸려 한다. SW 개발조직에 좀 더 힘을 실어주는 방향으로 조직이 개편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최근 KT에서 SW 개발 전문가인 강태진 전무를 영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뭔가 허전한 3D TV=삼성전자는 TV와 안경이 주파수로 교신하는 셔터글라스 방식의 풀HD(고화질) 3D LED(발광다이오드) TV를 지난달 세계 처음 출시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앞줄 오른쪽)은 지난 1월 9일(현지시간) 소비자가전쇼(CES)가 열린 미국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의 삼성 전시관을 찾아 3차원(3D) 입체TV용 안경을 쓰고 3D TV 시연을 지켜봤다. 윤부근 삼성전자 사장(앞줄 왼쪽)과 최지성 총괄사장(앞줄 가운데),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뒷줄 오른쪽) 등이 함께 설명을 듣고 있다. 이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사업 준비는 턱도 없다”며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연합뉴스]
그런데도 허전한 구석이 있다. 3D TV로 즐길 만한 콘텐트 확보가 시장 선점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입체 파워포인트(PPT) 솔루션을 개발한 레드로버의 하회진 사장은 “소니는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제작사 컬럼비아를 소유한 데다 6월 남아공 월드컵 축구 22개 경기를 3D로 제작해 공급하기로 하는 등 3D TV용 콘텐트가 풍부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디지털 TV 시장 주도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이 SW인 앱 경쟁력에 좌우되듯 3D TV 또한 콘텐트 경쟁력이 관건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할리우드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드림웍스와 제휴해 블루레이 플레이어로 콘텐트를 공급하고 있다. 그러나 6월 월드컵 중계가 분수령이 될 수 있다. 3D 첨단 방송장비 시장을 독점한 소니의 기세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9월 독일 베를린 가전전시회 ‘IFA 2009’에서 3D TV를 선보이며 바람몰이를 하기 시작했다. 당시 하워드 스트링어 최고경영자(CEO)는 “2010년까지 3D 브라비아 LCD TV를 비롯해 3D용 하드웨어와 콘텐트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차근차근 준비해 6월 10일 3D TV 4종을 출시, ‘TV 황제’라는 명성 회복에 시동을 걸겠다는 각오다. 소니의 3D TV에는 삼성전자가 보유하고 있는 2D 콘텐트의 3D 전환기술이 포함돼 있다.

심재우·문병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