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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임윤규 칼럼] 게임의 사회적 책임

[임윤규 칼럼] 게임의 사회적 책임

임윤규 정보미디어부 부장

어이없고 억울한 마음 충분히 이해되고도 남는다. 직접적 원인을 제공했는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도 않지만, 뭔 일 생기면 잠시 스쳐갔단 이유만으로 늘 죄인취급을 받고 있으니. 필요할 땐 끝도 없이 추켜세우다가도 무슨 문제만 생기면 절벽으로 떠밀어버린다.

처음부터 사랑과 집착은 종이 한 장 차이였다. 어느 영화카피에선 싸우고 헤어지고 스토킹하고 그리워하는 것, 그게 사랑이라더라. 그 모든 과정에 집착은 늘 존재했다. 어찌 질투와 집착 없이 사랑이 가능하겠는가. 여기서 몰입이 나온다. 집착은 어쩌면 과몰입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을 것 같다. 듣기 좋게 포장한 `과몰입'이라는 단어는 곧 중독을 의미한다. 중독, 이 순간이 오면 사람은 자기 통제력을 잃게된다. 사랑도 이 순간 끝장이다.

게임 얘기다. 게임에 빠져드는 과정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과 닮아 있다. 생각이 곧 사랑이라는 시인의 노래처럼, 시간이 흐르는 동안 게임은 더 깊고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사랑하는 동안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하다가도 어느 순간 병처럼 깊어져 집착이 되면 다른 어떤 것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듯, 게임에 빠져들면 다른 대상에선 어떤 흥미도 찾지 못하게 된다. 집착과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순간, 상식의 파멸만 있을 뿐이다.

어떤 부부가 태어난 지 얼마 안된 아이를 두고 PC방에서 게임을 했다. 부부가 게임을 하는 동안 홀로 방치된 아이는 죽었다. 부부가 했던 게임은 사이버상에서 아이를 키우는 역할수행 게임이었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아이의 아빠는 마흔 한살, 엄마는 스물 다섯 이었다. 두 사람은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났고, 아이를 낳았으나 키울 경제적 능력을 갖지 못했다. 부부는 아이를 현실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부부는 실존하는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사랑을 가상세계의 아이에게 쏟았다. 상실감을 보상받기 위한 자기 위로처럼. 현실적 삶의 궁핍에서 오는 정신적 상처를 사이버 세상은 보상해줬다. 게임 안에선 아이에게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다시 묻는다. 게임업계는 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추궁이 정말 억울한가. 게임으로의 현실도피가 가져온 아이의 방치가 결국 죽음으로 이어진, 그래서 다시 게임업계가 모든 책임의 진원지가 되는 여론의 흐름이 완전 어이없는가.

게임산업은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핵심이며, 콘텐츠 수출을 통해 돈을 벌어들이는 몇 안 되는 효자산업이다. 문화부는 올해 게임 수출액이 15억달러(1조7700억원규모)에 육박할 것으로 예측한다. 게임회사의 매출은 이미 어지간한 굴뚝업체를 뛰어넘으며 연간 매출 7000억원을 넘는 회사도 있다. 정부는 이런 게임산업 육성에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최근 더욱 관심이 높아진 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해선 게임을 빼 놓고 얘기할 수 없다. 게임만큼 경쟁력 있는 콘텐츠는 몇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 게임을 콘텐츠산업의 동력으로 삼겠다면 이제 사회적 책임을 정면으로 응시하라. 게임의 역기능을 최소화해 비극을 줄이고, 즐거움과 행복감을 더욱 키워 보다 더 거대한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선 사회적 책임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한다. 연간 순익의 단 몇%라도 건강한 게임생활을 위한 예방교육에, 게임중독자 치료를 위해 쓸 수 있는 업계의 도원결의가 필요하다.

사람을 길들였으면 책임을 져야지. 중독되지 않고 게임을 사랑할 수 있게 하는 것, 집착에서 벗어나 현실의 책임을 정직하게 응시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곧 치료다. 그것이 결국 게임을 새로운 차원의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게 하는 출발점이다.
 
출처 ;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