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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디즈니를 키워라] 1부. 도약의 전제조건 <5> 금융, 문화융성의 마중물 돼야

[한국의 디즈니를 키워라] 1부. 도약의 전제조건 <5> 금융, 문화융성의 마중물 돼야

콘텐츠 우수해도 대자본에 무릎 일쑤… 투융자 복합금융 절실
돈줄 쥔 대형배급사 아이디어 강탈 등 잇따라
은행, 콘텐츠산업 미래 먹거리로 접근해 지원
전담부서 만들고 현장 출신 인력 확보도 필요
입력시간 : 2014.03.17 18:33:23
 
지상파 방송국에서 드라마제작 관련 업무를 하던 이동건(가명)씨는 3년 전 회사를 나와 자신의 사업체를 차렸다. 방송국에서 노하우를 익힌 그는 2번에 걸쳐 드라마제작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제때 자금을 대기 어려워 대형배급사와 손잡은 것이 화근이었다. 자금력을 앞세운 대형배급사는 중요한 시기마다 작업을 지연시키며 이씨를 코너로 몰았다. 자본의 횡포에 지친 이씨는 사업을 접었다.

문화콘텐츠산업계에서 종종 목격되는 풍경이다. 많은 산업종사자들이 대자본 앞에서 비즈니스를 강탈당하고 필요할 때 자금융통을 못해 대중을 만나기도 전에 아이디어가 사장된다. 문화콘텐츠산업 육성이 시대적 공감을 얻고 있지만 단순히 구호에만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종사자들의 아이디어를 부가가치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자금지원이 절실하지만 금융산업의 이해도는 아직도 걸음마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문화콘텐츠산업의 융성은 금융시스템 개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벤처투자 등과 같은 재래식 틀에서 벗어나 투자와 융자가 섞인 복합금융 채널을 구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김남훈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문화콘텐츠산업 육성을 위해서는 금융기관이 투자융자복합형 상품을 개발하고 사업 분야별로 특성을 반영한 평가체계를 확립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투자융자 복합금융 마련돼야=창조금융 시대를 맞아 금융의 패러다임이 대출 위주에서 투자 중심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창조금융의 대명사라 할 문화콘텐츠산업에서는 이 같은 공식이 통하지 않는다. 투자로 가장한 자본의 횡포가 횡행하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산업은 전형적인 '하이리스크 하이리턴(High Risk High Return)'의 특성을 지닌다. 리스크가 높은 탓에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를 갖는 것은 늘 자본이다. 시간 역시 자본의 편이어서 기업이 아무리 뛰어난 문화콘텐츠를 갖고 있더라도 자본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는 역으로 자본력이 없는 기업들에 대한 다양한 금융지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회수 리스크가 높은 자금에는 투자를 활용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대출을 활용하는 식으로 자금융통의 폭이 넓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로 투융자복합 금융지원 방식은 할리우드 같은 선진국에서는 일반적인 시스템이다. 문동열 기업은행 문화콘텐츠금융부 차장은 "문화콘텐츠금융은 단계별로 맞는 투자방법이 따로 있기 때문에 대출이나 투자 등으로의 일변도가 아닌 다양한 방식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1금융권에 어울리는 역할 찾아야=드라마제작사 A는 모 방송사와 편성확정을 맺고 촬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방송계약이 미뤄지면서 방영권료 지급이 지연되기 시작했다. 촬영자금이 소진된 제작사는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고 드라마제작 과정의 보릿고개라고 불리는 3~4개월 기간을 무사히 넘길 수 있었다. 은행대출이 없었다면 제작사는 투자를 받았어야 했다. 물론 투자의 대가로 상당량의 수익지분을 넘길 수도 있었다.

국내 금융산업 지형도에서 투융복합금융의 역할을 맡아줄 곳은 은행 정도가 유일하다. 문화콘텐츠산업이 리스크가 높기 때문인데 이를 감내하고 초기시장을 개척하려면 수준 이상의 자금력과 인재풀을 갖춰야 한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곳은 1금융권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국내 은행들의 문화콘텐츠금융은 아직 걸음마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은행 중에서 문화콘텐츠금융 전담부서를 갖춘 곳은 기업은행이 유일하다. 나머지 은행들은 전문인력도 없이 창업대출상품을 대용해 문화콘텐츠금융의 명목만 유지하고 있다.

국내 은행들이 문화콘텐츠금융에 소극적인 것은 문화콘텐츠금융을 돈벌이가 아닌 정책자금의 성격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문화콘텐츠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금융사의 인식전환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문화콘텐츠금융을 영세기업에 대한 시혜성 자금지원이 아닌 미래 먹거리의 하나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권우영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수석연구원은 "문화콘텐츠산업은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연평균 26%씩 성장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산업의 성장성과 침투지역 등을 감안하면 금융사에는 다양한 사업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담부서, 전문인력 확보가 선결돼야=문화콘텐츠금융은 산업의 특성상 전문인력 확보가 필수적이다. 문화콘텐츠는 무형자산이어서 성장성을 평가하기가 쉽지 않은데다 모방할 수 있는 금융기법이 없어 섣불리 속도를 내기도 어렵다. 제때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대출이 됐든 투자가 됐든 사업평가가 먼저 이뤄져야 하는데 이를 은행원의 눈으로 분별해내기는 어렵다. 더욱이 문화콘텐츠산업은 기업 간 양극화가 심해 객관적인 가치평가가 쉽지 않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전체 문화콘텐츠기업 중 0.4%에 해당하는 500개 대형사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가 넘는다. 객관적 평가가 어렵기 때문에 사업에 대한 계량화도 여의치 않고 결국 주관이 개입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콘텐츠금융 지원에 나서기 전에 은행원과 현장출신을 안배한 인적융합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문화콘텐츠금융의 선두주자로 평가 받는 HSBC의 경우 △영화 △음악출판 등 각 분야별 전문가로 이뤄진 팀을 구성해 △배급사의 보유 유무 △제작자의 과거 경력 및 프로젝트 계획서 평가 등을 꼼꼼히 평가한 후 실제 자금집행 여부를 결정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평가결과에 따라 금융지원 형태나 금리수준 등을 결정해 맞춤형 금융지원에 나선다. 오랫동안 쌓아온 노하우 덕에 체계적인 금융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