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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로 들여다본 일본… 일부 반감 있지만 대중문화 정착

한류로 들여다본 일본… 일부 반감 있지만 대중문화 정착

도쿄 | 서의동 특파원 입력 : 2011-08-15 21:36:31수정 : 2011-08-15 21:36:32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온 ‘후지TV의 한류세뇌 모음’에는 지난달 18일 후지TV가 하루 5편의 프로그램에 한류스타들을 출연시킨 편성표가 등장한다. 일본에서는 최근 민간방송 후지TV가 ‘한류 편중’을 보이고 있다는 논란이 일면서 관련 동영상들이 상당수 유포되고 있다.

한류가 일본의 대중문화에 폭넓게 진출하면서 꿈틀거리고 있는 ‘반(反)한류’의 일면이다. 최근 도쿄 오다이바의 후지TV 앞에서 ‘한류 편중 반대’ 시위가 벌어졌는가 하면 한류에 대해 냉담한 기사들도 주간지에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반한류’ 현상은 수익률지상주의로 치닫고 있는 일본 방송산업에 대한 시청자들의 불만이라는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일본 사회의 열패감도 반한류의 배경이다.

일본의 주간지 ‘주간포스트’ 최근호의 특집기사에 따르면 민간방송에서 요즘 급증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한류 드라마, 통신판매, 방센(番宣·본 프로그램의 내용을 축약해 보여주는 예고 프로)이다. TBS와 후지TV는 10년전 해외 드라마가 전혀 없었으나 최근엔 매일(월~금) 각각 1시간, 2시간50분씩 한류 드라마를 내보낸다. 후지TV 관계자는 “엔고의 영향으로 한류 드라마의 구입단가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며 “자체 제작 드라마보다 비용이 저렴하면서도 구매력이 있는 주부층을 중심으로 시청률이 높아 광고주들도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지상파에 통신판매(통판) 프로그램도 버젓이 등장한다. 일본TV, TV아사히, 후지TV 등의 평일 새벽 2~5시 시간대는 통판으로 거의 채워진다. 광고수익이 보장되기도 하지만 일부 방송사들이 통신판매 회사를 자회사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또 주말에는 ‘방센’ 프로그램이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해당 방송사가 공들여 만든 프로그램의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본방송 전 미리 요약해 방영하는 것으로 전형적인 ‘전파낭비’형 프로그램이다.

한류 드라마의 편성비중이 높아진 것은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방송사의 수익논리를 충족시키는 방편으로 활용된 측면도 있는 셈이다. 일본 배우 다카오카 소스케(高岡蒼甫·29)의 ‘후지TV 한류 편중’ 비판은 이런 파행 편성 때문에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연예계 종사자의 불만을 대변한 측면도 있다.


일본 방송들이 수익지상주의에 빠져 공공성을 외면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본업 외에 영화·음악 제작 및 유통업, 전시회 등 이벤트 사업은 물론 부동산 임대업에까지 발을 뻗치면서 자사가 투자한 영화나 이벤트에 대한 홍보 프로그램을 버젓이 내보낸다. 전파를 통한 사익 추구가 극에 달하면서 일본 시청자들이 점차 TV 수상기 앞에서 떠나고 있다. NHK방송문화연구소가 발표한 2010년 국민생활시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TV를 전혀 보지 않는다’는 사람이 1995년 8%에서 지난해 11%로 증가했다.

하지만 지난 7일 오다이바 후지TV 앞에서 벌어진 시위는 한류 자체에 대한 불만이 반영돼 있음도 부정하기 어렵다. 시위에선 “조선인들은 한반도로 돌아가라”는 구호가 나오기도 했다. 전 항공자위대 막료장(공군참모총장) 다모가미 도시오(田母神俊雄)도 최근 “TV에서 온종일 한류 드라마를 내보내는 것에 위화감을 느낀다”며 논란에 가세했다. 방송사들의 파행에 대한 불만에 극우세력들이 파고들면서 반한류가 확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런 현상의 배경에는 일본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열패감’이 거론된다. 1990년대 초 거품경제 붕괴로 초래된 장기불황에 3·11 동일본 대지진까지 겹쳤지만 여전히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정치권과 관료, 방송 등 기득권층에 대한 염증이 만연해 있다.

한국이나 중국의 급성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편하지 않다. 성공회대 권혁태 교수(일본학과)는 “한때 일본 방송들이 미국 드라마를 많이 방영한 적이 있지만 그 때문에 시청자들이 불만을 표출한 적은 없다”며 “한국과 중국에 대한 열패감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려는 움직임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한류가 이미 일본의 대중문화에 깊게 뿌리내린 만큼 지나치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많다. 산케이신문 문화부 편집위원인 기타 요시히로(喜多由浩·50)는 “K팝(한국가요)의 영향으로 한류 향유층이 40~50대 여성층에서 전 연령대로 확대되고 있다”며 “한류는 이미 일본 대중문화의 일부로 봐도 좋을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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