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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명사

[동일본 대지진] 한국은 지금 일본으로 달려갑니다

[동일본 대지진] 한국은 지금 일본으로 달려갑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1.03.15 00:04 / 수정 2011.03.15 09:37
이어령 고문이 일본인에게 부치는 편지
대재난이 착한 이웃의 존재 일깨웠습니다
          
바다가 일어서는 것을 보았습니다. 늘 보던 파란 파도가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뛰놀던 여름바다의 눈부신 모래밭이 아니라 산처럼 무너지는 검은 파도였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을 쉽게 휩쓸어버리는 허망한 동영상은 우리가 뽐내던 그 컴퓨터 CG가 아니었습니다. 규모 9의 지진과 함께 일본을 강타한 쓰나미였습니다.

 쓰나미(つなみ·津波)는 일본말입니다. 그 말이 세계의 공식용어가 된 것은 그만큼 일본에는 지진과 쓰나미가 많았던 까닭입니다. 그런데도 이번 지진은 달랐습니다. 지금까지의 기록인 규모 8.6의 호에이(寶永·1707년)지진보다 2배가 넘는 에너지였다고 해서가 아닙니다. 2만2000명이 사망한 산리쿠(三陸·1896년)지진보다 인명 피해가 더 클 것이라는 예측 때문만도 아닙니다. 그때까지는 발원지의 지역민들이 겪는 지진이요 연해안 주민만이 당하는 쓰나미였지만 해안선을 통째로 옮겨 놓았다는 이번 지진은 일본 열도 전체를 흔들었습니다.

앞으로 일본은 국가의 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바꾸지 않고서는 이 재난의 여진을 극복하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일본만의 일이 아닙니다. 이번 지진은 지구의 축도 2.5㎝나 기울게 했다고 합니다. 인간 문명 전체의 한계와 그 임계점을 드러낸 것이지요. 인간의 문명시스템을 바꾸지 않고서는 이 지구상에서 생존하기 어렵게 된 것입니다.

검은 파도가 덮칠 때 정쟁을 멈추는 일본인들을 보았습니다. 도쿄전력이 전후 처음으로 제한 송전을 하게 되자 피해 지역에 우선적으로 송전하도록 시민들은 일제히 자기 집 전선 플러그를 뽑았습니다. 남을 헐뜯던 인터넷은 사람을 찾고 돕는 생존의 게시판으로 바뀌고 트위터는 중얼대는 잡담에서 이재민을 돕는 생명의 소리로 변했습니다. 일본은 어느 나라보다도 지진에 대비하는 기술이 앞선 나라입니다.

일본 국민은 어느 나라 국민보다도 재난에 대비한 훈련과 질서의식을 갖춘 모범적인 국민입니다. 이번에도 지진이 일어난 수퍼마켓의 현장에서 물건을 훔쳐가기는커녕 자신이 들고 있는 물건 값을 치르기 위해서 줄을 서 기다리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외국인들은 감탄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아무리 그런 일본인들도 이웃나라 없이 혼자서는 살아가기 힘듭니다.

 정말 놀라운 것은 일본보다 가난한 나라들도, 일본을 미워하고 시기하던 나라들도, 멀리 떨어져 무관하게 바라보던 나라들도 일본인을 돕고 위로하기 위해서 가슴을 열었다는 사실입니다.

일본은 경제대국이지만 친구가 없는 나라라고 스스로 비판해온 일본인들입니다. 그러나 주변에 함께 울고 함께 상처를 씻어줄 착한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일본인들은 그 재난 속에서 얻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들의 비유처럼 목숨을 구해주는 것이 바로 내 이웃임을 우리는 알았습니다.

바이오필리아(biophilia·생명애)야말로 부국강병의 이념보다 더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난 자연 앞에서 우리는 한없이 인간의 왜소함과 나약함만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이해관계로 얽혀 살고 정실로 손을 잡아 끼리끼리 살다가도 생명을 위협받을 때에는 하나로 뭉치는 힘을 자연의 재난을 통해 배우고 실천합니다.

 독도 분규로 등을 돌렸던 한국인들도, 센카쿠열도로 총구를 맞댔던 중국인들도 지진이 일본인의 생명을 흔들 때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제일 먼저 도움을 주기 위해 재난의 땅을 향해 마음과 발길을 돌릴 것입니다. 한국은 일본을 향해 달려갑니다. 남의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남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새로운 문명은 독립(INDEPENDENCE)도 예속된 의존(DEPENDENCE) 관계도 아닌 상호의존관계(INTERDEPENDENCE)의 생명공동체적 시스템에서 탄생할 것입니다. 일본을 강타한 지진이 태평양 연안의 모든 나라에 쓰나미의 위험을 불렀듯이 그에 대응하는 생명 역시 공감과 협력의 지혜에 의해서 서로 결합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보았던 일본 쓰나미의 동영상을 리와인드해서 틀어보면 우리가 발 디디고 사는 이 한국 땅에도 그 기반을 송두리째 흔드는 지진과 쓰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은 세계 문명과 그 시스템에서 낙후하여 겪었던 후진국의 고난과는 다른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와 세계인들이 대비해야 할 문제는 어떤 선진 문명으로도 대응하기 힘든 환경의 쓰나미, 금융의 쓰나미, 정보의 쓰나미, 테러의 쓰나미입니다. 그리고 현대 문명의 임계점에서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지금 일본인들이 필요로 하는 것처럼 생명의 구제입니다. 사사로운 이해관계와 정쟁과 그 많은 갈등이 생명 앞에서는 참으로 부질없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생명을 구제하는 것은 돈도 권력도 아니고 바이오필리아(생명애), 토포필리아(topophilia·장소애), 그리고 네오필리아(neophilia·창조애)와 같은 이웃을 향한 사랑이라는 것. 그것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자원이요 자본이라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멀고도 가까운 나라라고 했던 일본과 한국이 하나의 생명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생명을 자본으로 한 진정한 글로벌리즘이 무엇인지를 세계에 알릴 수가 있습니다. 그것이 검은 파도를 이기는 우리의 블루 오션입니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축소지향의 일본인』 책 펴낸 일본 전문가

이어령 본사 고문은

중앙일보 이어령 고문은 국내 대표적인 일본 전문가다. 1981년 6월부터 1년간 일본 외무성 국제교류기금 초청으로 일본 도쿄대에서 비교문학을 연구하며 펴낸 『축소지향의 일본인』이 일본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 고전문헌부터 소니(SONY)로 상징되는 첨단 전자제품까지 일본인들의 문화적 유전자를 ‘축소 지향’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해 낸 책은 일본 출간 50일 만에 5만 부가 팔렸다.

 이 고문은 공공기관·기업 등으로부터 강연 요청이 쇄도해 일본 전역을 돌며 수십 차례 강연을 하기도 했다. 특히 『축소지향의 일본인』은 일본 시사잡지 ‘프레지던트’가 94년 선정한 ‘일본·일본인론 명저 10선’에 꼽히기도 했다. 이 같은 일본 내에서의 인기에 힘입어 뒤늦게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이 고문은 84년 일본의 정형시인 하이쿠의 구조를 분석한 『하이쿠의 시학』도 펴냈다. 2009년에는 일본 나라현 현립대학 명예학장으로 추대됐다. 시·소설·문학평론 등 다양한 글쓰기에 능하다. 88 서울올림픽 개·폐회식을 연출했고 초대 문화부 장관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