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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선물로 바친 문화재

미국에 선물로 바친 문화재

문화재제자리찾기 사무총장. 조선왕조실록환수위 간사. 조선왕실의궤환수위 사무처장.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BY : 혜문 | 2011.03.07 | 덧글수(0) | 트랙백수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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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는 말  

 벽 쪽 책꽂이에는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대동야승(大東野乘)> 등 한적(漢籍)이 빼곡히 차 있고 한쪽에는 고서의 질책(帙冊)이 가지런히 쌓여져 있다. 맞은편 책상 위에는 작은 금동 불상 곁에 몇 개의 골동품이 진열되어 있다. 십이 폭 예서(隸書) 병풍 앞 탁자 위에 놓인 재떨이도 세월의 때묻은 백자기다. 저것들도 다 누군가가 가져다 준 것이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이인국 박사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그는 자기가 들고 온 상감진사(象嵌辰砂) 고려 청자 화병에 눈길을 돌렸다. 사실 그것을 내놓는 데는 얼마간의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국외로 내어 보낸다는 자책감 같은 것은 아예 생각해 본 일이 없는 그였다. 차라리 이인국 박사에게는 저렇게 많으니 무엇이 그리 소중하고 달갑게 여겨지겠느냐는 망설임이 더 앞섰다. 브라운 씨가 나오자 이인국 박사는 웃으며 선물을 내어놓았다. 포장을 풀고 난 브라운 씨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기쁨을 참지 못하는 듯 탱큐를 거듭 부르짖었다.  

                                                                                        —전광용 소설 , [거삐딴 리]에서 

설명) 핸더슨 컬렉션이란? 

‘헨더슨 컬렉션’은 미군정기와 박정희 정권시절 주한 미국대사관 문정관을 지냈던 故 그레고리 헨더슨에 의해 수집된 4세기-19세기에 걸친 도자기 컬렉션을 말한다. 지난 1988년 헨더슨이 갑자기 사망한뒤, 부인인 마이아 여사의 기증으로 하버드 대학은 150여점의 도자기들을 소장하게 되었다.

고교시절 읽었던 전광용의 소설에 나온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미국 외교관에게 한국의 엘리트들이 선물했다는 ‘우리 문화재’는 하버드 대학에서 슬픈 우리 현대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2009년 나는 1달간의 접촉 끝에 하버드 대학으로부터 ‘ 하늘아래 제일( First Under Heaven )’이란 평가를 받은 헨더슨 컬렉션을 수장고에서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로버트 마우리 교수는 연구실로 안내한 뒤, “우리는 헨더슨 컬렉션에 대해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고, 우리의 아시아 컬렉션 중에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We are very proud of our Korean works of art and consider it one of the great strengths of our Asian colleciton.)” 고 말했다.

 

 2. 하버드 대학의 헨더슨 컬렉션 – ‘하늘아래 제일( First Under Heaven )’  

마우리 교수는 1991년 마이어 헨더슨 여사로부터 ‘헨더슨 컬렉션’ 150점을 넘겨 받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사람이며, ‘천하제일( First Under Heaven ) – 헨더슨컬렉션의 한국 도자기’란 특별전시회를 개최한 주역이기도 했다. 그는 헨더슨 컬렉션을 한국에 대여해 줄 수 있느냐는 나의 질문에 ‘조건만 맞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진설명 : 청자 주병 12세기 작품, 고려청자의 신비스런 색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이다. 비취빛이 은은히 감도는 이 작품은 아마도 현존하는 고려청자중 가장 최고의 색깔일 것으로 하버드대학은 평가하고 있다 (사진제공 하버드대학) 

하버드 대학 ‘헨더슨 컬렉션’의 고려청자는 천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아직도 ‘신비의 비색’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보존상태도 아주 양호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이나 삼성 리움박물관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려청자중에서도 ‘최고품’의 수준에 있는 것들이었다.  1991년 하버드 대학이 마이아 여사로부터 ‘헨더슨 컬렉션’의 150점 도자기를 넘겨받으면서 열었던 전시회의 제목 ‘하늘아래 제일( First Under Heaven )’이란 제목이 과연 무색하지 않았다. 

 나. 뱀모양 장식의 가야토기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또하나의 작품은 뱀모양의 장식이 달린 ‘가야토기’였다. 그것은 매우 특이한 형태로 그전에 본적이 없는 작품이었다. 여기에 대해 마우리 교수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 이것은 헨더슨 콜렉션의 고대 도자기들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신라 혹은 가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뱀 장식이 달린 의전용 스탠드입니다. 이 스탠드의 미적인 가치는 인상적인 균형미와 강건함, 구조상의 미, 그리고 균형 잡힌 삼각 세공에 있습니다. 가야시대 유물 중 매우 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국 시대의 네 번째 왕국이라고도 불리는 가야국(57 BCE – 668 CE)의 작품은 신라 도자기의 초기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가야가 한반도 문화가 일본으로 흘러 들어가는 통로 역할을 했다는 면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으며, 또 삼국 시대 도자기는 중국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가운데 한국 도자기 고유의 형태와 감각을 이 가야시대 작품을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는 면에서 그 중요성은 매우 크다고 평가합니다. 이와같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섭씨 1000도 이상까지 온도를 올릴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서양은 14세기에 와서야 이런 기술을 가질 수 있었는데, 가야시대에 한국이 이런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註) 이 작품에 대해 핸더슨은 “아마도 대구 달성군 양지리에 있는 장군의 무덤에서 1960년 도굴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 적고 있다. 좀더 깊은 자료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찬탄과 감탄에 사로잡혀 하버드 박물관 관람을 마친 뒤, 동행했던 사람중 하나가 “이렇게 대단한 한국 문화재가 하버드 대학에 있을 줄 몰랐다. 웬지 약간 화가 치밀어 오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나는 글쎄 머리가 띵해져왔다. 우린 이것도 모른채, 그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 

 3. 우리는 ‘심봉사’같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헨더슨 컬렉션은 어떻게 성립되었는가? 그건 가난하고 힘들었던 우리의 근현대사속에서 우리의 엘리트들이 뇌물로 넘겨버린 문화재들이다. 그레고리 헨더슨이 문정관으로 한국에 재직하던 시절, 그의 집 문앞에는 선물보따리를 싸들고 서성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 의해 선물로 혹은 뇌물로 전달된 ‘우리의 자식’들은 어느새 세계최고의 대학까지 흘러와 ‘ 하늘아래 최고( First Under Heaven )’란 평가를 받으며,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헨더슨이 한국을 떠날 때 , 무사히 그것들을 가져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들이 있을 정도이다. 

 보스턴을 떠나 뉴욕으로 돌아오는 4시간동안 나는 ‘심봉사’를 떠올리고 있었다. 제 눈뜰 요량으로 곱디 고운 딸 팔아 얻은 돈으로 뺑덕어미랑 재미보고 사느라 세상시름 잊었던 못난 아버지. 황후가 된 심청이 앞에서 불려 나가자 혹시 ‘딸 팔아 먹은 죄’가 들통난 줄 알고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던 그 못난 아버지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어떤 사람은 말한다. 

 “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세계최고의 대우를 받게 되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 아니겠습니까?” 

 그도 그럴법하다. 가난한 아버지 밑에서 동냥질이나 하면서 뒹구는 심청이 보다는 황후가 되는 심청이가 훨씬 보기 좋으니 말이다. 한국에서 ‘전쟁고아’가 되어 거렁뱅이로 전전하느니 미국 입양와서 시민권자로 행복하게 살아가는게 좋을 수도 있으니까. 먼먼 시간의 여행을 떠난 ‘헨더슨 컬렉션’이 일부나마 본국으로 돌아온다면, 우리는 ‘스스로 팔아먹은 문화재’에 대한 죄의식같은 것을 좀더 정직하게 털어낼 수 있지 않을까? 최소한 ‘헨더슨 컬렉션’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사실들을 고발하고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그런 시도라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헨더슨 컬렉션은 내막을 알면 알수록 가슴아픈 이야기요, 현대판 심청전에 다름아니다. 하버드대학의 박물관에서 ‘하늘아래 최고( First Under Heaven )’가 된 헨더슨 컬렉션은 삼단같은 머리를 풀어 헤치고 인당수 푸른물에 몸을 내던진 가엾은 우리들의 ‘심청’이요, 우리는 뺑덕어미 살내음에 파 묻혀 딸 생각을 잊어버린 못난 아버지에 다름아니다.. 보이지 않는 눈을 떠보려고 눈꺼풀을 깜짝깜짝거려 본다. 세상을 여실하게 바라보는 일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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