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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차라리 NLL을 포기하자

차라리 NLL을 포기하자
[경향신문] 2010년 12월 19일(일) 오후 12:01   가| 이메일| 프린트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10대 조기 유학생끼리 호칭 문제로 다툼을 벌이다 한 명이 숨지는 사건이 보면서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참으로 한국적 갈등이란 생각이 들었다. 형·동생 호칭이 얼마나 중요하길래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했을까. 물론 그렇게까지 사건이 확대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터이다.

누군가 한 사람이 양보했다면 참극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란 점에서 안타깝다. 또는 그렇게 호칭문제가 불편해서 싸울 지경이라면 차라리 서로 사귀지 않는 방법은 없었을까. 사귀지 않으면 서로 이름을 부를 일이 없을 것이고, 그렇다면 호칭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소되지 않을까. 애증을 한덩어리로 안고가는 한국식 사교법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사건이었다.

생각은 LA에서 서해바다로 이어졌다. 지금 서해바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LA에서 10대들이 싸운 사건과 얼마나 다를까 하는 점이다. 가장 큰 차이는 서해에서는 안 사귀는 방법은 없다는 것. 서해에서는 둘이 항상 부딪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연평도에 포격을 가해 민간인을 숨지게 한 일은 명백한 북한의 잘못이다. 무력을 동원하지 않는 한 가장 강력하게 응징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제 저간의 사정을 한번 따져보자.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북방한계선(NLL) 관련 언급 보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바다에 그은 선은 항상 논쟁적이다.

한국전쟁 이후 역사적 관행을 중시하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북한의 주장을 꼭 억지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법률적 해석을 떠나서 서해바다에서 남과 북이 부딪혀야 한다면 ‘호칭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고, 서로가 양보하지 않는다면 형과 동생이 아닌 다른 이름을 찾아내야 하지 않을까. 물론 때려죽여서라도 호칭을 양보하지 않는 방법이 있다.

다행히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공동어로수역’ 구상은 이미 오래전에 제시됐다. 내 것이냐, 네 것이냐로 다툰다면 우리 것으로 하면 된다. 독도에서 다투는 한일과 달리 남과 북은 한민족이 아닌가. 언젠가는 통일국가로 살아갈 터인데 바다를 전쟁과 대치의 바다가 아닌 상생과 통일의 바다로 만드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한국군의 연평도 사격훈련은 LA 10대 조기 휴학생들의 치기와 닮았다. 아마도 “그래 형이라고 하지 않고 한번만 더 이름 불러봐. 어떻게 되나 보자” 그랬을 것이고, “그래 철수야(임의로 지은 이름) 어쩔래, 칠래?” 이렇게 응대했을 것이다.

연평도는 사실 북한의 턱밑이다. 인접해서 사는 주민이 “여기 창문 밑까지는 내 땅이니까 마음대로 할래”하며 꽹과리를 쳐댄다면 적법을 떠나 지각없는 행동일 될 것이다. 더구나 서로 한번씩 주먹다짐을 해서 예민해져 있는데 그런 행동을 한다면 객기 이상이라고 하기 힘들다.

옛날 일은 논외로 하고, 이 시점에서 연평도 사격훈련은 부적절하다. 당장 중단하는 게 맞다. 초등학생 땅따먹기와 무엇이 다른가. 비 한번 오면 지워질 금을 두고 목숨까지 거는 게 애국일까.

차라리 NLL을 포기하자. 포탄과 저주가 넘치는 바다가 아니라 꽃게와 조기를 남한과 북한 주민들이 함께 잡는 바다로 만드는 게 더 아름답지 않은가.

사족을 달자면 LA 조기 유학생들의 호칭다툼은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감옥으로 가는 것으로 결말이 났다. 양쪽 모두 그런 결말은 기대하지 않았고, 서로 내 뜻을 반드시 관철할 수 있다고 믿었다.

안치용 지속가능사회를 위한 경제연구소(ERISS) 소장/eriss.tistory.com
(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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