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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과 아이러브스쿨의 명암 벤처로 살아남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

페이스북과 아이러브스쿨의 명암 벤처로 살아남기 어려운 한국의 현실 2010년 11월 15일(월)

오는 18일 개봉 예정영화 ‘소셜 네트워크(데이비드 핀처 감독)’는 ‘페이스북(facebook)’의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다. 할리우드가 실존 인물이면서 전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인 주커버그의 성공신화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은 페이스북이 그만큼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익히 알려졌듯이 마크 주커버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페이스북을 창립, 대학을 중퇴했다. 영화에서 주인공 마크는 2003년 가을 하버드의 비밀 엘리트 클럽의 윈클보스 형제에게 하버드 선남선녀들만 교류할 수 있도록 ‘하버드커넥션’ 사이트 제작을 의뢰 받는다.
 
일종의 비밀 미팅사이트로 볼 수 있는데 마크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인맥 교류 사이트인 페이스북을 개발한다.

실제로 마크 주커버그는 재학 시절 친구들과 함께 페이스북의 초기 버전인 학생 교류사이트를 개발했으며 여기에서 한 발 나가 오늘날의 페이스북을 만들었다. 현재 페이스북의 기업 가치는 대략 300억 달러로 추산되고 있으며 마크의 재산은 지난해 20억 달러에서 올해 69억 달러(약 8조원)로 급증했다. 

▲ 페이스북 성공신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소셜 네트워크' 

페이스북 승승장구, 아이러브스쿨 자취모호

한편 이 페이스북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한국에도 존재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의 신기원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아이러브스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지난 99년 김영삼씨가 만든 아이러브스쿨은 ‘싸이월드’와 더불어 토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대명사격인 업체였다. 주커버그의 성공신화처럼 카이스트 연구실에서 아이디어 하나로 출발해 성공한 김 씨의 아이러브스쿨은 90년 말부터 2000년 초까지 한국 벤처기업 성공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2000년 8월 야후의 500억 원 인수제안을 거부하고 국내 업체에 매각하려 했던 아이러브스쿨의 운명은 당시 지분매각을 둘러싼 분쟁에 휘말리면서 급속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김 씨가 최근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한국의 창업문화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그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2000년대 초반 이후 인터넷 등 국내 IT 업계에서 대기업 외에 신규로 창업해 성공한 사례 자체가 없었다”며 “개인적으로 한 번 맛본 쓰라림을 극복하고 재기하기엔 문턱이 너무나 높았다”고 토로했다.

‘대기업 외에 신규로 창업한 사례가 없었다’는 김 씨의 말은 한국에서는 더 이상 아이러브스쿨 같은 창업정신으로 무장한 새로운 벤처기업이 탄생하기 힘들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90년대 말 한국사회에 불어 온 닷컴 열풍을 타고 한국 증시를 새롭게 쓴 수많은 벤처기업들은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당시 닷컴 기업들의 퇴출요인에는 비이성적 투자로 인한 주가상승과 버블붕괴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벤처 1세대인 김 씨의 생생한 경험담은 단순히 김 씨 개인만의 한탄만으로는 볼 수는 없어 보인다.

한국에서 돈을 벌려면 ‘등록 시켜야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증권가에서는 오래전부터 정설로 통하고 있다. 여기서 등록한다는 얘기는 코스닥에 등록을 한다는 의미이다. 코스피에 상장을 하듯 코스닥 등록을 통해 액면가보다 몇 배 이상으로 주가를 키운 뒤 어느 시점에 회사를 팔아야 남는 장사라는 얘기다. 흔히 기업사냥꾼들이 말하는 ‘먹튀(먹고 튀는)’ 전략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기업가 정신으로 회사를 창업했다고 해도 반드시 그 회사를 끝까지 경영해야 할 이유는 없다. 증권가의 정설처럼 좋은 투자자와 회사를 건실하게 운영할 수 있는 경영자에게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판다면 본인과 회사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유튜브를 구글에 매각한 일례에서 보듯 그러한 성공사례도 존재한다.

성공매각과 외부환경 기업매각 현격한 차이

그러나 더 좋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회사를 매각하는 것과 매각을 해야할 수밖에 없는 외부 환경요인에 의해 회사를 매각하는 것에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비단 김 씨뿐만 아니라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시작한 중소기업들이 자사의 특허를 놓고 대기업과 법적 투쟁을 벌이는 사례는 한국사회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기실 의미 없는 일일 수 있다. 문제는 이런 환경이 한국사회에서 고착된다면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열정을 갖고 벤처정신으로 무엇인가를 시작하려는 원동력이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점에 있다. 고급 이공계 인력들이 해외로 유출하거나 의대, 치대, 한의대 등 이른바 전문 직종으로 쏠리는 편중현상이 점점 심화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는 않다.

지금은 전 세계 최대의 인터넷 검색 서비스 업체인 구글이나 동영상 서비스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 유튜브 역시 벤처기업으로 출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빌 게이츠 전 회장이 하버드대 재학 시절 설립할 당시에는 벤처회사였다. 현재는 디즈니에서 매수한 애니메이션 영화사 픽사는 현 애플 CEO인 스티븐 잡스가 설립한 조그만 영화사였다.

한국에도 다음, NHN, 안철수연구소, 엔씨소프트 등 벤처로 시작해 괄목한 성장을 한 뛰어난 기업들이 한국 경제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같은 기업들이 등장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와 같은 벤처기업들이 한국 증시에 상장했다는 소식은 좀처럼 들리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바이오벤처 암젠, 30년간 바이오 자이언츠 아성 유지

IT와 분야는 다르지만 바이오산업은 21세기 핵심성장 동력 사업으로 선진 주요국들은 시장을 점하기 위해 각축을 벌이고 있는 분야이다. 대표적인 바이오기업으로 미국의 암젠(Amgen)사가 있다. 암젠은 10여명의 과학자가 모여 80년대 초 세운 조그만 벤처회사로 출발해 세계최초 나스닥 상장 바이오기업이자 지금은 세계 최대의 바이오기업이다. 이 암젠사는 ‘적혈구를 늘려 빈혈을 치료한다’는 아이디어 하나로 바이오 업계의 거인으로 성장했다.

암젠이 개발한 EPO(Erythropoietin)는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신약으로 암젠의 성장을 견인한 효자상품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데 이러한 블록버스터급 신약을 하나 개발하려면 세계 최강 미국에서도 최소한 10여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만 그렇다는 얘기다. 초기 실험실 아이디어에서부터 임상 3상까지 모든 과정을 완료하려면 상상을 초월하는 연구개발비가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연구비가 필요한 신약을 만약 암젠이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개발하려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시대를 풍미했던 벤처기업들도 2~3년을 버티지 못하고 도산하는 한국 현실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업계에선 판단한다. 국내의 경우 LG생명과학이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2003년 미 FDA 최초 허가 신약 ‘팩티브’를 출시한 이래 신약개발이 속속 진행되고 있기는 하지만 대기업에 국한된 얘기일 뿐이다. 

설사 아이디어가 있더라고 그 아이디어를 세계적인 회사로 키우기 어려운 기업 내, 외적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암젠과 같은 블록버스터급 벤처회사가 한국사회에서 배출되기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이성규 객원기자 | henry95@daum.net

저작권자 2010.11.15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