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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발전 발목만 잡는 인터넷 규제의 덫

산업발전 발목만 잡는 인터넷 규제의 덫

 전병역 기자 junby@kyunghyang.com
 
게임위, 심의거부 구글에 접속차단 경고

시대와 동떨어진 인터넷 규제가 도마에 올랐다. 아이폰 도입과 최첨단 신기술이 속속 선보이고 있지만 정부 규제는 ‘유선 시대’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선거관리위원회의 트위터 선거운동 제한과 유튜브 동영상 본인 확인제에 이어 구글의 게임 사전 심의가 도화선이 됐다. 자칫 인터넷 사전검열로 중국 철수설이 나돌고 있는 ‘구글판 중국사태’가 우리나라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전문가들은 “과거 사전규제 중심의 정보기술(IT) 정책을 펴온 국내 법규가 기술 혁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게임물등급위원회는 11일 구글코리아에 국내 게임 심의를 지키지 않은 게임을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유통시키고 있어 사이트 접속을 차단하겠다고 경고했다.

게임위는 “해외 서버라도 국내에서 유통돼 내국인에게 제공되는 모든 게임은 관련법에 따라 게임위 등급 심사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구글은 게임위 심의를 받지 않은 4400여종 게임을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유통시키고 있다. 이 같은 경고를 구글보다 앞서 받은 애플은 국내 게임 심의제도에 반대하며 앱스토어에 ‘게임’이 아닌 ‘엔터테인먼트’ 항목으로 게임을 유통 중이다.

해외업체가 국내 규정을 무시하고 게임을 유통시킨 것은 엄연한 불법이다. 그러나 국내 인터넷·게임업계의 해묵은 규제를 현실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구글코리아 측은 “수많은 콘텐츠가 양산되는 인터넷에서의 사전 규제는 한계가 있다”며 “사후 규제로도 선정·사행성 게임을 걸러내는 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회에 자율규제를 적용한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다.

선관위가 지난해 9월 트위터 같은 단문 블로그에 대해 감시활동을 벌이겠다고 밝힌 것도 갈등을 불렀다. 심상정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헌법소원을 검토하고 있다. 트위터는 물론 국산 단문 블로그인 ‘미투데이’ ‘요즘’도 이 규정 때문에 타격을 받고 있다.

최근 구글의 유튜브 동영상을 스마트폰을 통해 올리는 것도 문제가 됐다. 본인 확인제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서버가 해외에 있어 규제 대상이 아니다’라는 해석을 내렸지만 비현실적인 규제라는 지적이 많다.

한 인터넷 업체 관계자는 “해외 사이트를 통해 얼마든지 댓글을 달 수 있는 현실을 외면한 꼴”이라며 “세계적인 표준에 뒤처진 부당한 규제를 지키면 국내 업체만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국내 규제 탓에 구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인 모토로이에 유튜브 동영상 올리기를 막았던 SK텔레콤은 역차별을 당했다.

최근 구글이 중국에서 인터넷 검열과 해킹 문제로 당국과 갈등을 빚어 철수를 준비하는 상황과 비슷하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해 11월 KT가 아이폰을 도입하는 과정에도 IT 정책이 도마에 올랐다. 정부는 한국형 무선인터넷 기술인 위피(wipi)를 국내에 파는 휴대폰에 무조건 얹도록 했다. 이를 거부한 아이폰은 국내 도입이 늦춰지다 지난해 4월에야 위피 의무화가 폐지된 뒤 국내에 들어왔다.

아이폰 출시 직전에는 지도검색 서비스에 대한 위치기반서비스(LBS) 관련 법 적용을 놓고 애플과 방통위가 충돌했다. 소비자들의 반발에 부딪힌 방통위는 결국 아이폰에 ‘예외’를 인정해야 했다.

정부가 이처럼 ‘폐쇄주의’로 기울었던 것은 삼성과 LG 같은 휴대폰 제조업체나 이동통신사를 보호하기 위한 시간벌기 성격이 컸다.

그러나 규제를 과감히 손질했더라면 국내 업체들이 지금처럼 고전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많다. 정부로선 국산 기술을 키울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스마트폰 발전을 더디게 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정부가 국내 기업을 키우려다가 거꾸로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꼴이 됐다”며 “비현실적인 규제는 소비자 혜택을 최우선시해 개방·혁신 측면에서 과감히 푸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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