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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김윤덕의 체크人] 이란 최고 요리 선생님 서너즈 미나이

[Why] [김윤덕의 체크人] 이란 최고 요리 선생님 서너즈 미나이

  • 입력 : 2010.10.02 03:27  / 수정 : 2010.10.02 10:30

"피자가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천만에 이란이 원조예요"

붉은 빛깔의 히잡을 두른 여성이 무대에 올랐다. 자신을 "테헤란에서 온 서너즈 미나이(Sanaz Minaie, 46)"라고 소개한 그녀는 '스타 셰프 갈라쇼'의 메뉴로 이란 전통음식인 페제냔(Fesenjan)과 타친(Tahcheen)을 선보였다.

으깬 호두에 물과 설탕을 섞어 걸쭉히 끓인 국물에 석류 페이스트와 사프란으로 양념한 닭가슴살을 넣어 다시 한 번 끓여내는 '페제냔'. '타친'은 플레인 요거트에 달걀, 사프란을 넣은 소스에 데친 쌀을 섞어 오븐에서 바삭한 질감으로 구워낸 쌀요리다.

'할랄푸드'라는 이름으로 이슬람 음식이 각광받는 터라 그 생경한 조리법을 보려고 객석의 이목이 집중됐다.

29일 ‘스타 셰프 갈라쇼’를 준비하고 있는 서너즈 미나이씨. 한국 방문이 처음인 그녀는 “미국 여행 때 한국인들을 많이 봤는데, 늘 함께 모여 다니면서 가족을 중시하는 모습이 이란 사람들과 비슷했다”고 말했다. 이날 붉은 색깔의 히잡을 두른 이유는 “유니폼 소맷단의 붉은 라인과 색상을 맞추기 위한 것”이라며, “평소 일할 때는 늘 벗어던진다”고 했다. / 이덕훈 기자 leedh@chosun.com
29일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2010 LG 디오스 광파오븐 글로벌 아마추어 요리대회'.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프랑스의 미슐랭 3스타 요리사 기 마르탱(Guy Martin), 한국의 에드워드 권 같은 요리사들 사이에서 서너즈 미나이는 무명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이슬람 음식의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이란에서 그녀는 독보적인 존재다. 20년 전 국영 TV에 자신의 요리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요리학원을 경영하는 셰프이며, 이란 최초의 요리잡지인 '서너즈 앤 서니아'를 창간했다. "대통령도 당신을 아느냐?"고 묻자 "국빈 초청 만찬을 나에게 부탁하셨던 걸 보면 알고 있지 않을까요?" 라며 웃었다. 인터뷰할 때는 히잡을 벗고 짧은 파마 머리를 거침없이 드러낸 미나이씨는 '피자'가 이탈리아가 아닌 이란의 음식이라고도 주장했다.

―이슬람 음식은 한국에서 여전히 생소한 편이다. 특징을 소개해달라.

"일본이나 이탈리아 음식에는 예측 가능한 어떤 느낌이 있다. 이란 음식은 그렇지 않다. 어떤 음식은 짜고, 어떤 음식은 시고, 어떤 음식은 달고 하는 식으로 맛의 차이가 선명하고 다양하다. 여러 향신료 덕택이다. 아라비안나이트에 등장하는 '산해진미'를 상상하면 된다."

"아라비안나이트의 산해진미처럼 이란 음식은 예측 불가능해
요리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맛있는 음식 맛보며 다녀라
발효·숙성시키는 김치 만들고 싶어"

―매일 먹는 식사가 산해진미는 아니지 않나?

"고기와 야채를 함께 넣고 약한 불에서 오랫동안 뭉근하게 끓인 스튜를 밥 위에 끼얹어 먹는 게 가장 일반적이다. 주된 식재료는 돼지고기를 제외한 육류와 콩류, 가지·양파 같은 야채류, 말린 매자나무 열매(barberry)·대추야자 같은 건과류다. 손님이 오면 통째 구운 새끼 양을 주로 접대하지만 닭고기, 오리고기, 쇠고기 요리도 흔하다."

서너즈 미나이씨가 선보인 ‘페제냔’. 샤프란과 석류 페이소스로 양념한 닭 또는 오리고기를 걸쭉한 호두 소스와 함께 오븐에 넣어 끓여낸 이슬람식 전통 스튜다.
―한국 음식도 맵고 짜고 달고 신맛이 음식에 따라 매우 분명한데.

"이란에서 드라마 '대장금'의 시청률이 90%로 치솟았을 만큼 인기가 높았던 걸 알고 있나. 그걸 보고 이란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한번 맛보고 싶어 안달했다. 나는 생선과 해물로 만든 한국 음식을 좋아한다. 김치처럼 생야채를 발효 숙성시키는 방법은 꼭 배워가고 싶다."

―'허용된 음식'이란 뜻의 '할랄푸드'가 뜨고 있지만 돼지고기, 술 등 금기가 많은 상황에서 음식문화가 발달하기는 힘든 것 아닌가.

"돼지고기 대신 양고기나 쇠고기를 써도 맛과 영양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는데 무엇이 문제인가. 해로움이 더 많은 술 대신 무알코올 음료를 사용해도 무궁무진한 맛과 풍미를 낼 수 있다. 그리고 할랄푸드는 '금기'에 방점을 두는 게 아니다. 음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의 신선도, 건강성을 강조하는 일종의 철학이다. 쇠고기라도 자연사한 고기나 때려잡은 고기, 다른 동물이 먹다 남긴 고기는 사용할 수 없다. 알라의 이름으로 도축해 피를 모두 제거한 '할랄 미트'만 쓰라는 것은 순수하고 정결하며 도덕적인 식재료만이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이다."

―그럼 당신은 한 번도 돼지고기와 술을 입에 대지 않았다는 뜻인가?

"그런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 다만 코란에는 '고의가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먹을 경우에는 죄악이 아니다'고 적혀 있다."

―테헤란 국립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는데, 왜 요리사가 됐나.

"요리 잘하는 어머니 미각과 취향을 8남매 중 내가 물려받았다. 스무 살 때 파리에서 열린 요리대회에 나가 1등 상을 받았다. 닭의 형태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뼈를 다 발라낸 뒤 그 안에 각종 야채를 넣어 구워낸 요리였다."

―한국 할머니들 중엔 손이 작고 손바닥이 도톰해야 요리를 잘한다고 말한다. 당신 생각은 어떤가.

"우리 큰딸이 스물일곱 살인데 결혼 전까지 요리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나를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는데 정말 맛있어서 깜짝 놀랐다. '좋은 음식을 먹어본 사람이 좋은 맛을 낼 줄 안다'는 말이 이란에 있다.(웃음)"

이슬람 쌀 요리 ‘타친’. 오븐에 구워 바삭한 질감에 미트 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아주 고소하다. 밥 위에 말린 매자나무 열매(barberry)를 뿌렸다.
―이란은 여성 인권이 취약한 것으로 바깥세상에 알려져 있다. 히잡에 차도르를 두르고 집안에 갇혀 있는 그림이랄까? 한데 당신은 그런 삶과 거리가 먼 듯하다. 상류층이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이란에서는 90% 이상의 여성들이 자기 일을 가지고 있다. 교육 수준도 매우 높다. 둘째 딸이 두바이에서 자동차를 운전하는 걸 보고 그곳 사람이 '여기는 자유가 있으니 좋지?' 하고 묻더란다. 그래서 '이란에서도 젊은 여성들은 남성들과 똑같이 자동차를 운전한다'고 말해줬단다. 몸에 딱 달라붙는 바지에 히잡만 살짝 걸치고 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이 태반이다."

―그럼 '돌팔매질 처형'으로 국제적인 논란을 야기했던 여성(사키네흐 아슈티아니)의 인권은 무엇인가.

"물론 매우 잔혹한 방법이라 나 또한 찬성하진 않는다. 다만 문화적 차이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나 생각한다. 어쨌든 남편을 죽인 여성이다. 돌팔매질 처형은 사형의 여러 방법 중 하나일 뿐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음식 얘기가 아니라 미안하지만, '이슬람' 하면 전쟁, 테러, 성차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다.

"유목민 혈통을 지닌 이란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손님 접대에 극진하다. 그게 왜 이렇게 왜곡되고 무서운 편견으로 바뀌었는지 모르지만, 대다수의 이란 사람들은 외국인 손님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맞이한다.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괴롭히지 않는다. 이슬람이든 기독교든, 신앙이란 바른 삶을 의미한다. 다른 종교를 존중해야 한다는 걸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슬람 음식에 대한 백과사전을 꽤 오래전부터 집필하고 있다고 들었다.

"이슬람 요리에 대한 설명뿐 아니라 동서양의 길목에서 발전한 이슬람 음식이 세계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 그 역사에 대해서도 쓴다. 피자가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믿는가? 천만에. 이란 음식이다. 페르시아 제국 시절 이란 병사들이 동그란 무쇠방패 위에 밀가루 반죽을 얹고 그 위에 치즈와 대추야자를 뿌려 구워먹는 것을, 전쟁하러 온 로마군인들이 보고 배워간 거다."

―커리어 쌓느라 바빠 요리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는 여성들도 많다. 취미를 붙이게 할 비법을 알고 있을 것 같다.

"그들이 먹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요리하기 싫으면 하지 마라. 대신 요리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먹어라. 그러면 흥미가 생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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