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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CEO

[창간기획]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벤처를 말하다

[창간기획]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벤처를 말하다
지면일자 2010.09.17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대한민국 벤처 성공신화의 첫손에 꼽히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어게인 벤처`로 불릴 정도로 벤처 창업이 되살아나고 있는 요즘 그는 어떤 생각을 할까. 특히 벤처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서 후배 벤처인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지 궁금했다. 10년 넘게 기업을 경영해온 경험과 벤처 성공신화를 쓴 김 사장의 철학은 후배 벤처인들에게 공부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내면의 동기로 시작해 열심히 공부하면서, 끝까지 해야 합니다.”

김택진 사장은 후배 벤처기업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그리고 자신 역시 이 말을 실천하는 중이라고 했다. 외부에서 보면 대기업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김 사장은 여전히 벤처기업의 길을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벤처로 처음 출발했을 때와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말이다.

김 사장은 “엔씨소프트는 지금도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며 “아직도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말 원하는 수준의 게임이 있고,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은데 지금은 여전히 배워가는 과정”이라며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게임을 완성할 때까지 가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엔씨소프트 성공이 `운` 덕분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은 “우리는 PC방이라는 시장을 만들지 않았고, 초고속인터넷망을 깔지도 않았다”며 “우리가 현재의 위치까지 오기에는 이러한 요소들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이 말하는 운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요행과는 다른 의미다. 그는 사람들이 운을 잘못 해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사장은 “운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생각하면 자만하지 않고, 가진 것을 누리려고 하지도 않게 된다”며 “내 힘으로 얻은 게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들 위에서 내가 혜택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겸손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 “반대로 어려울 때도 운이 지금 어렵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내가 멍청하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많은 상황이 나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엔씨소프트의 첫 출발

지금이야 성공한 기업을 이뤘지만 처음에는 어떤 생각으로 시작하게 됐을지 궁금했다. 특히 안정적인 대기업을 박차고 나올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었는지 물어봤다.

-창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

▲처음 창업은 대학교 때 이미 해봤어요. 대학생 때 고민이 공학도로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였어요. 당시 한글 입력이 전혀 안 되던 컴퓨터 이용 환경을 바꾸기 위해 `한메 타자`를 개발하고, `한글`을 공동 개발한 것 등이 시작이었죠.

-이후 대기업인 현대전자에 들어갔는데, 안정적인 조직을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새로운 동기 부여가 있었습니다. 당시 모든 사람이 인터넷을 정보망으로만 보고, 엔터테인먼트로 보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재밌는 일이 생길 거라고 기대했고, 더 재밌는 미래에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다짐했죠. 또 한글을 만들면서 이루지 못한 꿈인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보자는 바람도 한 이유였고요.

-창업 초기 어려움은 어떻게 극복했나.

▲누구나 어려움을 맞이합니다. 그걸 버티려면 내면동기로 시작해야 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내면동기가 있으면 어려움을 버틸 수 있어요. 엔씨의 기업이념이기도 한 `옳은 일을 하자(Do the right thing)`가 제1의 철학이에요.

하지만 돈이나 명예처럼 외적 동기로 시작하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 길을 오래 못 걸어요. 성공하면 돈 벌었으니 은퇴하죠. 또는 교수나 벤처캐피털 등 다른 길로 가요.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는 조금만 어려움이 닥치면 포기합니다. 외적 동기에 의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에요. 끈질기게 버티고 이겨나갈 투철함이 없어지는 셈이죠.

◇벤처기업을 경영하면서

벤처기업을 창업하고 초기 어려움을 극복한다고 해도 기업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는 쉽지 않다. 성장을 위해서 벤처 기업인이 가져야할 자세는 무엇일까.

-기업 발전을 위해 중요한 것으로 아이디어와 혁신 등이 있는데, 후배 벤처기업인들이 어떤 경로로 얻을 수 있는지.

▲제대로 공부해야 합니다. 10여년 전의 벤처 환경과 지금은 많이 달라졌기 때문에 아이디어와 혁신을 위한 공부가 필수라고 봅니다.

미국의 사례를 보면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과거 벤처기업은 대학 중퇴자들이 세웠어요. 대학에서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이죠. 지금은 달라졌어요. 박사과정의 연구를 하다 설립하게 된 구글을 비롯해 페이스북, 징가 등 석 · 박사 과정에서 벤처가 만들어집니다.

과거에 정보통신이나 전자산업의 태동기였다면, 산업이 성숙한 지금은 학문적인 토대를 요구하고 있어요. 학문적 토대 위에서 변화를 모색해야지 단순히 재치싸움으로 창업하면 망하기 쉬워요.

-청년 창업가는 어디서 공부해야 하는지.

▲현재 국내 대학이 가르칠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벤처의 미래가 약해지는 것은 대학 교육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공부를 대학에서만 하는 건 아니죠. 회사에서도 할 수 있어요. 벤처는 그 자체가 엄청난 학습 조직입니다.

◇벤처인이 가져야할 덕목은

김 사장이 벤처 창업 후배들에게 강조하는 말은 `꾸준하라`였다. 조심스럽게 은퇴에 대한 생각을 묻자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목표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퇴 시기는.

▲생각하지 않고 있어요. 좋아하는 인재상이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꾸준히 하는 사람입니다.

`아웃라이어(Outliers)`라는 책에 `어떤 분야든지 정통하려면 1만시간 정도는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 나와요. 회사나 삶도 마찬가지여서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겪으면서 가야 하죠. 상황이 어려울 때나 좋을 때나 꾸준히 해야지, 중간에 사라지면 의미가 없어요. 잠깐 성공했다고, 조금 어려워졌다고 가버리면 아무것도 쌓이지 않습니다.

-벤처기업인, 특히 리더의 덕목을 꼽는다면.

▲희생입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벤처사업을 하기 시작하면, 모든 사람이 수단으로 보여요. 이것은 잘못된 것이죠. 심지어 같이하는 사람까지 목적으로 보일 수 있어요. 같은 조직에서 같이 일하면서 이 사람이 훨씬 훌륭해지고, 더 행복해지게 노력해서 같이 가야지만 오래갈 수 있는 회사가 됩니다. 같이하는 사람 자체가 목적이 돼야 합니다.

◆김택진 사장의 좌우명

최근까지는 좌우명 없이 살았다. 하지만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 획득 후 말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는 말이 평소 생각하던 것과 일치해 좌우명으로 삼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말은 원래 유태인의 지혜서 `미드라쉬`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다.

앞서 김 사장이 말한 엔씨소프트의 성공 대부분은 운 덕분이라는 말도 이 말과 함께 들으면 이해가 된다. 지금 누리는 평안함이 곧 지나갈 테니 준비하자는 것이고, 어려움을 겪더라도 역시 지나갈 테니 열심히 해나가자는 생각이다.

◆엔씨소프트는

지난 1997년 김 사장이 13명의 직원과 함께 설립했다. 소프트웨어 개발로 시작해서 온라인게임 `리니지`가 대히트를 하며 게임에 주력했다. 이후 리니지2, 아이온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한국을 넘어 세계 게임산업을 이끌어가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기업가치도 급격히 상승해 최근에는 시가총액 5조원을 돌파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전체 기업 중에서도 50위 안에 든다.

◆김택진 사장 프로필

1967년 서울 출생

1989년 서울대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학사

1989년 한글 워드프로세서 `한글` 공동 개발

1989년 한메소프트 창립(한메한글, 한메타자교사 개발)

1991년 서울대 공과대학 전자공학과 석사

1991〃1992년 현대전자 보스턴 R&D센터 파견 근무

1995〃1996년 현대전자, 국내 최초 인터넷 온라인 서비스 아미넷(現 신비로) 개발팀장

1997년 서울대 공과대학 컴퓨터공학과 박사과정 중퇴

1997년 엔씨소프트 창립

현재 엔씨소프트 대표이사(CEO), 대통령직속 제2기 미래기획위원회 위원

인터뷰=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정리=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