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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T 시론] IT생태계 이끄는 `개방과 파트너십`

[DT 시론] IT생태계 이끄는 `개방과 파트너십`


장석권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ㆍ정보통신정책학회장

입력: 2010-03-04 21:03

"저 나가서 살께요." 16년을 품속에서 데리고 살던, 고 2짜리 막내가 툭 던진 말이었다. 늘 어리다고만 생각했던 부모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날벼락같은 소리였다. 걱정도 걱정이지만, 배신감이 먼저 솟구쳤다. "내가 너를 이제까지 어떻게 키웠는데, 그딴 소리를 해." 입속에서 맴돌았지만, 차마 뱉지는 못했다.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모바일월드 콩그레스 (MWC)는 IT산업전반에 커다란 전환의 계기를 마련했다. 언론의 보도는 대개 두 가지 키워드에 주목했다. 플랫폼과 생태계. 이들은 아이폰의 국내상륙을 계기로 대중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이후 미디어의 핵심 소재로 부상했다.

그런데 MWC 보도중 내 관심을 끈 것은 이들보다는, `Wholesale App Community', 일명 와크(WAC)였다. 와크는 KT, AT&T, NTT 도코모, 오렌지 등 세계 24개 주요 통신사들이 연합하여 함께 구축하겠다는 글로벌 앱스토어이다. 이 시도가 놀라운 것은 와크야말로 수직계열구조에 익숙한 전통적인 통신기업에게는 `자기부정', `자기타파'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터넷 패러다임이 보편화되기 전만 해도, 수직 계열화는 높은 가치사슬 통제력을 바탕으로, 낮은 재고수준 유지, 생산효율 극대화, 품질관리 고도화를 이루는 핵심전략이었다. 그 전형적인 예가 도요타(Toyota)의 JIT (Just-In-Time)이다. JIT는 수직 계열화된 가치사슬상에서 각종 생산정보를 공유하고 품질검사의 중복을 제거함으로써, 재고감소, 생산비절감, 생산속도 증대를 실현해 왔다.

도요타가 지금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게 된 것은 엄격한 수직계열 구조를 부분적으로 개방하면서부터이다. 부품의 현지조달을 시도하면서, 품질관리상의 빈틈이 나타난 것이다. 아마 예측컨대, 도요타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직 계열화된 부품조달 시스템의 품질통제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치사슬 개방의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와크를 정보통신진영은 왜 추구하고자 하는 것일까? 그 해답은 바로 IT산업과 자동차산업간 진화국면의 차이,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자동차산업이 엄격한 통제하에 추호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기술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오늘날의 IT산업은 자유로운 상상력기반의 예술적 가치를 더욱 갈구한다.

밴쿠버 올림픽에서 김연아의 연기가 기술력 바탕위에 자유롭게 펼쳐진 예술적 요소에 의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것처럼, 이제 IT 상품과 서비스의 가치는 기술보다는 디자인, 느낌, 공감, 경험이라는 감각적이고 예술적인 요소에 의해 극대화된다. 정보통신산업이 와크와 같은 개방형 파트너십을 집단적으로 수용하기로 한 것은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선택이라기보다는 필연이다.

그러나 한때 막강한 산업지배력을 행사하던 대형사업자의 입장에서 와크에의 동참은 결코 쉬운 의사결정은 아니다. 애지중지하던 수직계열 공급사와의 배타적 거래를 중단해야 하고, 독립을 외치는 공급사를 참고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보살펴 준 고마움을 내팽개치고 떠나려는 공급자에 대해 배신감도 들 것이고, 과연 나를 떠나 홀로 설 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앞 설 것이다.


자주독립을 외친 막내딸은 힘든 1년 반의 독자생활을 마치고, 자신이 원하는 대학, 학과에 진학하는데 성공했다. 이미 대학 3학년에 접어든 그 애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은 정서적으로 한껏 성숙한 대학생활을 보내고 있다. 그때의 배신감과 걱정은 사라진지 오래고, 그 자리를 지금은 뿌듯함과 대견함이 메우고 있다.전통적인 의존관계를 탈피하고 `홀로 서기'를 외친 내 막내딸은 이번에 세계 5위의 위업을 달성한 동계올림픽 선수들과 같은 V세대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계 IT생태계는 지금 세대교체중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신세대는 자유와 홀로서기를 요구하고 있다. 구세대가 할 일은 그 길을 활짝 열어주고 담담히 지켜보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