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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김연아 콜리시엄을 건립하자” … 김종필 전 총리 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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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콜리시엄을 건립하자” … 김종필 전 총리 기고 [중앙일보]

2010.03.03 02:23 입력 / 2010.03.03 10:29 수정

“가난 벗어나려 했던 1960, 70년대 민족 DNA 세계를 놀라게 한 쾌속세대 저력으로 폭발”

김종필(JP·84·사진) 전 국무총리는 밴쿠버의 활약상을 놓치지 않았다. TV를 빠뜨리지 않고 지켜봤다. 그는 자택에서 요양 중이다. JP에게 김연아의 연기는 “미울 정도로 아름답고 대담한 프리마돈나의 빙상 미학”이었다. JP는 젊은 시절 독특한 예술적 감수성을 표출했다. 그는 밴쿠버 감격을 마음속에만 묻어두지 않았다. 재활치료를 계속하고 크게 호전됐지만 원고를 직접 쓰기엔 불편하다. 측근을 불러 구술했다. 다시 듣고 다듬었다. 그리고 본지에 원고를 보내왔다. JP의 언론사 기고는 1980년대 이래 처음이다. 그는 2008년 12월 뇌경색으로 3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2010년 2월은 우리 5000만 국민에게 참으로 행복한 달이었다. 감격의 달이었다. 밴쿠버 겨울올림픽에서 14개의 메달을 땄다. 세계 5위, 아시아 1위다. 겨울올림픽 참가 42년 만에 한국의 장한 젊은이들이 쓴 새로운 역사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하면서 그동안 피나는 훈련과 투혼으로 역경을 이겨낸 우리 선수들에게 찬사와 격려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의 성취를 이루기까지 희생으로 뒷바라지해 준 가족과 코치들에게도 감사와 위로를 드린다.

이제 대한민국은 빙상 경기의 변방이 아니라 그 중심에 우뚝 섰다. 우리 선수들의 금빛 질주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아시아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3종목을 석권하는 ‘빙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나라는 대한민국이었다. 이승훈·모태범·이상화 선수의 다이내믹한 역주는 ‘스피드 코리아’ ‘미러클(miracle·기적) 코리아’를 세계인의 뇌리에 생생하게 심어줬다. 이정수 선수의 날렵한 경기 모습은 묵은 체증을 시원하게 뚫어주기에 충분했다. 최선을 다한 이호석·성시백·이은별·박승희·곽윤기·김성일 선수의 메달 또한 너무나 값진 땀과 노력의 결정체였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얼음판과 눈밭 위에서 있는 힘을 다한 국가대표 한 사람 한 사람의 분투에도 큰 박수를 보낸다.

김연아의 쾌거는 전율 그 자체였다. 종합점수 228.56이라는 숫자가 TV 화면에 떴을 때 우리는 눈을 의심치 않을 수 없었고, 세계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외신들은 앞다퉈 ‘밴쿠버의 전설’을 타전하며 ‘피겨 여신(女神)’을 칭찬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단어로 김연아의 경기를 평가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빙상 미학”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렸다. 김연아 선수, 이 미울 정도로 아름답고 대담한 프리마돈나는 대한민국의 아이콘이 되었다. 나아가 글로벌 브랜드가 되었다. 여자 피겨스케이팅 사상 처음으로 ‘그랜드슬램’을 이룩하고 전무후무한 점수를 기록한 김연아의 성공은 우리 모두의 자랑이요, 긍지가 아닐 수 없다.

밴쿠버 올림픽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확인하고 또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의무감을 느낀다. 먼저, 우리 젊은 선수들이 세계 강자들에게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겨루어 마음껏 기량을 발휘한 점이다. ‘쾌속(快速)세대의 약진’이라고 할까. 그들은 선배들이 쌓은 국부(國富)의 터전 위에서 겨울올림픽이라는 선진국 스포츠의 대열에 바야흐로 합류한 것이다. 또 하나는 자신감과 잠재력이다. 이제 우리에게 뛰어넘지 못할 벽은 없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모진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던 1960∼70년대 정신이었지만 그로부터 생성된 민족의 DNA는 어딜 가지 않았다. 밴쿠버 전사들의 폭발적 에너지가 그 DNA의 저력이다. 밴쿠버 쾌거는 대한민국 브랜드와 국격을 크게 높였고 국민에게 희망과 자존심을 심어주었다. 경제적 파급효과가 수천억, 수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문가의 계산도 나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 한구석의 ‘냄비’라는 근성 때문에 도약의 호기를 놓쳐 버리는 경우를 흔히 본다. 메달 획득이라는 일시적 흥분을 일과성으로 묻어버리는 경우를 본다. 밴쿠버 열기를 이어가야 한다. 모처럼 일군 ‘빙상 강국’의 위상을 견지하고 더욱 높여나가기 위해 빙상 투자에 힘을 쏟아 계속 꿈나무를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한 첫째 과제는 국제 규모의 빙상경기장을 조속히 건립하는 일이다. 외국인의 인지도나 친밀감을 고려해 ‘김연아 콜리시엄’이라고 이름을 붙이면 좋을 것이다. 현재 국내 빙상경기장은 26개에 불과하고 국제경기를 치를 수 있는 시설은 두 곳뿐이다. 피겨선수들이 연습할 수 있는 전용훈련장은 한 곳도 없다고 한다. 이런 불리한 여건에서 세계 5위의 빙상 강국으로 뛰어오른 것은 실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김연아 콜리시엄은 김연아의 위업을 알리는 것은 물론이고 후진 양성의 요람이 되어야 한다. 모든 빙상 종목을 아우르는 훈련장이자 경기장이어야 한다. 빙상의 대전당이 세워질 때가 바로 지금이다.

국제적 대규모 빙상경기장을 신축하자면 적지 않은 돈이 들 것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가능하다면 국책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국가 재정상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 대안으로 대기업들이 협력해 ‘김연아 콜리시엄’을 건립할 것을 제안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10대 대기업이 중심이 되어 뜻을 모으길 기대한다. 이 빙상경기장의 건립은 밴쿠버에서 거둔 경이적 성적과 더불어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도 큰 플러스 효과를 가져오리라 믿는다.

김종필 전 총리
사진=박보균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