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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명사

MB의 `공정한 사회` 는 토론광장으로의 초대

MB의 `공정한 사회` 는 토론광장으로의 초대
`정의란…` 저자 샌델에게 `공정` 을 물었더니
"우사인 볼트와 동일선상에서 달리기 과연 공정한가"
"극단적 우열반 교육도 평준화 교육도 공정하지 않다"
기사입력 2010.08.20 15:29:32 | 최종수정 2010.08.20 16:09:29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출발선상에서 기회가 균등하게 주어진다고 해서 공정한 사회가 되진 않습니다. 달리기 경주를 하면서 세계 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와 같이 출발하라고 하면 그게 공정할까요?"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는 20일 매일경제와 단독 인터뷰를 갖고 우리 모두의 관심사로 부상한 공정한 사회 논의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소상히 밝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제시한 공정한 사회 구상은 논의의 끝이 아니라 사회적 토론에 대한 초대"라며 "토론의 시작점으로서 이 대통령의 지적에 대해 공감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란 출발과 과정에서 기회를 평등하게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지는 사회라고 했다. 이 정의에 대해 동의하나?

▶그 정의가 `공정함(fairness)`에 대해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는 의견이다. 그러나 실생활에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는 아직 의문이다. 달리기 경주를 예로 들어보자. 모든 사람에게 경주에 참여할 기회를 동등하게 주는 것만으로 공정함이 달성될까? 내가 하루 20시간씩 연습을 한다고 해도 세계 달리기 신기록 보유자인 우사인 볼트만큼 빨리 달릴 순 없을 것이다. 그 결과는 뻔하다. 하지만 `노력에 대해 보상하는 것이 공정한 사회다`라고 얘기한다면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볼트여야 할까, 아니면 내가 돼야 할까? 이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에 대한 개념을 제시한 건 아주 좋은 시작이 될 것이다. `공정한 기회`라는 것이 모두를 같은 시작점에 두는 것인지, 아니면 각자가 가진 재능과 배경, 문화적ㆍ신체적 차이를 고려하는 것인가의 질문은 여전히 남는다. 하지만 결국 `공정한 사회`라는 것은 공공의 토론을 거쳐야만 하는 질문이고, 그 토론의 시작점으로서 이 대통령의 시도는 적절하다.

-그럼 이상적인 공정한 사회라는 건 없는건가?

▶정의와 공정함이라는 것은 결국 이상이다. 모두에게 그들에게 합당한 것을 주는 게 공정이고 정의다. 그러나 거기서 진짜 문제가 대두된다. 즉 `누가 무엇을 받을 자격이 있는가`를 정할 때 일단 그 `좋은 것`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는 정의하기에 따라 다르다. 공정한 사회의 의미에 대해 토의해야 하는 이유는, 동등한 기회의 제공이라는 건 단지 그 아이디어의 시작이지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대답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이 공정한 사회에 대해 얘기한 의도는 `공정함이 무엇이고 그것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공공의 토의에 국민을 초대하기 위한 것인 것 같다.

-그렇다면 미국은 상대적으로 공정한 사회인가?

▶세상 어떤 사회도 완벽하게 정의롭지는 않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노예제도가 사라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인종차별 문제가 남아 있다. 점점 커지는 빈부격차는 `경제적 정의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을 남긴다.

-한국에서도 빈부격차, 양극화 문제에 대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사회는 어떻게 해법을 찾아가야 하나?

▶교육과 직업훈련에서 의미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도 경쟁에 참여해 좋은 직업을 가질 수 있게끔 만들어 줘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훌륭한 제도도 때로는 심각한 경제적 불평등을 낳는다. `우사인 볼트와의 달리기 시합` 비유에서와 마찬가지다. 아무리 교육과 직업훈련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평범한 사람이 달리기로 우사인 볼트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 두 번째 해법인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비록 경주에서 이기지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 문제를 좀 더 얘기해보자. 잘하는 아이나 못하는 아이나 다 한군데로 몰아넣는 평준화가 공정한가. 아니면 수준별 차별화 교육이 더 공정한가.

▶내가 다닌 공립고등학교는 우열반 시스템을 갖고 있었다. 체육수업을 제외하고는 늘 능력이 비슷한 학생들과만 만날 수 있었다. 열반에 있는 학생들과는 교류 기회가 없었다. 수학이나 과학 등은 좀 다르겠지만, 인문학 교육에서는 많은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극단적인 우열반 교육으로는 공교육의 목적 중 하나인 시민의식, 공동체생활 등은 가르칠 수 없다. 열반에 한번 배치되면 더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줄어든다. 그러나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경우에는 낙오된 학생들을 배려하기 어렵고 우수한 학생들이 흥미를 잃기 쉽다. 우열반을 운영하기는 하지만 우반보다 열반에 더 많은 선생님이 배정된다. 배우는 속도가 느린 학생들에게 교사들이 더 많은 노력을 쏟을 수 있도록 배려한 거다.

-승자독식 현상을 완화하기 위해 분배를 강조하는 게 샌델 교수의 입장이다. 하지만 차별적 보상이 따르지 않으면 누가 열심히 할 것인가.

▶인센티브 제공이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한다. 다만 인센티브나 보너스, 더 높은 연봉이 결코 그가 도덕적으로 우수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 중요하다. 우리는 인센티브를 이용해 공리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모든 시스템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균형 문제도 중요하다. 월스트리트에서 금융회사 임직원들이 받는 거액의 보너스가 도덕적으로 공정하다고 볼 수 있나.

-공동체 구성원들이 대부분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는 사회의 미래는?

▶그런 사회에서는 민주주의가 성공할 수 없다. 사람들이 사회에 대해 공정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면 더 이상 그 사회의 응집력, 결속력을 유지해 나가기 힘들어진다. 세상 그 어떤 사회도 완벽하게 정의로울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는 비교적 정의로운 편이야`라고 구성원들이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이근우 기자 / 정아영 기자 / 사진 = 박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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