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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이슈와 전망] 디지털 미디어와 사회적 책임

[이슈와 전망] 디지털 미디어와 사회적 책임

김국진 미디어미래연구소장

세계에서 가장 발행부수가 많았던 간행물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성경이라고 답하겠지만, 경이적인 기록의 주인공은 디지털시대 이전의 TV Guide였다. 북미에서 발행되던 TV Guide가 최고의 발행부수 자랑할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TV의 보편적인 보급과 TV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의존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TV Guide가 즐겨 실시한 `100만달러를 준다면, TV를 포기할 수 있나?'의 서베이 결과는 TV가 얼마나 우리들의 생활에 중요한 존재가 되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런 TV에 대해서 미국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TV없는 세상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TV를 하루 3시간 보는 사람이 1시간 미만을 보는 사람에 비해 비만도가 2배라던가, 일주일에 자녀와는 고작 38분 대화를 하면서 TV시청에는 31시간을 쓰고 있다는 자성적 지적, 어릴 때 TV시청이 아동기 ADHD 증후와 무관치 않다는 우려나, TV폭력시청이 향후 삶에 있어서 공격성향을 가장 잘 나타내는 예측요소가 된다는 장기간의 연구결과 등이 인용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미국에서 평균 TV시청시간은 하루 4시간 30분이 넘고, 우리나라도 일일 평균 200분 정도의 시청시간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TV에 대해서 특히 문제시되었던 것은 폭력성과 중독성이었다. 1968년 미국 존슨 대통령은 `폭력발생원인예방위원회'를 출범시켰고, 해당 위원회는 TV폭력영향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다. 결국 미국의회는 TV폭력이 어린이 태도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보건교육복지부로 하여금 수행하도록 하였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TV Guide의 발행인인 애넌버그(Annenberg)에 의해 미디어연구의 양대산맥이라고 할수 있는 펜실베이니아대 애넌버그스쿨과 USC 애넌버그스쿨이 설립되었다. 정부와 사업자의 노력이 같이 된 십수년의 연구성과는 소위 문화계발효과이론(cultivation effect theory) 등으로 정립되었다. 결국 TV를 시청하면, 중장기적으로 수용자들은 TV 픽션과 뉴스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현실에 대해 획일적이며 매우 선택적인 관점을 점차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TV가 단순히 세상의 창(窓)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행동규범과 실제 삶의 상황에 대한 신념을 알려주는 일관된 상징적인 환경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들은 왜 TV상의 폭력이나 음란에 대해 규제하고, 그 동안 방송에 대해서 엄격한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오늘날 미국에서나 국내에서나 이미 인터넷의 사용시간은 TV시청시간과 유사하다. 디지털세대는 모바일폰을 손에 들고 살며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행동양식을 학습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디지털 미디어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여전히 소극적이다.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중독에도 대응해야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규범과 인지지도(cognitive map)를 형성하는데 미치는 디지털 미디어와 디지털 콘텐츠의 영향을 읽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과 사업자 차원에서 이제는 디지털 미디어의 인지적, 사회 문화적 영향에 대한 연구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제대로 디지털 미디어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산업정책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 사회ㆍ문화적으로나 정치ㆍ경제적으로 디지털 민주주의를 구현해야 할 디지털 미디어가 단순 기술차원을 넘어 하나의 시스템으로 자리 잡는 단계로 발전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