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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한국'…국적 불명의 거리, 인사동

무늬만 '한국'…국적 불명의 거리, 인사동

노컷뉴스 | 입력 2010.03.01 09:33 |

[노컷뉴스 신경은 대학생 인턴기자]

세계적인 여행 잡지 론리 플래닛(Lonely Planet)에 소개된 인사동은 '한국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거리'다. 그러나 전통문화 1번지 인사동에는 '한국의 전통'이 없다. 인사동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잡다한 전통들만 넘쳐나고 있다. 한국 사람들조차 해외여행에서 구입하지 못한 기념품을 사기 위해 인사동을 찾는다. 이미 인사동은 한국의 문화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라 국적 불명의 문화 상품을 파는 곳이 됐다.

◆ 인사동 전통거리에는 '한국의 전통이 없다'
인사동의 한 기념품 가게, 기모노를 입은 일본 인형이 팔리고 있다. 중국 청나라 사신 도자기 인형과 상아 조각도 나란히 줄을 서 있다. 진열되어 있는 각종 불상들 역시 인도네시아와 중국, 일본의 색채가 짙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비너스 목각 인형이 달마상 옆에 버젓이 놓여 있고, 아프리카의 전통 탈은 입구에서 큰 입을 드러내고 웃고 있다. 각국에서 들여온 기념품들이 비좁은 가게 안을 가득 채우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이 기념품들의 국적을 분간해 낼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영국에서 온 제임스(38)씨는 "인사동에 있으니 모두 한국기념품으로 생각 한다"며 "한국의 것과 다른 나라 것을 구분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인사동을 전통의 거리로 기억하고 있는 한국인들도 고유의 색채를 잃은 인사동에 쓴 소리를 남겼다. 기하영(24)씨는 "최근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전통 기념품을 선물하기 위해 인사동을 찾았다가 크게 실망했다"며 "선물할 만한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그나마 인사동 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이 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 전통을 판다는 사명감 뒷전 … 경쟁 치열한 현실
전통을 판다는 남다른 사명감은 퇴색된 지 오래다.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굳이 현지에서 기념품을 사려고 해도 원하는 물건을 찾기도 어렵고 비싸니까 인사동을 찾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외국상품을 한국 전통상품인 것처럼 팔아도 되냐고 묻자 "어차피 같은 동양권 기념품이라 괜찮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아버지가 15년 동안 꾸려온 가게를 이어오고 있는 김민호(32)씨는 "판매 경쟁이 치열한 인사동 거리에서 전통 기념품만 고집하기란 쉽지 않다"고 고백했다. 그는 "오히려 한국 사람들이 와서 인도네시아나 아프리카 공예품을 찾는다"며 "예전에는 몇 가게 없었는데 요즘에는 보편화 된 실정"이라며 하소연했다.

◆ '메이드 인 차이나' 꼬리표 불은 반쪽짜리 인사동
인근 한 기념품점에서는 한국에서 만든 물건만 판다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가게 구석에 진시황 병마 용갱이 가득 차 있었다. 게다가 진열장에 놓인 인형에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기념품 가게 상인은 "우리나라에서 만들면 돈이 안 되니 어쩔 수 없이 중국에서 만들어 들여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동에 중국산 제품이 넘쳐나게 된 이유가 있다. 인사동이 문화 보존 지구로 지정되자 부동산 가격이 상승했다. 여기에 높은 인건비까지 가세해 인사동 상인들의 목을 조여 왔다. 이에 따라 OEM(주문자상표부착 방식)상품이 인사동에 들어온 것이다. 최근에는 동남아에서 수입된 제품도 많아졌다. 인사동에서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한상진(40)씨는 "판매 경쟁이 치열해 다른 가게에서 파는 저가 중국제품을 안 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인사동을 찾은 외국인들은 불편한 기색을 나타냈다. 인사동을 찾은 키야(28)씨는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하면 질이 떨어지고 싸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메이드 인 코리아 물건을 사려고 한국에 오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종로구청 문화공보과 담당자는 "국산 공예품을 팔도록 설득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비싼 상가 임대료와 단속할 수 있는 법적 근거조항이 없는 등 현실적인 문제점이 많다는 것.

◆ 우리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전통 기념품 판매점 '아리랑'은 10년 째 인사동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판매하는 제품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것을 고집하는 편이다. 점원 서미영(38)씨는 "장사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OEM상품의 경우 원가가 싸기 때문에 이득 보는 면이 있겠지만 인사동은 한국 전통의 거리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그녀는 "가격이 싼 제품을 찾는 고객도 있지만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에 가치를 두는 고객들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 인사동은 걷고 싶은 거리로 다시 태어났다. '남인사마당'에는 전통문양의 야외무대가 설치됐고 공중편의시설도 확대됐다. 시민들이 찾고 싶은 인사동을 만드는 동시에 전통색을 더욱 강화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단순히 눈에 보이는 변화보다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색깔 없는 전통이 아니라 살아있는 우리 문화를 올바로 소개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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