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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의 국보순례] [48] '백자 넥타이 술병'

[유홍준의 국보순례] [48] '백자 넥타이 술병'

  • 유홍준 명지대교수·미술사

 

입력 : 2010.02.24 22:21 / 수정 : 2010.02.25 02:05

백자끈무늬병
조선 백자에서 병(甁)은 기본적으로 술병이다. 제주병(祭酒甁)은 엄숙한 분위기를 위해 순백자를 사용했지만 연회용 술병에는 술맛을 돋우기 위해 갖가지 무늬를 그려 넣었다.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과 십장생 그림이 단연 많다. 그러나 아마도 사대부들이 사용했을 술병에는 매화나 난초가 품위 있게 그려져 있고, 청초한 가을 풀꽃(秋草紋)을 아주 운치 있게 그려 넣은 멋쟁이도 있다. 그림 대신 목숨 수(壽)자나 복 복(福)자를 써 넣기도 했는데 거두절미하고 술 주(酒)자 하나만 쓴 것도 있다.

그런 중 기발하게도 병목에 질끈 동여맨 끈을 무늬로 그려 넣은 '백자 끈 무늬 병'(보물 1060호)이 있다. 이는 옛날엔 술병을 사용할 때 병목에 끈을 동여매 걸어놓곤 했던 것을 무늬로 표현한 것이다. 경기도 광주 도마리에 있는 15세기 백자 가마터에서는 술잔 받침에 이태백의 '술을 기다리는데 오지 않네'(待酒不至)라는 오언절구가 쓰여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술병에 푸른 끈 동여매고/ 술 사러 가서는 왜 이리 늦기만 하나/ 산꽃이 나를 향해 피어 있으니/ 참으로 술 한 잔 들이켜기 좋은 때로다."

이 술잔 받침과 쌍을 이루면 딱 알맞을 술병이다. 특히 무늬를 갈색의 철화(鐵畵) 안료로 그려서 마치 노끈이 달린 것처럼 실감이 난다. 이런 발상이야말로 한국인 특유의 멋과 유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영남대 교수 시절, 시험문제로 "한국미를 대표하는 도자기 한 점을 고르고 그 이유를 설명하시오"라고 출제했더니 인문대생은 달항아리를, 미대생은 이 끈무늬 병을 많이 골랐다. 그 중 한 학생은 유물명칭은 잘 모르겠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샘(선생님), 저는 백자 넥타이 병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맞았다! 이 끈무늬가 갖는 조형효과는 바로 넥타이와 같은 것이다.

이 병은 안목 높은 수장가였던 고(故) 서재식 전 한국플라스틱 회장이 돌아가시기 전에 소장품 중 이 한 점만은 개인의 것이 될 수 없다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