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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덕의 중국경제 콘서트](14) ‘당신은 혹 阿Q가 아닌가?’

[한우덕의 중국경제 콘서트](14) ‘당신은 혹 阿Q가 아닌가?’ [JOINS_디지털뉴스센터]

입력시각 : 2010-08-05 오전 11:30:54

휴가철 잘 보내고 계신지요. 저야 지난 4월 휴가를 다 쓴 관계로 사무실을 지키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즐거운 휴가 보내시길 바랍니다. 가벼운 글 하나 올립니다. 옛날에 썼던 글을 다시 각색했습니다. 중국경제 콘서트는 장르를 구별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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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청년 루쉰(魯迅)은 일본 센다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서양 의학을 배워 병자를 구하겠다는 생각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그 학교에서 중국인이라고는 루쉰 한 명뿐이었다.

어느 날 생물시간, 슬라이드 교육이 있었다. 여러 사진이 자막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졌다. 슬라이드 상영이 끝나갈 무렵, 수업과는 관련 없는 사진이 한 장 떠올랐다. 처형 장면이었다. 한 군인이 장도를 높이 쳐들고 있었고, 그 칼 아래에는 무릎 꿇은 죄인이 목을 길게 뽑은 채 단두(断头)를 기다리고 있다. 주위에는 구경꾼들이 죄수를 에워싸고 있었다. (아래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생물 선생이 사진을 설명했다.

“일본군인이 스파이 혐의로 잡힌 중국인을 처형하고 있는 장면이다. 그리고 주위에는 중국인들이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

루쉰은 넌더리를 친다. 동포가 일본인에게 처형당하는 조국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했지만, 정작 그를 더욱 분노케 한 것은 다른데 있었다. 루쉰은 동포가 이민족에게 죽어 가는 장면을 아무런 생각 없이 물끄러미 바라보는 사진 속의 중국인에게서 충격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동포가 처형당하는 게 한 갓 심심풀이에 불과했던 거다. 지독한 노예근성이었다.

“무릇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하잘것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관객밖에 될 수 없다”.

루쉰은 메스를 던진다. 그리고는 붓을 잡았다. 수술용 칼로 환자 한 명을 구할지 몰라도 저들 마음 깊숙한 곳까지 퍼진 마음의 병은 고칠 수 없다는 생각에서 였다.그는 문학으로 중국인들의 병을 고치기로 결심했다. 그 것은 혁명의 길이었다. 루쉰의 붓은 날카로운 메스보다 더 깊고 예리하게 중국인들의 가슴을 파고들게 된다.

현대 중국의 위대한 문학가 루쉰은 그렇게 탄생했다.

루쉰이 본 중국인의 첫 번째 병은 노예근성이었다. 동포의 죽음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바로 그 속성이다. 루쉰의 눈에 비친 중국인들은 거짓으로 속이고도 부끄러운 모른다. 서로를 도둑으로 의심하는 못된 습관에 젖어있다. 자신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고 자기 합리화 핑계대기 등을 좋아한다.

그 대표적인 노예가 바로 '아(阿)Q정전'의 주인공 阿Q다.

阿Q는 미장(未庄)이라는 마을에 사는 날품팔이 일꾼이다. 집도 없고, 가족도 없다. 남들이 불러주면 아무 일이고 마구 해댄다. 일이 없으면 빈둥빈둥 할 일없이 마을을 어슬렁대며 남 일에 참견하기를 즐긴다. 남의 괄시를 받고 있는 그는 언제나 '내가 옛날에는 말이야…','우리 조상은 말이야…'라며 으스대곤 했다.

阿Q는 동네 사람들에게 자주 얻어맞는다. 그래도 그는 승리한다. 그에게는 독특한 정신치료법이 있었다.

/건달패들은 阿Q의 누런 변발을 잡아채서 담벼락에 너 댓 번 쿵쿵 박아주고는 가버렸다. 阿Q는 한참동안이나 서서 생각했다.
“나는 아들놈에게 맞은 거나 다름없어. 이 놈의 세상은 정말이지 돼먹지 않았거든.”
그리고 阿Q는 승리를 얻은 양 득의만만해서 가버렸다./

노예는 언제나 주인에게 비굴하다. 그러면서도 기회가 오면 주인을 공격한다. 阿Q가 바로 그런 노예였다. 그런데 阿Q에게 기회가 온다. 혁명(신해혁명)이 일어난 거다. 그에게 혁명은 오직 복수와 출세를 위한 기회일 뿐이다.

/阿Q는 신이 났다. "혁명이라는 것도 괜찮은데" "개 같은 이 놈의 세상, 뒤집어엎어라! 빌어먹을, 나도 혁명당이 돼야지".

미장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그걸 보자 그는 오뉴월에 빙수나 마신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더욱 신이 나서 걸어가며 외쳐댔다."좋았어!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모두 내 것이다. 얼씨구 절씨구!

미장 놈들이 무릎을 꿇고 애걸하겠지. 누가 들어주기나 한다지? 첫 번째로 요절을 낼 놈은 조영감, 또 있지, 수재 가짜양놈, 왕 털보는 살려줘도 상관은 없겠지만 쓸데없어. 물건은? 곧장 쳐들어가서 궤짝을 열어야지…/

이는 阿Q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중국인 대부분 신해혁명을 그렇게 받아들였다. 가짜 혁명에 휩쓸린 거다. 루쉰은 阿Q를 통해 이를 고발했을 뿐이다.

阿Q의 공상은 금방 깨지고 만다. 그는 혁명당에 가입하지 못했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혁명당이 돼 阿Q를 구박했다. 한 발 늦었던 거다. 阿Q는 혁명당에 가입하려고 기회를 엿봤으나 혁명당은 그를 외면했다.

/阿Q는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었다. "내가 혁명하는 것을 막다니, 네 놈만 혁명하냐?/

阿Q는 조영감 약탈 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게 된다. 혁명당 우두머리는 자신이 혁명을 했는데도 약탈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며 이번 사건을 엄중히 다루겠다고 한다. 그 일벌백계(一罚百戒)본보기로 阿Q가 선정됐다. 아무 죄가 없었던 阿Q는 결국 형장을 끌려가게 된다.

/달구지는 곧 움직였다. 앞에는 총을 멘 병정과 지위대원이 있었고 양옆에는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고 있었다. 阿Q는 문득 깨달았다. '이거 목이 잘리러 가는 것이 아닌가?' 그는 급해졌다. 그러나 그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다. 어떤 때에는 초연해지기도 했다. 그의 생각에는 살다 보면 목이 잘리는 것을 면할 수는 없을 것도 같았다/

阿Q는 총살당하게 된다. 그 주위에는 여전히 구경꾼들이 모여있었다. 청년 루쉰이 의학도 시절 슬라이드에서 보고 환멸을 느꼈던 그 구경꾼들이 阿Q의 죽음에 등장하는 거다.

/모두들 阿Q가 나쁜 놈이라고 말했다. 총살당한 게 그 증거라는 것이다. 나쁘지 않았다면 왜 총살을 당하겠는가? 그들 대부분은 불만이었다. 총살은 목을 자르는 것만큼 볼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다. 그들은 헛걸음만 쳤다고 생각했다/

阿Q정전은 이렇게 끝을 맺다. 루쉰은 阿Q라는 인물을 통해 중국인들의 노예근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신해혁명의 속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리고 '총살당했기 때문에 나쁜 놈'이라는 말로 권력에 아부하는 신(新)노예의 속성을 까발리게 되는 거다.

阿Q정전이 중국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阿Q가 아직도 곁에 살아있기 때문이다. 자기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핑계대기 좋아하고, 자기반성보다는 합리화에 더 밝고, 그릇된 공권력에도 아부하는 속성이 아직도 중국인들에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살고 계신 독자라면 이 말에 쉽게 동감할 수 있을 거다.

어찌 중국뿐이겠는가. 우리나라 사회에도 阿Q는 존재한다. 약자에게는 한없이 강하고 강자에게는 꼼짝못하는, 그런 阿Q가 우리 옆에 있을지 모른다.

주위를 돌아보자.
혹 내 곁에 阿Q가 있는지,
나는 阿Q와 닮은 사람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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