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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 /한스타일

한식세계화는 한식당 세계화부터

한식세계화는 한식당 세계화부터
그릇·인테리어·스토리텔링도 중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뚝배기보다 장맛’이란 말도 있지만, 실제로 뚝배기에 따라 장맛도 다르게 느껴진다. 사람에겐 옷이 날개이듯 음식에겐 그릇이 날개다. 어디 그릇뿐일까. 상차림이며 인테리어며 서빙까지, 한식은 이제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우리 생활을 투영한 문화활동으로 그 격이 높아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
서울 강남구 수서동 '필경재'. 조선시대 전통가옥인 필경재는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돼 있으며 1999년부터 궁중요리 전문점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식세계화를 말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조태권(62) 광주요그룹 회장이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정성을 다해 한식을 홍보하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한식세계화 전도사’라고 부른다.

한국 도자의 부흥을 꿈꾸며 1963년 광주요를 탄생시킨 1대 조소수 선생의 아들로 광주요 2대 대표를 맡고 있는 조 회장은 한국 전통 도자의 생활화와 더불어 세계인에게 내세울 수 있는 한식문화를 선보이는 데 앞장서고 있다.

지난해 5월 4일 한식세계화추진단 출범 무대에서도 조 회장은 빠지지 않았다. 그는 그날 개최된 ‘한식세계화 2009 국제 심포지엄’에서 한식세계화란 “세계 최일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품격 높은 문화활동”이며 “한식당은 한복과 한옥, 공예품과 술, 그릇, 음악, 예절이 집약된 우리 문화의 총체적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말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다. ‘한식 업그레이드’를 위해 1998년부터 ‘아름다운 우리 식탁전’을 열어왔다. 이뿐 아니다. 도자 브랜드 ‘광주요’, 1백 퍼센트 쌀 증류주 ‘화요’, 우리 민화를 모티프로 한 벽지·액자·소품·패브릭 제품을 출시하는 ‘자비화’ 등 다양한 한식 관련 문화 콘텐츠들을 선보여왔다. 한식 알리기에도 직접 나서 서울 강남의 푸드코트 식당인 ‘녹녹’, 고급 한정식집인 포항의 ‘낙낙-화요가’, 중국 베이징 LG타워의 ‘가온’을 운영하고 있다.

조 회장은 ‘한식의 고급화’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미국 뉴욕의 최고급 식당에서 나오는 달걀 프라이와 기사식당의 달걀 프라이가 어떻게 같은가” 하고 질문을 던진다. 재료에서 시작해 상에 오르기까지, 모든 맥락에서 같은 음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릇·조명·생활용품 등 문화 콘텐츠로 재구성

한식이란 우리 문화의 총체적 아름다움이라는 그의 신념이 반영된 것이 유명한 조 회장집 한식 만찬이다. ‘웰컴 드링크’로 제공되는 유자청 칵테일은 가느다란 샴페인 잔에 담겨 눈과 입, 코가 즐겁다. 식탁 위에 놓인 1인용 식기 매트 격인 흰색 사각 도자판 위로 코스 음식이 나온다.

한식에서도 한 상 걸게 차리는 상차림 대신 1인용 세팅과 코스요리가 자리 잡고 있다.
한식에서도 한 상 걸게 차리는 상차림 대신 1인용 세팅과 코스요리가 자리 잡고 있다.
 
‘더덕을 곁들인 새우애탕국’ ‘돌나물 무침을 곁들인 게살전과 참나물전’ ‘청도 한재미나리를 곁들인 개성편수’ ‘달래무침과 아롱사태편육’ ‘개성식 돼지갈비구이’ ‘봄나물 비빔밥과 쑥 토장국’ 등 이름만 들어도 입에 군침이 돌 지경이다.

반주로는 ‘화요’를 곁들인다. ‘화요’는 2005년 개발돼 2007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주류박람회(IWSC)에서 동상을 받았으며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 만찬 테이블에 칵테일로도 제공됐다.

‘한식세계화의 선각자’인 조 회장은 요즘 외롭지 않다. 최근 한식에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보고, 듣고 즐기기 위한 문화 콘텐츠를 입히려는 노력이 이곳저곳에서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홀에서 열린 ‘2009 서울디자인페스티벌’의 주제는 ‘Design for Dinner-맛을 위한 디자인’이었다. 이 행사는 한국의 고유한 음식문화에 새로운 디자인을 접목해 그동안 우리 생활에 평범하게 자리 잡고 있던 우리 식생활의 모습을 그릇과 조명, 생활용품 등을 통해 새롭게 표현하고, 문화 콘텐츠로 재구성함으로써 한국 음식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목적을 두었다.

페스티벌 기간 중 마련된 ‘특별전시-입맛’에서는 국내 최고의 공간 디자이너들이 전 세계에 알릴 트렌디한 한식 공간을 구성했다. 마영범은 뉴욕의 비빔밥, 배대용은 밀라노의 한우, 전시형은 도쿄의 막걸리, 최시영은 파리의 한정식, 김백선은 런던의 국수 등 5명의 디자이너가 도예가, 한식연구가들과 함께 세계 5대 도시를 타깃으로 한국의 음식문화와 어우러진 공간을 구성해 ‘명품 한식 레스토랑’을 위한 모델을 보여주었다.

도자 선진국·스토리텔링·지역 특성도 한식의 경쟁력

지난해 페스티벌이 한식의 음식 외적 요소에 주목했다면 지난 4월 14~18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0 서울 세계 관광음식 박람회’는 음식 자체에 주목했다.

‘한국음식의 세계화’와 ‘한국음식의 관광자원화’라는 슬로건 아래 올해로 11회째 열린 음식박람회에는 화려한 꽃 모양 장식을 한 떡케익, 핑크색으로 물들인 무를 이용한 ‘아스파라거스 무쌈말이’ 등 ‘보는 아름다움’을 강조한 음식과 ‘파프리카에 담은 김치’ ‘배 깍두기’ 같은 새로운 한식,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충무공 이순신 밥상’, 지역 특성을 살린 전남 강진군의 ‘강진 한정식’ 등이 소개돼 눈길을 끌었다.

스토리텔링, 지역 특성도 한식에 가미될 수 있는 무형의 문화코드다.

온고푸드커뮤니 케이션 최지아(42) 대표는 지난 2월부터 우리나라를 찾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푸드투어’를 실시하고 있다. 그는 “푸드투어란 서울 종로구 인사동 등을 찾아 한국음식을 맛보며 음식이란 코드를 통해 즐기는 한국문화 체험”이라고 설명했다.

“음식과 관련한 관광상품 하면 흔히 ‘와이너리투어’를 떠올리지만 이탈리아, 프랑스 등 음식문화 선진국에 가면 음식을 통해 그 나라 문화를 맛볼 수 있는 푸드투어들이 잘 개발돼 있습니다.”

2008년부터 농림수산식품부의 한식세계화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는 최 대표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보아가며 푸드투어 코스를 조정하고 그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나 식당을 상품에 반영하고 있다며 “한식의 경쟁력으로 내세울 만한 요소는 우리가 도자 선진국이라는 점, 스토리텔링, 지역 특성”이라고 꼽았다.

독특한 장문화 외국인 호기심 충족시켜

눈이 먼저 즐거워지는 한식이어야 한다. 혀보다 먼저 음식을 접하는 것은 눈이다.
눈이 먼저 즐거워지는 한식이어야 한다. 혀보다 먼저 음식을 접하는 것은 눈이다.
“대한항공에서 우리나라를 ‘모닝캄(Morning Calm·고요한 아침의 나라)’으로 부르고 있지만 사실 외국인들의 눈에 비친 우리나라는 모닝캄과 반대로 역동적인 나라입니다. 낮 동안 종일 같이 근무하고, 또 저녁이면 2차, 3차까지 술자리를 갖는 한국인들의 독특한 직장 회식문화나 포장마차도 외국인들의 눈에는 이색적이고 매력적입니다.

또 서울 종로5가 광장시장의 빈대떡집들은 이북에서 피난 온 분들이 생계가 어려워 빈대떡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에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곳이에요. 그들이 선호하는 스토리텔링은 단군신화처럼 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생뚱맞은 것보다 친근하고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는 중국보다 향토음식이 특색 있게 발달하고, 발효의 특성을 살린 독특한 장(醬)문화를 갖고 있다”며 “우리 것이니까 무조건 좋다기보다는 그들의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는 한식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한식의 경쟁력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병우 롯데호텔 총주방장은 “식문화 관련 산업이 발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하는 분야가 술, 그릇, 인테리어다. 손님이 식당에 들어설 때 모던하지만 한국적인 멋을 느낄 수 있는 실내 인테리어, 집기, 비품 또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한식세계화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저급한 한식이 아니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켜나가는 일”임을 강조했다.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 안에 정보기술(IT) 등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것처럼 한식도 앞으로 충분히 세계에서 통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한식이 차세대 성장동력이 된다면 고용도 늘지 않겠어요? 한식이 중요한 점은 우리 음식을 알아야 다른 나라 음식에 새롭게 접목할 수 있고, 그것으로 국제경쟁력을 갖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식에도 다양한 상상과 창의력이 필요한 시대가 바로 지금입니다.”

한식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말하고 보여주는 ‘명품’ 한식, ‘스타일’ 한식의 길은 한식세계화의 행로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여정임이 틀림없다.


 | 글·사진:위클리공감 | 등록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