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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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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5/30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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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마이클 샌델 | 이창신 옮김

김영사 2010.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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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정의란 무엇인가


2005년 6월 미 해군 특수부대 실(SEAL) 소속의 마커스 루트렐 하사와 수병 3명은 파키스탄 국경과 가까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지도자를 찾는 비밀 정찰 임무를 은밀히 수행하던 중 염소를 치는 농민 2명, 소년 1명을 만났다. 민간인이었지만 이들을 풀어주면 자신들의 소재가 탈레반에게 알려질 위험이 있었다. 이들을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루트렐이 반대해 염소치기들은 풀려났다.

1시간 반 뒤 이들 미군 4명은 중무장한 탈레반에게 포위됐고 루트렐을 제외한 3명과 구출 작전에 나선 미군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루트렐은 “내 평생 가장 어리석고, 가장 덜 떨어진 결정이었다”고 후회했다. 그렇다면 3명을 희생시켜 19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저자가 최근 20여 년간 학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손꼽힌 자신의 정치철학 강의 ‘정의(Justice)’를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27세에 최연소 하버드대 교수가 됐고 29세에 자유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발표해 명성을 얻었다.

민주사회는 옳고 그름, 정의와 부정에 관한 이견으로 가득 차기 마련이다. 낙태 권리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쪽에서는 낙태를 살인으로 간주한다. 어떤 사람은 부자에게 세금을 거두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공정하다고 여기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노력으로 번 돈을 세금으로 빼앗는 행위는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한다. 테러 용의자를 고문하는 행위는 자유 사회에 걸맞지 않은 혐오스러운 짓이라는 견해와 테러 공격을 예방하는 마지막 수단이라서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공존한다. 무엇이 옳은 일인지에 대한 고민은 바로 인간사회의 ‘최선의 삶’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치철학 강의인 ‘정의(Justice)’. 샌델 교수는 정의를 판단하는 관점으로 행복, 자유, 미덕을 제시하며 독자들이 자신의 정의관을 고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분석한다. 사진 제공 김영사
미 국 특수부대의 사례를 철학적 사고로 치환해보면 정의의 실체를 밝히는 일은 결코 간단치 않은 것임을 알게 된다. 당신은 전차 기관사다. 빠른 속도로 주행하는데 제동장치가 고장났다. 앞에는 인부 5명이 철로에 있다. 오른쪽 비상철로에는 인부가 1명뿐이다. 전차를 돌리면 1명이 죽는 대신 5명은 살릴 수 있다. 1명을 희생해 5명을 구하는 것에 동의할 수 있나.

이번엔 당신은 기관사가 아니라 철로를 바라보며 다리 위에 서 있는 구경꾼이다. 저 아래 철로로 제동장치가 고장 난 전차가 질주하고 그 앞에 인부 5명이 있다. 당신 옆에는 덩치가 산만 한 남자가 있어서 그를 전차 앞으로 밀어뜨리면 열차가 멈춰 5명은 살릴 수 있다고 치자. 어떻게 하겠는가. 희생자의 수로 가치를 판단하는 것이 이번에는 부담스러운가.

저자는 정의를 이해하는 관점을 세 가지로 제시한다. 행복, 자유, 미덕이 그것이다. 정의에 대한 논쟁은 이런 가치의 충돌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극대화를 강조한 관점이 공리주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방안이 정의라는 것이다.

정의는 자유와 개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큰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의 권리장전에 언론이나 종교의 자유를 비롯해 다수의 힘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들이 규정돼 있다. 정의는 보편적 인권을 존중하는 것이라는 생각도 갈수록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자유방임주의자와 공평주의자로 나뉜다.

정의를 미덕과 밀접하게 연결지어 해석하는 이론이 있다. 정의로운 사회라면 미덕과 좋은 삶에 대한 견해를 분명히 해야 한다며 도덕을 어느 정도 법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미덕과 거리가 먼 행위를 하는, 예컨대 폭리를 취하는 자들은 법으로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대의 정의론은 미덕에서 출발하는 반면 근현대의 정의론은 자유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경제적 풍요를 지지하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정의에서 ‘심판’이라는 한 가닥 끈을 완전히 끊어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2008∼2009년 구제금융 위기 때 미국 투자회사들이 세금에서 나온 구제금융 기금으로 상여금 잔치를 벌인 일, 2004년 허리케인이 플로리다를 휩쓸고 간 뒤 재화와 서비스가 부족한 상황에서 발생한 폭리 논란 등 생생한 사례를 분석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정의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도록 도덕적·철학적 ‘사고(思考) 여행’으로 안내한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하버드 최고 인기강의 샌델 교수, 정의(正義)를 정의(定義)하다

이한우 기자 hwlee@chosun.com

허리케인 때 바가지요금은 정당? 동성혼은 허용? 일부다처는 안돼?
다양한 질문들, 세가지 시각으로 조명

'정의(正義·justice)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편해진다. 무엇인가라고 물었을 뿐인데 왜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그 질문을 받는 순간 그것을 '당신은 정의롭게 살고 있는가?' '당신은 정의로운 사람인가?'라는 질문으로 번역해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또 정의를 다룬 책을 좀 읽은 사람들은 이 질문을 받는 순간 골치가 아파진다. 정의(正義)에 관한 명쾌한 정의(定義)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빈도에 비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의 빈도가 한참이나 낮은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들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줄기차게 정의와 올바름, 정당함, 공정함을 캐묻는 사상가들이 있다. 그들이 정의를 묻는 것은 정의(正義)의 정의(定義)가 궁금해서라기보다 사회가 보다 정의로워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을 '공동체주의자'라고 부른다. '덕의 상실'(이진우 옮김, 문예)의 알래스데어 맥킨타이어, '마르스의 두 얼굴'(권영근 등 옮김, 연경문화)의 마이클 월저, '불안한 현대사회'(송영배 옮김, 이학사)의 찰스 테일러, 그리고 이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 미국 하버드대 교수(정치철학)가 그들이다. 맥킨타이어가 고대 아리스토텔레스식의 덕성(virtue) 회복을 통해, 월저가 '정의로운 전쟁은 과연 가능한가'라는 물음을 통해, 테일러가 이기심과 허무주의에 빠진 현대사회의 '그릇된' 지적 문화에 대한 철학적 비판을 통해 정의 회복을 꿈꾸었다면, 샌델은 우리를 곧장 다양한 쟁점들이 부딪치고 있는 일상현실 속으로 밀어넣는다.

김영사 제공
2004년 여름 허리케인 찰리가 미국 플로리다를 휩쓸고 지나갔다. 전력부족으로 냉장고나 에어컨을 쓸 수 없는 사람들이 주유소로 몰려들었다. 얼음주머니를 사기 위해서였다. 주유소는 평소 2달러인 얼음주머니를 10달러에 팔았다. 250달러 하던 가정용 소형발전기는 2000달러로 뛰었다. 이런 바가지요금 업자들을 한 일간지는 '폭풍 뒤에 찾아온 약탈자'라고 비난했다.

그 러나 시장주의 혹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기사를 반박했다. 기존의 가격은 '어쩌다 익숙해진 가격 수준'일 뿐 도덕적으로 신성한 가격이 아니기 때문에 시장상황에 따라 높여 받았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경제학자 토머스 소웰은 "얼음·생수·발전기 등의 가격이 높아지면 수요자는 소비를 억제하고 공급자는 피해지역으로부터 먼 곳에서까지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려는 욕구가 높아져 곧 '정상'을 되찾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 재난지역에서 가격폭리금지법을 입법하는 행위는 정의로운 것인가 정의에 반하는 것인가?

저자는 '바가지요금 사태'를 통해 정의를 바라보는 데는 세 가지 입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나는 행복 극대화가 정의라는 입장으로, 제레미 벤덤이나 존 스튜어트 밀 등의 공리주의가 그것이다. 또 하나는 개인의 자유(혹은 자율) 존중을 정의로 보는 입장으로, 존 로크나 칸트가 기초를 마련했고 20세기 들어 존 롤스가 '정의론'을 통해 설파한 견해다. 세 번째는 덕성 추구를 정의로 보는 입장으로, 저자를 포함해서 앞서 언급한 공동체주의자들이다.

이어 본격적인 질문던지기가 시작된다. 먼저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한 질문던지기다. 신체적 손상이 아니라 정신적 손상, 즉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진단을 받은 참전군인은 '상이군인훈장'을 받을 자격이 없는가? 금융위기의 '주범'들이 거액의 상여금을 받는 것은 정당한가? 2005년 6월 미해군 특수부대원 4명은 정찰임무 중 100마리 염소를 모는 열네살짜리 아이를 발견했다. 논쟁 끝에 그를 풀어주기로 결정했다. 한 시간 반 후 이들은 탈레반에게 포위됐고 총격전 끝에 3명이 사망하고 이들을 구출하려던 헬기까지 격추돼 16명이 추가로 사망했다. 아이를 살려준 결정은 올바른 것이었는가?

가정(假定)의 질문은 더 곤혹스럽다. 국가가 결혼에 개입하는 것은 정당한가? 동성애자의 결혼을 허용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결혼의 다양화가 그 이유라면 일부다처(一夫多妻)나 일처다부(一妻多夫)를 허용해서는 안 되는 까닭은 또 무엇인가?

그렇다고 이 책이 마구잡이식 질문집은 아니다. 분배의 불평등, 교도소의 민간운영, 소수집단 우대 정책, 징병이냐 고용이냐를 둘러싼 병역논쟁 등 다양한 쟁점들을 공리주의적 시각과 자유주의적 시각으로 정리한 다음 조심스럽게 자신의 공동체주의적 주장을 암시한다. 그리고 전체 10장 중에서 2장이 벤덤과 밀의 공리주의, 5장이 칸트의 동기주의, 6장이 롤스의 자유주의, 8장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덕성 강조로 구성돼 있는 점에서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알 수 있다.

정치철학자로서 샌델은 도덕이나 종교로부터 독립을 내세우는 정치에 비판적이다. 그가 공리주의나 자유주의 정의론에 비판적인 이유다. "정의로운 사회는 단순히 공리(功利)를 극대화하거나 선택의 자유를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다." 그는 오히려 시민들이 도덕이나 종교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정치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좋은(정의로운) 삶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야 하고, 이 과정에서 생기게 마련인 이견(異見)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문화를 가꿔야 한다.

이 제 샌델을 포함한 공동체주의자들의 약점을 지적할 차례다. '당신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덕성이란 무엇인가?' 덕성의 내용이 공허하다는 비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강점은 분명하다. 정의(正義)란 무엇인가, 즉 정의의 정의(定義)를 향한 지적 모험을 감행하도록 강력하게 유혹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샌델의 '정의(Justice)' 강의는 해마다 1000여명의 학생들이 듣는 하버드대 최고의 인기강의이며, 이 책은 20년에 걸친 강의를 토대로 집필됐다.


정의가 충돌할때…‘공동선’을 고민하라 20년 지속된 하버드 명강의 엮어
숱한 ‘도덕적 딜레마’ 해결 지침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은 존 롤스(1921~2002) 이후 영어권 정치철학계를 대표하는 사람 중 하나다. 27살에 하버드대 교수가 된 샌델은 29살 때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를 펴내 명성을 얻었다. 샌델은 이 책에서 롤스의 평등적 자유주의에 대응하여 ‘공동체주의’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이후 샌델은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 마이클 월저, 찰스 테일러와 더불어 공동체주의 4대 이론가로 알려졌다.

샌델의 수업은 하버드대에서 가장 있기 있는 강의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특히 그가 20년 넘게 계속하고 있는 ‘정의’(justice)라는 강의는 교수의 유창한 진행과 학생들의 열띤 참여로 하버드대 최고의 강의라는 명성을 얻었다. 2009년에 출간한 <정의란 무엇인가>는 지난 20여년 동안 수천명의 학생들과 함께했던 ‘정의’ 강의를 바탕으로 삼아 쓴 책이다. 통상의 정치철학서와 달리, 수많은 구체적인 사례를 실감나게 제시함으로써 ‘정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리하여 이 책은 설득력 있는 사례들로 무장한 정치철학 입문서이자 샌델 자신의 견해를 비교적 분명하게 논증한 정치철학 이론서가 됐다.

철학적 고민은 둘 이상의 원칙이 서로 충돌할 때 그 모순을 해결하려는 노력에서 시작된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은 도덕적 원칙이다. 동시에 사람의 생명을 가능한 한 많이 살려내는 것도 도덕적 원칙이다. 이 두 원칙이 충돌할 때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이 도덕철학의 출발점이 되는 셈인데, 정치철학도 다르지 않다. 샌델의 이 책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딜레마를 다룬다.



»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57·미국 하버드대 교수)



샌델이 여기서 정의를 둘러싼 딜레마적 요소로 제시하는 것이 ‘행복’과 ‘자유’와 ‘미덕’이다. 전체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것이 정의냐, 개인들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공동체의 미덕을 장려하고 ‘좋은 삶’을 추구하는 것이 정의냐. 행복을 극대화하려다 보면 개인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다 보면 공동체의 미덕이 훼손될 수 있다. 이 딜레마적 상황을 살필 때 샌델이 먼저 검토하는 것이 제러미 벤담의 공리주의다. 벤담의 공리주의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요약되는데, 전체의 행복이 최대치가 되게 하는 것을 정의로 간주한다. 벤담은 이런 생각을 1780년 <도덕과 입법의 원리>에서 피력했는데, 5년 뒤 이마누엘 칸트는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1785)에서 벤담의 사상을 맹비판했다.

벤담의 논리는 전체의 행복을 위해 소수 개인들을 수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정의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칸트의 주장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인간을 수단으로 삼지 않고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정의다. 칸트는 인간이란 이성을 사용해 스스로 법칙을 세우고 그 법칙에 입각해 행위할 수 있는 존재다. 자기가 세운 원칙을 자기가 지키는 것, 이것이 바로 자유이다. 인간은 누구나 이 자유를 지닌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200년 뒤 롤스는 칸트의 이 주장에 입각해 ‘평등적 자유주의’ 이론을 제시했다.

샌델은 칸트와 롤스의 자유이론이 매우 설득력 있는 것이긴 하지만, ‘무엇이 좋은 삶이냐’에 대한 대답을 괄호로 묶어 놓은 채, 모든 사람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정의의 일반적 원칙만 이야기한다고 비판한다. 그리하여 샌델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관으로 눈을 돌린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는 좋은 삶이라는 미덕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보기에 정치는 시민들에게 무엇이 좋은 삶인지 터득하게 해주는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사람들이 고유의 능력과 미덕을 계발하게 만드는 것, 곧 공동선을 고민하고, 판단력을 기르며, 시민 자치에 참여하고,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걱정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미덕을 장려함으로써 좋은 삶을 살게 하는 것이 정의다.

샌델은 오늘날 정의의 이론이 공동선의 정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샌델이 보기에 196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로버트 케네디가 이런 공동선을 외쳤으나, 그가 암살당한 뒤 진보파가 이 문제를 놓아버렸다. 그랬던 것이 2008년 대선에서야 버락 오바마와 함께 공동선의 문제가 진보적 의제로 부활했다. 샌델은 지난 수십년 동안 미국의 진보 정치가 시민의 도덕적·정치적 신념을 존중한다면서 그 신념의 내용을 외면하고 모른 척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식의 회피에서 나온 존중은 가짜이기 십상이다.” 샌델은 좋은 삶을 다 같이 고민하는 것이 정의로운 사회의 모습이라면서 정치가 개인들의 도덕적 판단과 실천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하는 것이 결국에 공동선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한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도덕을)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 찬 기반을 제공한다.”

고명섭 기자 michael@hani.co.kr


[출처] 정의란 무엇인가|작성자 오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