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콘텐츠 /K-엔터

박지성 발탁했던 허정무, 조짐은 그때부터였다

박지성 발탁했던 허정무, 조짐은 그때부터였다

오마이뉴스 | 입력 2010.06.23 18:11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한국축구를 통틀어 허정무 감독만큼 월드컵과 인연이 깊은 인물도 드물다. 1986 멕시코월드컵에서 현역 선수로 본선무대를 밟은 그는 트레이너와 코치로서, 혹은 해설자로서 항상 월드컵과 함께 했다.

하지만 2010 남아공월드컵'은 감독으로서는 처음으로 도전하는 무대이자 이제껏 한국축구에게 있어서 미답의 고지였던 원정 16강을 이뤄낸 최초의 국내파 지도자라는 데서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월드컵과 함께 한 허정무, 2010년엔 감독으로





17일(이하 한국시간) 오후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 경기장에서 열린 2010 남아공월드컵 B조 한국 대 아르헨티나의 경기 도중 허정무 감독이 선수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뉴시스


축구인으로서 항상 성공한 엘리트코스만을 밟아온 듯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월드컵은 애증의 무대였다.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한국축구에 32년만의 본선진출을 이끄는데 주역으로 활약했지만, 본선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하며 아쉽게 16강진출에 실패했다.

1998년에는 대표팀 감독에 부임하여 안방에서 열리는 2002 한일월드컵을 목표로 야심차게 출항했지만 시드니올림픽과 아시안컵에서의 잇단 성적부진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결국 중도하차해야만 했다.

허정무 감독의 이루지못한 월드컵의 꿈은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어받아 한국축구에 전무후무한 4강 신화를 열게 되며 이후 7년여에 걸친 외국인 감독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허정무 감독은 젊은 시절에서 '진돗개'로 불릴 만큼 투지와 근성의 화신으로 불리웠다. 밑바닥에서 오직 축구 하나에 청춘을 걸고 최정상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끊임없는 노력과 포기를 모르는 집념으로 이를 악물고 버텨왔다.

86년 멕시코월드컵에서 당대 최고의 선수였던 아르헨티나 마라도나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하며 '태권축구'라는 오명속에서도 당시 한국 선수들중 유일하게 주눅들지 않은 플레이로 상대를 꽁꽁 묶었던 장면은, 허정무의 지기 싫어하는 승부근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하지만 지도자는 혈기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 대표팀 감독을 맡았을때 40대에 불과했던 허정무 감독은 '강성' 지도자로 악명이 높았고 거친 스파르타식 훈련과 일방통행식 리더십으로 선수들과 소통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림픽대표팀 시절에는 일부 선수들에게 손찌검을 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으며, 고집스러운 전술과 선수기용을 둘러싸고 잡음이 일기도 했다. 본의 아니게 외국인 감독 시대를 연 장본인이 된 허정무 감독은 당시 국내 축구지도자들의 무능과 한계를 상징하는 인물로 모든 비난을 홀로 뒤집어써야했다.

환영받지 못한 허정무의 '귀환'

'실패한 지도자'로 기억되는 허정무가 새롭게 평가받기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3년후. 거스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창조했지만, 그 이면에 '허정무의 아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점은 훗날 허정무 감독이 재조명받는 계기가 됐다. 박지성, 설기현, 이영표 등은 흔히 히딩크 감독이 처음 발굴해낸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사실 이들을 처음 각급 대표팀에 중용하며 길을 닦은 것은 허정무 감독이었다.

박지성만 하더라도 처음 올림픽대표팀 발탁 당시 소속팀이던 명지대 김희태 감독과의 친분으로 바둑을 두다 뽑았다는 괴소문이 일기도 했지만, 훗날 박지성은 히딩크 감독의 손을 거쳐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하며 허 감독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7년의 시간이 흐른 뒤 허정무 감독에게 운명처럼 지도자 인생의 두 번째 기회가 돌아왔다. 2007년 아시안컵 이후 핌 베어벡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공석이 된 대표팀 사령탑 자리에 허정무 감독에게 제안이 들어온 것. 당시만해도 대표팀 감독 후보군에도 꼽히지 못했던 허정무 감독에게는 뜻밖의 인사였다. 아이러니하게도 7년간 자신의 대에서 끊겼던 국내파 대표팀 감독의 계보를 자신의 손으로 다시 잇게 된 것.

고심 끝에 대표팀 감독을 수락했지만 여론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취임 당시부터 신임 감독에 대한 축하와 격려의 분위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오히려 감독 선정과정에서 드러난 축구협회의 졸속 행정에 대한 성토와 함께, 이미 7년 전 '실패한 이미지'로 낙인찍혔던 허정무의 귀환에 '주제파악을 못하고 또 욕심을 부린다'는 싸늘한 시각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다시 돌아온 허정무 감독은 달라져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고나며 어느덧 K리그 감독으로서 50대 중반의 중견 지도자가 된 허정무 감독은 한결 성숙해져 있었고, 선수들과의 쌍방향적인 소통과 합리적인 변화에 눈을 떴다. 과거 허정무 감독의 이미지만 기억하며 편견을 가지고 있던 선수들도 '나를 따르라'는 식의 권위적인 리더십을 버리고 자신을 낮춘 허 감독의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파 허정무 감독 시대의 성과는? 대표팀 업그레이드

허정무 감독은 여론의 비판과 우려에 대해 한 단계씩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물론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정신력과 투지를 강조하는 그의 축구철학이 구시대적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했고, 선수 선발에 있어서 학연과 지연에 의존한다는 의심을 받았다. 수비 위주의 지지 않는 축구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전술도 도마에 올랐다.

허정무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은 곧 국내파 지도자들을 바라보는 기존의 편견과 크게 다르지않았다. 국가대표라면 항상 대표 선수다운 자격에 걸맞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지녀야한다는 주장은 알고보면 당연한 의무임에도, 허정무 감독은 근성과 투지만 요구하는 '쌍팔년도' 축구를 추구하는 것처럼 오해를 받았다. 팀을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했던 선수실험과 세대교체는, 지역예선에서의 거듭된 부진과 졸전으로 비난 여론에 직면했고 '허무축구'라는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

힘겹게 3차예선을 통과한 한국은 북한과의 최종예선 1차전에서 졸전 끝에 무승부에 그치며 최대위기에 봉착한다. 허정무 감독에 대한 경질여론이 악화되던 시기였다.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였다. 이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변화의 시작을 알린 허정무호는 박지성을 주장으로 선임하고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세대들을 A대표팀의 주역으로 끌어올리는 대대적인 세대교체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한다. 그 결과 죽음의 조로 평가받았던 아시아지역예선을 무패(7승7무)로 통과하며 7회 연속 본선행이라는 대업을 달성했다.

사우디에서의 19년만의 원정 승리, 이란전의 극적인 무승부 같은 짜릿한 장면도 있었고 이청용, 기성용 등의 젊은 피를 중용하며 세대교체에도 성공했다. 이후 지난 11월 세르비아와의 유럽 원정에서 패배하기까지 허정무호는 무려 A매치 27경기 연속 무패행진을 기록하는 등 승승장구했다.

허정무 감독은 주위의 계속된 비판 여론과 의심에도 꿋꿋이 자신의 소신을 관철시켰고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된 이후에도 지속적인 선수테스트와 전력 담금질을 통해 대표팀을 업그레이드시켜 나갔다. 지난 1월에는 해외파 선수들이 빠진 상황에서 치른 해외전지훈련에서의 부진, 동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중국에 당한 사상 첫 0-3 참패 등으로 고비는 계속됐지만 허정무 감독의 마이 웨이는 흔들리지 않았다.

허정무 감독 시대에 이뤄낸 성과는 무엇일까. 가시적으로는 7회 연속 월드컵 본선진출과 원정 16강을 들 수 있지만, 내실면에서는 돌아보면 일단 아드보카트-베어벡 감독 시절을 거쳐 포백이 대표팀의 주전술로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다. 재임기간 동안 허정무 감독은 무려 80여 명에 이르는 국내외 선수들을 테스트했고, 과거 외국인 감독 시절 소외받던 지방팀 소속과 무명 선수들을 중용하며 K리그 선수들에게 동기부여를 안겼다.

4-4-2와 4-2-3-1를 오가는 유연한 전술적 시스템으로 한층 다양해진 축구를 구사할수 있게 되었다. 박지성, 이청용, 기성용 등으로 이어지는 역대 최고의 해외파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2002 세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한국축구의 오랜 과제이던 세대교체에 성공하며 이전과도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대표팀을 완성하는데 성공했다.

여전히 배고플 허정무, 그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는 까닭

허정무 감독은 2년여간 축적된 자신감과 경험을 바탕으로 마침내 국내파 감독으로서는 최초의 월드컵 원정 16강에 도전했다. 자신의 과거 시행착오와 애증이 오롯이 녹아있는 월드컵 무대를 앞두고 허정무 감독은 비장미 넘치는 출사표가 아닌 '유쾌한 도전'을 선언했다. 후회없이 월드컵을 즐기되, '사고 한 번 치겠다'는 허정무 감독의 자신감은 첫 경기였던 그리스 전에서 2-0의 완승으로 허언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한국축구 원정 사상 가장 압도적인 경기였다는 찬사를 받을 만큼 완벽한 승리였다.

허정무 감독의 마지막 고비는 아르헨티나전의 1-4 완패였다. 한국축구가 98년 네덜란드전 5-0 완패 이후 월드컵 본선에서 당한 또한번의 굴욕이었다. 허정무 감독의 전술적 실책에 대한 여론의 질타가 이어졌고, 이래서 국내파 지도자는 안 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절치부심한 허정무 감독은 나이지리아와의 최종전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박주영, 이정수, 기성용, 정성룡 등 논란 속에서도 허정무 감독의 전폭적인 신임을 받았던 선수들이 제몫을 다하며 앞장서서 마지막 관문이었던 나이지리아전 2-2 무승부를 일궈냈고 한국축구는 마침내 원정 16강으로 축구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었다.

겉보기에는 순탄한 과정을 걸어온 것 같지만, 허정무 감독은 임기내내 칭친과 비난, 위기와 기회, 천당과 지옥의 극심한 롤러코스터를 거친 끝에 마침내 목표했던 자리에 도달했다. 축구인생의 모든 것을 걸었다던 허정무 감독의 도전과 집념이 마침내 결실을 맺는 자리다.

국내파 지도자는 안 된다는 편견을 스스로 변화하며 몸을 낮추는 노력으로 극복하는데 성공한 허정무 감독은 이제 과거 히딩크 감독이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승리에 대한 굶주림을 안고 있다. 1차목표는 이뤘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남아있는 한국축구는 이제 좀 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 오마이 블로그]

[☞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