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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 생태계/지식

모바일 생태계는 어떻게 진화할까?

모바일 생태계는 어떻게 진화할까?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들다 2010년 06월 21일(월)

최근 애플이 한국의 온라인 생태계를 뒤흔들려 한다는 내용의 기사가 여러 언론 매체에 실렸다. 애플이 음원, 전자책 서비스 같은 콘텐츠 사업을 국내에서 시작하려 하고 있으니, 국내업체들의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말이 덧붙어 있다.

애플이 구축한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라는 모바일 기기용 응용프로그램 장터인 앱스토어에는 전 세계의 수많은 파는 사람, 사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등이 몰려들어 북적거리는 말 그대로 시장판이다. 그런 장터가 들어오면 국내의 기존 온라인 콘텐츠 유통 체계가 뒤흔들 것이라는 의미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생태계라는 말이 쓰였을까?

생태계는 물론 생물학에서 쓰는 용어이다. 하지만 최근 뉴스를 검색해보면 생물학 외에 정보 통신 산업 분야에 유달리 생태계라는 말이 많이 쓰임을 알 수 있다. 모바일 생태계, 디지털 생태계, 웹 생태계, IT 생태계, 애플 생태계, 기술 생태계 등등. 이런 생태계와 실제 생물들이 사는 생태계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

생태계라는 말의 의미

알다시피 생물학에서 생태계란 생물과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가리키는 말이다. 생물은 얼기설기 먹이 그물을 이루고 있으며, 자신이 사는 환경과 상호 작용한다. 디지털 생태계는 이 개념을 빌려와서 디지털 산업 분야에 적용한 것이다. 원래 이 말은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기 힘든 중소기업을 위해 나온 것이었다.

▲ 모바일 생태계는 모바일 환경에서 상호 작용하는 행위자들로 이루어진다. 
산업 환경이 통신 기술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자원과 비용이 부족하여 그런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다. 그러니 경영, 지식, 하부 구조를 공유하는 환경을 만들어서 그 안에서 모두가 역동적으로 협력하면서 상생하도록 한다면, 중소기업도 좀 더 유연하게 환경 변화에 대처하면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 교육기관, 기업, 정부, 공공기관, 기업 등이 협력하여 그런 환경을 만들면, 정보 통신 기술과 지식을 토대로 한 새로운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이 개념은 곧 확대되어 어느 한 산업 분야만이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에 적용되었다. 즉 디지털 환경에서 상호 작용하면서 살아가는 종(행위자)을 뜻한다.

해롤드 볼리와 엘리자베스 창은 자연 생태계가 상호 작용, 평형, 종들의 느슨한 연결, 자기 조직화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개념을 디지털 생태계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디지털 생태계는 통제가 중앙 집중적이든 분산적이든 어느 하나로 영구 고정될 필요도 없고, 어느 한 행위자가 생산자나 소비자 같은 어느 한 역할만 계속 맡을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환경의 요구에 따라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는 열린 구조라는 것이다.

의사소통 가능하게 하는 무리 지능(swarm intelligence)

볼리와 창은 디지털 생태계가 이런 역동적인 열린 구조를 이루면서도 의사소통과 협력이 가능한 것이 ‘무리 지능’ 덕분이라고 말한다. 무리 지능은 최근 들어 자주 쓰이는 용어이다.

개미, 흰개미, 벌 같은 사회성 곤충들은 한 마리씩 떼어놓고 보면 지능도 낮고 하는 일도 단순하지만, 한데 모이면 통로들이 미로처럼 뒤얽힌 거대한 개미집을 짓고, 아주 효율적으로 먹이를 찾고 적과 싸우는 등 놀라울 정도로 뛰어난 생존 및 번식 능력을 보인다. 이렇게 단순한 존재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면 상황에 대처하는 뛰어난 지능이 출현한다. 이 창발적 특성을 무리 지능이라고 한다.

▲ 벌 같은 사회적 곤충은 뛰어난 무리지능을 선보인다. 
무리 지능은 어느 한 개체의 행동이 주변 개체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그 영향이 급속히 무리 전체로 퍼짐으로써 나타난다. 개미집의 일부가 무너지면, 몇몇 개미가 돌을 무너진 쪽에 갖다놓는다. 그러면 주위에 있는 개미들도 같은 행동을 하며, 곧 수많은 개미들이 돌을 옮겨서 무너진 곳을 수리한다. 각 개미가 무너진 곳을 수리해야 한다는 목적의식을 갖고 있던 것도, 누군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를 한 것도 아니다. 그들은 그저 돌을 옮겼을 뿐이지만, 그런 행동이 모여서 집수리가 이루어진다. 어떤 중앙집권적인 통제도 명령도 없이 행위자들이 이합집산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는 무리 지능은 디지털 생태계의 중요한 특성일 듯하다.

모바일 생태계의 성장 드라마

휴대 전화 같은 이른바 모바일 기기가 널리 쓰이면서, 이제는 모바일 생태계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앞서 말한 논리를 연장시키면, 모바일 생태계는 모바일 환경에서 상호 작용하는 행위자들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10년 전만 해도 모바일 기기를 쓰는 사람은 세계 인구의 5퍼센트도 안 되었다. 지금은 거의 50퍼센트에 달한다. 북아메리카에서는 인구 중 모바일 기기를 쓰는 사람의 비율이 70퍼센트를 넘었다. 그 외의 지역에서도 모바일 기기 사용자는 급속히 늘어가고 있다. 모바일 기기 사용자 수의 비율로 따졌을 때, 10년 전에는 선진국이 75퍼센트를 차지했지만 지금은 25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러니 지금 모바일 생태계라는 말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얼마 전까지도 애플 이외의 기업은 생산자이자 관리자 역할만 했을 뿐,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개념을 아예 갖고 있지 않았다. 하드웨어 성능만 따졌을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애플은 모바일 콘텐츠의 생산과 유통을 획기적으로 개선한 앱스토어를 활성화시킴으로써, 사실상 모바일 생태계를 창조했다. 모바일 생태계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급격히 성장하면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모바일 생태계는 모바일 환경에서 모바일 콘텐츠 개발자, 배급자, 망사업자, 모바일 기기 제조업자, 소비자 등이 상호 작용하는 곳이다. 모바일 환경은 기존 인터넷과 웹 위주의 디지털 환경과 다른 점이 있다. 인터넷과 웹 위주의 환경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콘텐츠를 자기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을 통해 얼마든지 발표할 수 있었다.

자연 생태계와 유사한 모바일 생태계

하지만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볼 수 있듯이, 모바일 환경에서는 가상이동망사업자 등이 콘텐츠의 유통을 통제한다. 앱스토어 같은 장터가 다수의 생산자와 소비자끼리 콘텐츠 거래를 할 수 있는, 공개적인 공동체 기반의 생태계이긴 하지만, 생태계의 경계는 인위적으로 설정되어 있는 셈이다. 따라서 모바일 생태계에는 현재 망사업자가 우점종인 셈이다.

그래서 모바일 생태계는 모바일 기기 제조업자나 망사업자마다 자신의 생태계를 구축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애플뿐 아니라, 구글, 삼성, 엘지, 마이크로소프트, 노키아 등도 나름의 앱스토어를 갖고 있다. 구글도 개방형을 내세웠지만, 최근 네이버 검색 엔진 탑재를 놓고 갈등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볼 때, 서서히 애플처럼 폐쇄된 형식을 지향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따라서 모바일 생태계는 모바일 기기 제조업자, 망 사업자, 콘텐츠 생산자, 소비자의 관계라는 관점에서 보면 아주 개방적이지만, 같은 기기 제조업자나 망사업자, 동일 콘텐츠 생산자 사이에는 경쟁 관계가 있다. 이 점에서 모바일 생태계는 자연 생태계와 유사하다. 개구리라는 같은 자원을 이용하는 뱀과 부엉이가 경쟁 관계에 있듯이, 같은 자원을 이용하는 사업자끼리는 경쟁 관계에 있다.

우리 삶에 녹아들다

▲ 삼성은 갤럭시S에 많은 응용프로그램을 내장시켜 모바일 생태계 변화를 예고했다. 
지금 상황으로 볼 때, 머지않아 각 망사업자가 구축한 모바일 생태계 사이에 본격적인 충돌이 빚어질 법도 하다. 자연 생태계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침입과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 때로는 밀려드는 육상생물에 습지 생태계가 사라지기도 하며, 강어귀처럼 경계 지역에 바다와 육지의 생태계가 뒤섞인 혼합된 생태계가 생기기도 한다. 게다가 모바일 생태계들은 숲과 바다처럼 서로 별개의 환경에 놓인 것이 아니라, 사실상 모바일 환경이라는 한 곳에 구축된 것이다. 심하게 겹쳐져 있다고나 할까? 그러니 조만간 하나로 통일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에이비아이(ABI) 리서치라는 시장 조사 기관은 앞으로 앱스토어가 축소될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삼성이 갤럭시S에 많은 응용프로그램을 내장시켰듯이, 앞으로 모바일 기기 제조회사들이 웬만한 응용프로그램을 내장시켜 판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HTML5라는 새로운 웹 표준 문서 규약이 나오면, 앱스토어를 통해 얻는 기능들을 모바일웹에서 얻을 수도 있다.

그러니 모바일 생태계는 조만간 큰 변화를 겪을지도 모른다. 앱스토어 위주의 폐쇄적인 성격에서 다시 웹처럼 개방적인 성격으로 변한다고 내다보는 연구자들도 있다. 모바일 생태계는 사실상 지식이라는 생태계 서비스를 유통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다. 게임, 뉴스, 책, 동영상 등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앱스토어가 아니라 모바일웹 같은 수단을 통해 제공하는 일도 기술적으로 가능할 것이다.

1990년대 초에 마크 와이저는 “기술이 일상생활에 섞여 눈에 띄지 않는 수준이 되어야 진정으로 발전했다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모바일 생태계는 아직 스마트폰 같은 플랫폼과 앱스토어에 갇혀서 아직 그 수준에 이르려면 먼 듯하다. 하지만 우리를 그런 세상을 향해 좀 더 이끈 것은 분명하다. 적어도 PC라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아마도 세월이 좀 더 흐르면 모바일 생태계는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 녹아들어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 생태계의 일부가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날이 언제 올까?

이한음 과학칼럼니스트

저작권자 2010.06.21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