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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영웅을 찾아서… 창의성은 신화와 전설의 다른 이름

내 안의 영웅을 찾아서… 창의성은 신화와 전설의 다른 이름 2010년 06월 14일(월)

과학창의 칼럼 영웅이 등장하는 신화는 언제나 우리를 가슴 설레게 한다. 가난하게 태어난 그는, 대개 부모님 중 한분이 안 계시거나 혹은 처음부터 고아이기도 하며, 무슨 이유에서 인지 온갖 고초에 시달려야 하는 팍팍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겐 숭고한 진리와 가치를 찾아야만 하는 숙명 같은 목표가 찾아오고, 드디어 집을 떠나 길고 긴 고난의 여정을 시작한다.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던 무수한 고난에 고난을 묵묵히 견뎌낸 그는 마침내 세상을 구원할 진리를 찾아내고, 처음 떠나왔던 그 곳으로 돌아와 두 손 가득 그가 찾아낸 그 소중한 진리를 전파한다. 그의 고단한 역경과 찬란한 업적은 드디어 전설이 되고, 이는 곧 신화가 된다.

신화학자인 조지프 캠벨의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은 전 세계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영웅 신화에 등장하는 영웅의 모험은 그 여정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들려준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끊임없는 도전과 그 지난한 여정에서 만나는 무수한 고난의 극복, 그리고 끝끝내 찾아낸 진리의 전파라는 도식화된 드라마를 보여주는 영웅의 삶은 보통의 우리가 한 번쯤 꿈꿔보는 가치 있는 삶의 궤적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러한 영웅의 삶을 보며 우리는 가슴 설레며 열광한다.

가끔 우리는 신화속의 영웅이 되곤 한다. 신화를 읽으며 영웅의 옷을 입고 영웅이 걸어간 가시밭길 위에 올라서고 극도의 고통을 인내하며 결국 우리 스스로가 영웅이 되고 신화가 되는 꿈을 꾼다. 수천 년 전의 신화와 전설에 지금의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작고 연약해 보이는 우리가 이르고자 하는, 하지만 획득하기엔 불가능할 것만 같던 신적인 권능이 결국은 처음부터 영웅의 내부에 있었던 것으로 귀결되는 그러한 서사 구조를 담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화와 전설의 진짜 매력은 그것의 발현이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는 희소성에 있다. 아무리 가치 있고 소중하다 하더라도 모두가 소유할 수 있는 흔한 것이라면 우리의 심장은 더 이상 두근거리지 않는다.

우리가 창의성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

창의성은 수천 년 전에나 있어왔던 신화와 전설의 구조를 그대로 닮아있다.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창의성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결국 창의성이란 신화와 전설의 다른 이름이다. 더욱이 창의성이란 실제를 확인할 수 없는 허구속의 드라마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만져지고 확인되는 구체적 실체이기까지 한 것이다.

과학이나 음악 혹은 의학이나 미술, 어떠한 분야를 막론하고 창의적이라 이름 붙여진 모든 것들은 “유레카”와 같은 극적인 계시를 받아 구성되며, 존재하던 낡은 것들은 이 새로운 발견 앞에 낙엽처럼 무너진다. 마치 영웅의 칼 앞에 낙엽처럼 무너지는 악의 무리들처럼 말이다. 결국 창의적인 발견은 모두에게 전파되며 드디어 신화와 전설이 된다. 창의성은 바로 신화와 전설 속의 영웅, 바로 그 모습 그대로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파블로 피카소, 지그문트 프로이드, 찰스 다윈……. 이른바 천재라 불리며 각자의 분야에서 신화를 만들어간 무수한 지성들의 이름은 신화와 전설 속 영웅의 재현이며, 우리는 그들에게 열광한다. 우리가 열광하는 진짜 이유는 단지 이들이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었다는 실제적 효용성 때문이 아니라, 이들이 이루고 획득한 신적인 권능, 바로 그것 때문이다.

천재란신적인 권능의 다른 이름이라는 믿음으로 인해 이들의 업적은 미세한 각색을 거쳐 결국엔 신화가 된다. 비록 그것이 우리 모두의 내부에 존재했을 가능성이라 하더라도 실현된 실체는 우리가 절대 이를 수 없는 절대적 권능의 모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에디슨의 전언은 그저 겸손한 천재의 립 서비스가 되어 버리고 만다. 결국 우리가 사랑하고 열광하는 영웅 신화의 정체는 그 고단한 여정과 극복의 과정이 아닌, 영웅으로 자리매김한 이후의 절대적 권능 즉 그 달콤한 열매이다. 우리는 신화의 마지막 결과를 사랑하는 것이다.

창의성은 신화와 닮아있다

창의성은 분명 신화와 닮아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신화의 마지막이 아닌 그 마지막에 이르는 고난과 역경의 과정이어야 한다. 신화와 전설은 비록 그것이 신의 모습을 빌려 얘기된다 하더라도, 이는 결국 인간의 얘기임을 잊지 말자. 신화 속의 영웅이 신의 권능을 차지했다 하더라도 그 영웅은 끝끝내 인간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영웅이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더 이상 우리가 신화 속의 영웅에 열광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그들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들 역시 우리와 같은 보통의 인간이며, 그들이 고통과 절망을 극복한 바로 그 지점이 아름답기 때문인 것이다. 처음부터 전지전능한 영웅의 이야기는 결코 우리를 감동시키지 못한다.

창의성 역시 마찬가지이다. 어느 순간 계시를 받아 유레카를 외치며 극적으로 얻어지는 창의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창의성이 발현되는 데에는 최소한 10년의 강도 높은 연습이 필요하다는 ‘10년의 법칙’은 수많은 연구에서 증명된 보편타당한 원리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고도 알려져 있는 이 법칙은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비틴(Daniel Levitin)이라든가 심리학자 체이스(Chass, W. G.)와 사이먼(Simon, H. A) 등의 연구자들에 의해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

예를 들어, 레비틴은 베를린 뮤직 아카데미 바이올린 전공자들 중 연주 실력이 탁월한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들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단지 연습시간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주가 탁월하고 창의적인 표현이 가능했던 학생들은 5세 이후부터 총 1만 시간이 넘게 연습해 온 반면, 실력이 낮은 학생들의 연습시간은 8,000시간 미만인 것이었다.

또한 국제 체스대회에서 입상할 수 있는 수준의 대가들은 어김없이 최소한 10년간의 강도 높은 준비가 필요했다는 체이스와 사이먼의 연구 또한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후 이루어진 과학과 예술 그리고 문학 분야에서의 후속 연구들은 창의성에 있어서의 ‘10년의 법칙’을 어김없이 입증하고 있다.

창의성 역시 노력의 산물이다

예외는 없다. 타고난 천재성의 전형인 모짜르트 역시 ‘10년의 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신동이라는 찬사로 무장한 모짜르트의 초기 피아노 협주곡들은 이전 다른 작곡가들의 작품을 재배열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진정한 걸작인 피아노 협주곡 9번은 그의 나이 스물한살에야 비로소 만들어질 수 있었으며, 이는 피아노를 배운지 16년 만에 그리고 처음으로 피아노 협주곡을 작곡한지 10년이 흐른 시점이었던 것이다.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천재라는 에디슨의 말이 천재의 겸손이 아닌 까닭은 실제 에디슨의 생애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세상을 밝히는 백열전구의 발명은 15,000번에 달하는 실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은 영웅이 만들어가는 신화의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사실, 15,000번이라는 수치로부터 추정될 수 있는 산술적 계산은 필자에게는 일종의 전율로 다가온다. 하루에 한 번씩 실패를 한다면 일 년이면 365번의 실패가 있었을 것이고, 이렇게 따지면 일만오천 번의 실패는 어림잡아 약 30년의 시간을 담보로 한다. 그 발명의열매가 아무리 달콤하다 한들 마냥 부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신화는 이처럼 끊임없는 노력과 인내로 탄생되는 것이다. 어디 에디슨뿐이겠는가! 현 세계를 이끌어가는 살아있는 영웅 신화의 주인공 빌 게이츠 역시 자신의 회사를 차리기 위해 하버드 대학을 중퇴한 대학 2년 이전 까지 7년간 쉼 없이 프로그래밍을 해왔다는 사실 또한 신화의 진실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신화는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열광하는 지점이 단지 영웅의 손에 놓인 그 달콤한 열매가 빛나는 마지막 장면뿐이라면, 이러한 신화는 우리에게 진정한 신화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신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그것이 결국은 인간의 얘기이기 때문이다. 영웅에게 처음부터 전지전능한 권능이 주어졌고 이로 인해 그가 영웅이 되었다면, 더 이상 우리가 신화 속의 영웅에 열광할 이유는 없다. 최소한 10년이 넘게 하루도 쉬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걸어간 그 무겁고 고단한 발자욱 하나 하나가 소중하고 아름답기에 영웅은 가치 있는 인격이 되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 없어도 혹은 재능을 꽃피울 여건이 부족해도 괜찮다. 아니,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가슴이 뛴다. 신화속의 영웅 역시 타고난 재능도, 재능을 꽃피울 여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집을 떠났고 결국엔 찬란한 전설이 되었다. 처음부터 전지전능했던 영웅은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내 안의 영웅을 찾아 그 먼 길을 떠나야 할 때가된 것은 아닐까? 잊지말자! 한 발을 처음 내딛는 바로 그 순간 이미 우리 안의 영웅은 잠깨기 시작한다는 것을!

임웅 한국교원대학교 조교수

저작권자 2010.06.14 ⓒ Science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