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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포럼] 전자책, 차별화 모델 찾자

[디지털포럼] 전자책, 차별화 모델 찾자
배순희 북큐브네트웍스 대표

입력: 2010-05-25 21:14

외신 하나를 먼저 소개하자. 얼마 전 슬레이트라는 미국 언론에 실린 기사다. 이 기사의 작성자는 이탈리아 철학자 움베르토 에코가 16년 전 했던 비유로 글을 시작한다. 당시 에코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예로들며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의 차이를 설명했다. 비유의 요지는 이렇다. DOS가 기반인 세계에서는 구원에 이르는 길이 다양하지만 맥킨토시라는 유일성을 강조하는 애플은 자신들의 길만이 진리임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16년이 흐른 지금, 에코의 지적은 비유가 아닌 현실이 됐다.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광풍이 세계를 휩쓸면서 움베르토 에코가 비유한 그것처럼 우리는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진리로 인식한다. 하드웨어와 콘텐츠 그리고 아이튠즈와 앱스토어 같은 플랫폼을 그 구성요소로 하는 애플의 생태시스템은 신이 창조한 세계처럼 완벽해 보인다.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 모두가 잡스가 창조한 ?애플 월드?에서 흡족하다.

그러나 한 발 뒤로 물러나 차분히 살펴보면 애플의 생태시스템은 어항이나 수족관을 가두리 양식장 정도로 확장한 것에 불과하다. 크기만 다를 뿐이지 그 결과물은 자연산이 아니라 양식이라는 얘기다. 이곳에선 애플과 잡스가 정해 놓은 기준을 신의 계명처럼 따라야 한다. 따르지 않을 경우 결과는 명확하다. 사라지거나 퇴출되거나.

최근 유일한 아날로그의 영역으로 남아 있던 국내 출판계가 디지털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아마존 킨들로 비롯된 관심이 아이패드를 계기로 상승세를 탔다. 일부 출판계에선 아이폰과 아이패드만이 디지털 출판시대의 대안으로 주장하기도 한다. 출판사가 직접 자사 도서를 구매할 수 있는 아이폰용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하거나 자사의 도서를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으로 제작해 서비스하기도 한다. 게다가 아이패드 출시에 대비, 기존 도서를 디지털로 새롭게 프로듀싱할 계획까지 마련한 출판사도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분명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다. 지금까지 우리 출판계에선 전자책 무용론과 전자책 유해론이 우세했다. 텍스트는 반드시 인쇄된 종이에서 소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무용론의 핵심이었다. 이에 반해 유해론은 전자책의 존재를 너무 무겁게 인식한다. 전자책 판매 증가가 고스란히 종이책 판매의 손실로 이어질 것이란 선입관이었다. 각각의 논리가 전자책의 인식에 있어 정확하게 그 반대의 편에 서 있지만 사실의 실체와 거리가 멀다는 점에선 다르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 킨들의 성공이 전자책의 무용론과 유해론에 금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패드 버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출판계의 지평을 넓힐 수 있을 것이란 희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전자책과 전자출판을 바라보는 출판계의 놀라운 변화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허전하다. 여전히 책의 디지털화 혹은 디지털 출판이 가두리 양식장에 갇힌 느낌을 지울 수 없기때문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변화하고 진화하는 독자들의 요구를 수용하기에 아이폰과 아이패드는 아주 제한적인 공간이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꿈꿀 것이다. 취침 전 침대에 누워 벽에 걸린 TV로 독서하기를 말이다. 어떤 이들은 라면을 끓이는 동안 식탁에 앉아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PC로 짬짬이 독서를 즐기고 싶을 것이며 출퇴근 시간에 몸끼리 부대끼는 지하철 안에선 보다 공간 효율적이고 손쉬운 책읽기를 맛보고 싶을 것이다.

최근 크고 작은 기업들이 전자책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아이리버와 같은 제조업체들이 뛰어들었으며 교보문고, YES24, 인터파크 같은 도서유통업체들도 가세했다. 필자가 속해 있는 북큐브네트웍스 같은 전문업체들도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너나 할 것 없이 전자책 비즈니스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 단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는 플랫폼'이라는 책의 본질을 비춰 이용자(독자)를 만족시키는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곳이 없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시공간에서 다채로운 독서 방법을 충족시킬 만한 서비스까지는 턱없이 부족하다.

출발은 10여년 전에 했으나 국내 전자책 산업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다. 부족하긴 하지만 가능성은 무한하다. 이제라도 아마존의 킨들이나 애플의 아이패드를 그대로 갖다 쓰는데 급급해 하지말고 독자들의 다양한 책읽기를 만족시킬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하기 위해 출판계를 비롯한 유관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그래야 독서도 책도 오랫동안 건재할 것이다.

디지털타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