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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글로벌 아이] 북·중의 동갑내기 두 리더 [중앙일보]

[글로벌 아이] 북·중의 동갑내기 두 리더 [중앙일보]

2010.05.08 03:01 입력 / 2010.05.08 10:25 수정

4박5일간 내내 착잡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5차 방중을 현지에서 취재하면서 느낀 소회다. 북한 신의주와 마주한 중국 단둥(丹東)을 2007년과 지난해 12월 취재했을 때의 느낌과 똑같았다. 용광로처럼 펄펄 끓는 다롄(大連)과 톈진(天津)의 중국 경제 현장을 김 위원장이 찾았을 때, 50여 대의 고급 승용차를 타고 중국 수도 베이징(北京) 한복판의 초고층 빌딩숲 사이를 김 위원장 일행이 질주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착잡하긴 마찬가지였다. 천지개벽(天地開闢)이라고 감탄한 김 위원장의 육성 고백처럼 30년의 개혁·개방으로 경제를 도약시킨 중국, 대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주체사상과 자력갱생만을 외쳐온 북한. 이웃한 두 나라가 흑과 백처럼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이런 극명한 차이는 1942년생 동갑내기 양국 지도자의 통치 스타일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나라님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정치를 펼치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암이 갈리고 백성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2월 16일생)과 후진타오(胡錦濤·12월 21일생) 중국 국가주석의 인생 궤적은 닮은 듯하면서도 다르다. 최고 학부인 김일성종합대학과 칭화(淸華)대학을 각각 졸업했다. 정치경제학을 전공해 선전과 이데올로기에 밝은 김 위원장과 달리 후 주석은 이공계 테크노크라트로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80년대 초 두 사람은 비슷한 출발선에 섰다. 김 위원장은 80년 김일성의 세습 후계자로 낙점됐고, 후 주석은 능력을 인정받아 82년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 서기로 발탁됐다. 하지만 약 30년이 흐른 지금 두 사람은 전혀 다른 현실을 마주하고 있다.

후 주석은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중시하는 최고경영자(CEO)형 리더십을 실천했다. 배불리 먹는 원바오(溫飽) 숙원을 해결했고, 인본주의(以人爲本)로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전 세계의 사람과 돈이 ‘차이나 드림’을 꿈꾸며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미국과 어깨를 겨루는 주요 2개국(G2)으로 성장했다. 당내 합의를 통해 후계자도 순조롭게 내정했다. 반면 김 위원장은 어떤가. 교조적 통치 스타일을 고수할 뿐 제대로 된 개혁을 못하고 한국과 미국에 책임을 전가하기 바빴다. 인민에게 쌀밥과 고깃국을 먹여주지도 못하고 있다. 인민들은 “못 살겠다”며 북한을 탈출한다. 왕조 시대에나 가능했던 3대 세습을 강행할 태세다.

김 위원장은 이번에 후 주석을 만나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는 “4년 만에 다시 중국을 방문하니 중국이 이룬 발전을 새롭게 이해하고 느꼈다”며 “인민의 생활 수준을 부단히 끌어올리는 것이 나의 핵심 임무”라고 토로했다. 김 위원장이 생전에 다시 중국을 방문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다섯 번이나 방문했으니 중국이 왜 이렇게 발전했고, 북한이 왜 그렇게 낙후됐는지를 충분히 깨달았을 것이다. 이제는 말이 아니라 실천으로 북한의 변화를 보여줘야 한다. 김 위원장에게 시간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장세정 베이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