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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

아이폰 세대의 인맥관리 프로젝트

아이폰 세대의 인맥관리 프로젝트
2010.05.04
 
황주연 통신정책연구실 연구원

나는 게임형 인간이 아니다. 초등학교 때 전교회장이라는 명목 하에 가슴에 “덕德)”이라고 쓰여진 배지를 달고 다녀야 했던 때부터 늘 타에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속에 살았던 거 같다. 만화는 물론 불량식품 한 번 사먹은 적이 없고, 심지어 삼촌이 오락실을 데려가도 나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며 문 앞에서 버티던 고지식한 아이였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던 엄마 덕에 학교에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은 친구 선생님들을 통하여 엄마 귀에 들어갔고, 나에게 일탈이란 감히 꿈꿀 수도 없는 단어였다.

그랬던 내가 요즘 작은 일탈에 빠져 있다. 나를 뒤늦게 일탈로 이끈 것은 요즘 아이폰 유저 사이에서 이미 명성이 자자한 “위 룰(we rule)”이라는 게임이다. 위룰은 한 마디로 아이폰으로 하는 온라인게임이다.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왕국 내에 밭을 경작하고 농작물이 자라면 이를 팔아 코인 및 경험지수(XP)를 쌓아 가는 방식이다. 코인이 쌓이면 빵가게나 의상실, 호프집 등의 상점을 지을 수 있고, 여기서 주문을 받아 수익을 올려 가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서는 네트워크 상의 다른 유저(friend)들이 내 왕국을 방문하여 상점에 오더를 넣어야 한다는 점이다. 즉 우리의 오랜 품앗이 전통처럼, friends끼리 서로 주문을 주고 받는 유기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위 룰을 소셜 네트워크 게임(SNG)이라고 한다. 미국에서는 24시간 동안 위룰만 하는 위룰 폐인까지 등장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매니아 층이 상당히 형성되어 있어, 밤새 자란 농작물을 거둬들여야 하는 아침에는 접속이 잘 안 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고백컨대, 나도 자다가 밭에 심어 놓은 게 생각나 깨었던 적이 몇 번 있다.

그러나 위룰은 단순한 온라인 게임이 아니다. 아이폰 유저간의 의미 있는 소통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혼자서 밭을 경작하고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게임이었다면, 아마 이렇게까지 선풍적인 인기를 끌지는 못했을 것이다. 게임 자체가 목적인 일반 온라인 게임과는 달리, 소셜 네트워크 게임은 손쉬운 인터페이스를 통해 모든 연령층의 사용자를 대상으로 사용자끼리의 유대감과 동질성을 증대시킨다는 점에서 새로운 인맥 쌓기 수단이 되고 있다. 싸이월드에서 트위터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진화했듯이, 아이폰을 통해 게임이 소셜 네트워크 수단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폰을 자신의 “분신”으로 생각하는 세대들에게 있어 소셜 네트워크 게임은 더 이상 하나의 오락거리나 킬링타임용 애플리케이션에 그치지 않는다. 고유의 아바타를 캐릭터로 등록해 자신을 소개하고, 지인 간에 서로 주문을 주고 받으며 교류하는 새로운 소통수단인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에 비할 바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매일 들고 다니는 핸드폰을 통해 친구의 주문을 실시간 확인하고, 가끔은 친구의 왕국을 직접 방문해 농작물은 잘 자라고 있는지, 왕국은 얼마나 커졌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는 교류 수단이 된다. 위룰 말고도 소셜 네트워크 게임은 많이 있다. 아이폰 유저라면 당신도 새로운 인맥관리 프로젝트에 동참해 보지 않겠는가.

kis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