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인터뷰

[Weekly BIZ] 달리기의 천재 치타가 슬픈 이유

[Weekly BIZ] 달리기의 천재 치타가 슬픈 이유

  • 서광원 생존경영연구소장
  • 입력 : 2010.04.02 16:24

[SERICEO와 함께하는 창조경영]

치타는 땅위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이다. 시속 110~120㎞를 거뜬히 낸다. 사냥할 때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이다. 사자나 표범은 먹이 앞 20~30m까지 다가가서야 사냥을 개시하지만, 치타는 먼 거리에서도 쏜살같이 달려가 사냥할 수 있다. 그래서 치타의 사냥 성공률(40~50%)은 사자나 표범(20~30%)에 비해 월등히 높다.

치타의 빠른 속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 피나게 노력한 결과다. 치타의 주 먹잇감은 가젤영양이다. 이 동물은 몸집이 작고 워낙 속도가 빨라 다른 동물들이 잘 사냥하지 못한다. 치타는 이 '틈새시장'을 주목했고, 가젤영양을 사냥하기에 적합한 구조로 신체를 진화시켰다. 최대한의 산소를 흡입할 수 있도록 폐를 넓혀 분당 호흡을 60회에서 150회로 증가시켰고, 좀더 많은 혈액 공급을 위해 간과 동맥, 심장도 확대했다. 더 빨리 더 유연하게 뛸 수 있도록 다리와 등뼈는 가늘고 길게 바꾸었다. 바람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턱과 이빨 크기를 줄이고, 몸무게도 40~50㎏으로 줄였다.


이런 '전문화'를 통해 치타는 세 걸음 만에 시속 64㎞까지 속도를 올리고, 1초에 7m씩 세 번 뛸 수 있게 됐다. 말 그대로 '바람의 파이터'가 된 것.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치타의 비극은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 모든 것을 희생해 원하던 스피드를 얻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생존의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치타는 사냥 성공률은 높지만, 왜소한 체격 때문에 애써 잡은 먹이를 절반 이상 빼앗긴다. 가령 표범은 사자나 하이에나를 피해서 먹잇감을 나무 위로 갖고 올라가지만, 치타는 그럴 능력이 없다. 자신이 사냥한 먹이를 빼앗긴 채 물러나는 치타의 슬픈 표정을 상상해 보라.

더 심각한 것은 치타가 가젤영양에만 매달리다 보니 가젤영양의 숫자가 조금만 줄어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는 점이다. 최근 아프리카 개발로 야생 공간이 감소하면서 가젤영양의 수가 줄어들고 경쟁자 간 먹이 다툼이 치열해져 치타는 멸종을 걱정할 위기에 처했다. 전문화가 가져온 부작용이다. 판다곰이 먹이를 대나무 잎으로만 특화했다가 중국 개발 붐으로 대나무 숲이 줄어들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것과 비슷하다.

물론 전문화는 필요하다. 선택과 집중은 자연의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에만 신경 쓴다면 진정한 전문화라 할 수 없다.

진정한 전문화란 헤르만 지몬의 '히든 챔피언'에 사례로 등장하는 세계적 강소기업들처럼 한 우물을 파되, 세상의 변화를 읽고 그 변화에 맞춰 우물을 파는 것이다. '우물을 깊이 파려면 넓게 파라'는 말이 있다. 빨리 팔 욕심에 좁게 파면 시원한 물은커녕 얼마 가지 못해서 삽이나 곡괭이를 사용할 수 없을 만큼 비좁아지고 결국 자신이 판 구덩이에 갇히게 된다.

빨리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제대로 된 방향으로 달리는 것이다.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면 달릴수록 돌아오는 길은 멀어진다. 애써 잡은 먹이를 두고 떠나야 하는 치타의 슬픔은 결코 동물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
  • 제휴안내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