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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터뷰/전문가

스타를 만들고 음악을 팔고 콘텐츠를 생산한다…예능 대세

스타를 만들고 음악을 팔고 콘텐츠를 생산한다…예능 대세
박경은 기자 king@kyunghyang.com
 
ㆍ현실감 친근감으로 대중문화를 장악한 예능의 힘
 
모든 길은 예능 프로그램으로 통한다. 예능을 통해 스타가 탄생하고, 음악이 팔린다. 인터넷을 채운 대부분의 콘텐츠는 그렇게 탄생한 스타들의 일거수일투족이고, 주요 검색어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퍼즐조각들이다.
 
현재 대중문화계를 후끈 달구고 있는 주요 인물들은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게 ‘발견’됐다. 가수 임재범, 김범수, 박정현, 정재형, 배우 김정태 등이 그들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뮤지션 김태원, 음악감독 박칼린도 있다. 이들은 생애 처음으로 CF 모델이 돼 주가를 높이는가 하면 사소한 일상, 트위터를 통한 말 한마디를 화제로 만든다. 모양새로는 ‘벼락스타’지만, 이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오랜 시간 내공을 갈고 닦아온 고수들이다.

지난 2일 방영된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서해안 고속도로가요제 음원은 공개와 함께 차트를 싹쓸이했다. 무한도전 이전에도 주말이 지나면 어김없이 ‘나는 가수다’ 음원이 차트를 장악했다. 그동안 가수들이 해왔던 고전적인 방식의 음반발표는 흥행에 대한 위험부담이 많았지만, ‘나는 가수다’나 <무한도전>과 같은 인기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발표되는 음원은 대부분 흥행불패의 공식을 이어왔다.
 
스타가 되는 길도, 대중문화 콘텐츠가 유통되는 길도 모두 예능을 통하지 않고는 힘들어진 ‘예능 패권시대’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예능이 패권을 쥔 현상에 대해 방송·미디어 환경이 과거와 달라진 데다, 달라진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장르가 예능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문화평론가 김교석은 “2000년대 이전에는 드라마나 영화가 문화 담론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했다면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의 문화 담론은 예능이 맡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의 예능 프로그램은 짜여진 쇼, 각본 있는 프로그램을 본다는 인식이 강했지만 현재는 우리 이웃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거나, 시청자들이 출연자들과 함께 어울리는 느낌을 주면서 대중을 몰입시키는 힘이 가장 큰 장르로 자리잡았다”고 덧붙였다.

 
이는 방송의 트렌드 변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한 미디어 환경의 변화 때문이다. 인터넷을 통한 매체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이를 채울 콘텐츠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TV 출연자들의 일상과 사생활, 사소한 발언까지 인터넷을 통해 확대재생산되는 구조가 자리잡았다. 이 과정에서 예능이 대중문화를 장악했다는 것이다. 현재 예능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의 일상과 말, 감춰진 뒷이야기, 인간적인 모습 등을 보여주는 데 주력하고 있다.


문화평론가 하재근도 “이제 예능 프로그램은 대중음악이나 드라마 등을 하위 장르로 거느린 최종장르가 됐다”며 “인터넷 기사, 댓글의 양과 같은 계량적인 측면뿐 아니라 음반 및 음원 판매량, CF 선호도 등 소비·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체감효과가 두드러지는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부터 쏟아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일반인들은 방송이 진행되면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됐다. 일반인이든 재발견된 유명인이든 일단 대중의 관심권에 들어온 뒤에는 이 같은 인지도를 유지하기 위해 ‘직찍’(직접 찍은 사진), ‘셀카’ 등의 일상을 보도자료나 트위터, 개인 블로그 등을 통해 끊임없이 대중에게 노출한다. 연예인 홍보를 담당하고 있는 한 홍보대행사 대표는 “가수나 배우 본연의 예술적 성취보다는 사소한 일상 사진이나 말 한마디에 더 큰 피드백이 온다”면서 “이 때문에 보도자료 역시 ‘가십거리’라고 할 수 있는 내용을 더 많이 ‘발굴’하는 주객전도 현상도 일어나고 있다”고 털어놨다.

방송국의 한 중견 PD는 “15년 전 입사 당시만 해도 15명의 PD 중 예능을 지망하는 PD는 1, 2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1, 2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능을 지망한다”고 전했다.

이처럼 대중이 예능에 빠져드는 것은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면서도 자극적인 콘텐츠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박진규 교수는 “예능이라는 장르는 현실감과 친근함을 주는 동시에, 웃음거리를 찾기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 위로와 웃음을 찾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예능의 흐름은 가학적인 재미, 폭로성 토크보다는 드러나지 않았던 인물을 되돌아보고, 감춰진 이면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과 재미를 얻는 등 ‘사람’이 중심에 놓여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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