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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할말이 있으리요" 선조가 충무공을 다시 부르며

"무슨 할말이 있으리요" 선조가 충무공을 다시 부르며

노컷뉴스 | 입력 2011.04.27 19:18 | 수정 2011.04.27 19:21

[CBS문화부 김영태 기자]

"오늘 이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말이 있으리요. 무슨 할말이 있으리요" 충무공 탄신 466주년을 맞아, 28일 개관하는 충무공기념관은 선조가 어머니 상중에 있는 이충무공에게 수군통제사를 맡아줄 것을 요청하는 교서를 새롭게 공개했다.

임진왜란이 발발한지 6년째 되던 1597년, 충무공 이순신은 옥에 갇혔다가 백의종군의 명을 받고 풀려났지만, 곧 어머니를 여의는 슬픔을 겪게 된다.그 해 7월 원균이 이끌던 조선 수군이 대패하자, 선조 임금은 상중인 이충무공에게 수군통제사를 맡아줄 것을 요청하는 교서를 내린다. 문화재청 현충사관리소 송대성과장은 "이는 유교를 받드는 당시 조선에서 부모상을 당하면 2년간 관직을 맡지 못하게 하는 관례를 깬 것으로 당시 상황의 얼마나 위급했는가를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이 교서에는 이순신을 통제사직에서 물러나게 해 수군패전을 초래케 한데 대한 선조임금의 후회와 사과의 내용을 담고 있다."그대의 직함을 갈고 그대로 하여금 백의종군을 하도록 하였던 것은 역시 사람의 모책이 어질지 못함에서 생긴 일이었거니와 그리하여 오늘 이같이 패전의 욕됨을 만나게 된 것이라 무슨 할말이 있으리요. 무슨 할말이 있으리요."(기복수직교서 중)

충무공은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뒤로 한채 침몰 직전의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냈다. 이충무공의 공적은 1604년 선조임금이 이순신사후 그를 선무1등공신에 봉하면서 내린 선무공신교서에 잘 드러나 있다."적의 무리들이 달아난 것은 진실로 장군의 전함에 떨고 두려워했기 때문이다...마침내 큰 배가 물길을 잃은 것은, 참으로 조정의 계책이 잘못된 탓이라. 나는 곧은 충신을 저버린 것이 부끄러워 급히 장수의 권한을 돌려주고, 경(충무공)은 충성으로 분발하기에 더욱 힘써서 곧장 회령포로 가서 불에 타고 남은 배를 수습하고 피혜한 병졸들을 거두어 모아서 13개의 다락배로 비로소 앞바다에 진을 쳤는데, 백만 장졸들의 떠도는 넋이 물결 위에 피로 물들였다."(선무공신교서 중)

28일 개관하는 충무공 기념관은 선조가 내린 이 교서를 비롯해 이순신 종가에서 기증한 9점을 포함한 13점을 새로 문화재로 지정하고, 이를 공개한다.

4년의 공사끝에 문을 연 충무공 기념관은 지상 1층, 지하 1층의 유물전시관에 이순신의 발자취와 전투유물은 물론 장검과,전투 4D 영상 등 흥미로운 볼거리들이 많아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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