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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논단] 이과·문과 없애야 저커버그 나온다

[아침논단] 이과·문과 없애야 저커버그 나온다

  • 오세정 서울대교수·물리학
  • 입력 : 2011.01.16 23:10
오세정 서울대교수·물리학

세계 IT 스타 공통점은 지식 편식 없었다는 것
한국은 고교부터 편식 강요 대학은 봉건할거주의 수준
벽 허물려는 움직임 있으나 기득권 훼방 이겨내야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많은 사람에게는 아직 생소한 이름일지 모르지만, 시쳇말로 요즘 '뜨는' 인물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1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하였고, 지난주에는 이명박 대통령의 주례 라디오·인터넷 연설에 등장하기도 하였다. 저커버그는 하버드대학 재학 중 사이버 공간에서 친구들과 만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웹사이트 '페이스북'을 창업했다. 이 회사가 최근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대표적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올해 26세의 나이로 재산이 8조원에 달하는 미국 35위의 부자가 되었다. 우리가 잘 아는 마이크로소프트빌 게이츠애플스티브 잡스를 잇는 IT산업의 새로운 스타가 탄생한 것이다.

이들 IT산업의 스타들은 모두 기업으로 큰돈을 벌기는 했지만, 우리나라 재벌기업가와는 다른 면이 있다. 한국 대기업들은 대부분 자동차나 가전제품처럼 이미 존재하는 시장에서 남보다 조금 앞선 경쟁력을 키워 성공했다. 반면 이들은 개인용컴퓨터나 아이폰, SNS 등 과거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아이디어로 성공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본인들도 엄청난 부를 축적했지만, 여러 사람을 고용하는 새로운 기업을 만들어 사회의 부 축적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우리나라가 최근 기존 제조업의 경쟁력이 후발국가에게 위협당하고 있고 선진국과의 원천기술 격차는 아직도 극복하기 힘겨움을 절감하고 있기에 이처럼 창조적인 기업가 출현을 고대하는 것이다.

한국판 저커버그는 곧 나타날 수 있을까. 사실 이들 IT스타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우선 미래를 이끌어 갈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는 어릴 때부터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능했고, 스티브 잡스는 전자기기를 수리하거나 만드는 일을 잘했다. 그러나 이들이 보통 기술자와 달랐던 것은 기술에만 빠진 게 아니라 기술과 사회,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라는 기계보다 그 안의 소프트웨어가 앞으로 사회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점을 간파하고 뛰어난 사업전략을 세웠다. 스티브 잡스는 대학에서 철학과 서체(書體)를 공부한 것이 애플에서 컴퓨터를 만들 때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마크 저커버그는 대학에서 심리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하였으며, 고등학교 때에는 그리스신화 등 서양고전에 푹 빠져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기술에만 외곬으로 빠진 것이 아니라 인문사회 분야에도 눈이 떠있었기 때문에 남이 생각지도 못한 아주 새로운 사업을 일으켜 사회를 바꿀 정도로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전자제품도 기술적으로 우수한 성능을 넣는 것보다 소비자의 감성에 맞춘 하이터치(High Touch) 제품이 점점 인기를 끌고 있고, 이에 따라 제품·서비스 개발에서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인문사회적 지식이 중요해지고 있다. 과학기술과 인문사회적 능력을 고루 갖춘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학제를 넘나드는 교육이 필수다. 그러나 우리 교육제도에서는 그런 교육이 매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을 이과와 문과로 나누어 지식의 편식을 강요하고, 대학은 전공 사이의 벽이 너무 높아 융합형 인재를 키우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초빙석좌교수로서 서울대를 2년간 지켜본 뉴욕주립대의 김성복 교수가 전공별 벽 쌓기를 "봉건적 할거주의와 다름없다"고 비판하였을까(조선일보 1월 10일자).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벽을 허물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교과부는 최근 수학·과학 교육에 예술교육을 접합해 창의력과 예술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기른다는 목표를 내세웠고, 공학과 디자인학을 연계한 전공을 육성하겠다고 한다. 또한 고등학교 1학년의 국민공통 과학과목은 물리·화학·생물·지구과학의 구분을 허물고 주제별로 학습하는 '통합형' 교과서가 곧 도입될 예정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데 우리 교육은 거북이의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 문제이다. 그나마 여러 이해관계자의 훼방으로 뒤로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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