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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맨-아이팟 운명 가른 ‘음악 접속’

워크맨-아이팟 운명 가른 ‘음악 접속’

한겨레 | 입력 2010.03.08 14:40 | 수정 2010.03.08 15:50 |

[한겨레] 소니와 애플의 엇갈린 희비

소니, 보유 기술·콘텐츠에 집착…새 환경 적응못해

애플, 이용자 중심 음원 다양화…편리한 환경 제공

# 지난달 25일 애플이 운영하는 온라인 음악상점 '아이튠스 스토어'에서 100억번째 음악파일 내려받기가 이뤄졌다. 2003년 서비스를 개시한지 7년 만으로, 하루 400만곡씩 판매된 셈이다. 100억번째 고객은 미국 조지아주에 사는 71살 루이 설서다. 노래는 1958년 발매된 컨트리음악이다. 아이튠스 스토어는 1200만곡의 음원을 보유한 세계 최대 음악유통채널로, 세계 디지털음원 판매시장의 70%를 차지한다. 아이팟은 세계 엠피3(MP3)플레이어 시장의 70%를 점유하고 있다.

# 소니가 1979년 출시한 '워크맨'은 한 곳에서 음악을 감상하던 문화를 바꿔버렸다. 젊은이들의 야외활동 시간이 늘어났고 누구나 이동하며 음악을 감상하는 문화가 생겨났다. 영어권에서 "'워크맨'은 문법에 안맞는 엉터리상표"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1986년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표제어로 올랐다. 소니는 콤팩트디스크(CD)를 채용한 워크맨, 미니디스크(MD) 워크맨, 디지털음원을 담은 제품도 내놓았다. 하지만, 보통명사 '워크맨'의 지위는 '아이팟'으로 대체됐다.

소니와 애플은 음악 재생기와 음원 유통산업에 뛰어들어 각각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혁신' 기업이다. 두 기업의 부침은 디지털 산업의 경쟁요소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2001년 소니와 애플은 공교롭게도 유사한 미래전략을 제시했다. 애플의 최고경영자 스티브 잡스는 "모든 디지털기기를 아우르는 '디지털 중심축(Digital Hub)'을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소니의 안도 구니다케 회장도 "기기와 콘텐츠가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는 유비쿼터스 가치사슬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2009년 애플의 매출은 365억달러로 2001년보다 6배 늘어났고 21%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2009년 12월, 소니의 시가총액은 2001년 1월의 35%에 불과할 정도로 기업가치가 떨어졌다.

소니는 음악 분야에서 앞선 기술력과 콘텐츠를 보유한 기업이다. 워크맨 이전부터 방송·음향장비 분야 최고의 업체였고 '소니뮤직' 등 세계 1~2위 음반업체도 거느렸다. 카세트테이프와 콤팩트디스크의 기술표준을 주도하며 관련산업의 최대 수혜를 누렸다. 디지털음악 재생기도 아이팟보다 2년 앞서 출시했으며, 소니의 엠피3 플레이어는 2008년 국제소비자단체(ICRT)의 품질비교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음질이 뛰어난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애플은 2001년 엠피3 플레이어 경쟁에 뒤늦게 진입했다. 아이팟의 음질은 뛰어나지도 않았고 자체 보유 음원도 없었다. 컴퓨터 제조업체의 '외도'이자 '모험'이란 우려가 뒤따랐다.

산업구조가 바뀔 때 기존 자산은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소니는 자신의 콘텐츠사업 때문에 디지털음원을 싸게 팔 수 없었다. 음질이 높은 독자기술을 지향해온 관성 때문에 엠피3 지원에 소극적이었다. 반면, 애플은 '디지털 허브'를 구상하고 실행에 나섰다. 수요자는 최고의 음질보다는 편리하게 더 많은 음악을 감상하고자 했다. 손민선 엘지(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소니는 자신이 보유한 음원을 더 잘 유통시키려 했지만, 콘텐츠가 없는 애플은 여러 음반사를 접촉해 다양한 음원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며 "유통질서를 바꾸는 사업을 할 때는 기존 사업이 없는 게 유리하다"고 분석했다. 애플은 음원 판매액의 대부분(90%)을 음원사에 돌려주는 제안으로 음반사들의 협조를 끌어내, 최대의 음원을 확보하며 시장 패권을 차지했다.

아이팟의 성공은 '아이튠스'의 편리함과 다양한 쓰임새에 기인한다. 아이튠스는 70대가 50년전 발매된 음악을 손쉽게 찾아 1달러에 사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소비자의 요구와 사용패턴에 최적화된 소프트웨어가 됐다. 애초 음악관리 프로그램이던 아이튠스는 음악상점 기능이 추가되고, 사진·동영상 관리, 교육 콘텐츠, 앱스토어 연결 등 애플의 기기와 콘텐츠를 연결시키며, 스티브 잡스가 말한 '디지털 허브'를 구현하고 있다.

소니가 뛰어난 기술과 자체개발 기기, 소유 콘텐츠를 엮어내 완제품을 만들겠다는 구상은, 결과적으로 폐쇄성과 독자표준이라는 장벽을 쌓은 셈이 됐다. 하드웨어는 제품의 완결성을 추구하는 폐쇄구조다. 출시된 이후 수정과 리콜은 불량을 뜻한다. 소프트웨어 분야는 다르다. 계속 기능이 추가되고 업그레이드를 통해 달라지는 사용자 요구를 반영한다. 소비자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의 우열을 따지기보다 어떤 제품이 더 뛰어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느냐를 중시한다. 소비자 편의를 추구한 애플이, 공급자 지향의 기술에 집중한 소니를 따돌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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