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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내 빚막는 글로벌경제…출구전략서 진퇴양난

빚내 빚막는 글로벌경제…출구전략서 진퇴양난
과거 경제위기땐 적자재정이 `만병통치약`
이제는 저성장ㆍ더 큰위기 주범으로 전락
기사입력 2010.08.17 17:03:34 | 최종수정 2010.08.17 19:04:43 트위터 미투데이 블로그 스크랩

◆ 도전받는 경제학 - 새 해법을 찾는다 ⑤ ◆

모든 경제위기는 빚 때문에 터졌다. 빚의 쓰나미는 많은 기업을 파산시키고 국가 부도사태까지 몰고갔다. 1997년 한국의 외환위기도 금융사 부실과 차입 위주의 기업경영에 의한 빚더미에서 시작됐다. 미국의 금융위기나 그리스발 남유럽 재정위기도 빚잔치에 대한 대가라는 데 공통점이 있다. 한국은 외환위기 때 IMF(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으로 국가 부도사태를 넘겼다. 그 대가로 한보, 대우 등 수많은 기업이 도산하고 실업자 양산 등 많은 부작용을 낳았다.
IMF로부터 꿔온 돈 195억달러를 갚느라 경제는 성장하지 못하고 후퇴했다. 재계 2위였던 대우는 연 20%의 고금리로 부채를 갚지 못해 결국 빚에 허덕이다 몰락했다. `대마불사`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교훈도 남겼다.그러나 최근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위기는 다른 양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잇단 금융위기를 수습하기 위해 각국 정부는 추가적인 빚을 냈다. 미국은 국채를 발행해 달러를 사들였다. 사들인 달러를 빚으로 쓰러져가는 금융회사들을 살리는 데 투입했다. 금융회사의 빚은 크게 줄었지만 이 빚은 대신 정부 빚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민간의 부채를 정부의 빚으로 이전하는 처방을 쓴 것이다.

그리스는 유럽연합(EU)과 IMF가 공동으로 3년간 1100억유로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함에 따라 일단 위기를 잠재웠다. 하지만 그리스 정부가 이 빚을 상환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EU가 그리스 지원을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였다.

과거에 `빚은 상환(deleveraging)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의 글로벌 경제는 `추가적 빚(releveraging)으로 위기만 모면하는` 꼴이다.

`대마불사` 신화도 슬그머니 살아나고 있다. 야자수 모양의 인공섬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두바이 국영기업 두바이월드는 작년 말 590억달러의 빚을 갚지 못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두바이월드의 매출액은 고작 142억달러였다. 하지만 채권단은 모라토리엄 선언 6개월 만에 채권단 채무조정안에 도장을 찍어줬다.

미국 금융위기에서도 사태를 촉발시킨 리먼브러더스는 파산했지만 최대 보험회사 AIG는 수천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통해 살아남았다. 국영 모기지 보증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도 긴급 수혈을 받았고, 베어스턴스는 미 정부가 나서 JP모건체이스에 인수 자금까지 지원하며 합병시키기도 했다.

미국뿐만 아니라 대부분 모든 나라가 빚을 무서워하지 않은 채 무모한 빚 늘리기 경쟁에 돌입한 양상이다. 그리스발 유럽 재정위기도 그런 세계적 분위기 속에 터진 것이다.

가계 경제도 마찬가지다. 빚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유사하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가계가 빚을 얻어 집을 더 살 수 있도록 DTI(총부채상환비율)를 완화해달라는 요구가 높아지는 것 역시 빚을 부추기는 대표적인 사례다.

금융위기에는 돈을 푸는 임기응변적 수단 외엔 방법이 없다. 돈을 풀고 풀린 돈을 억지로 돌게 하는 처방이다. 2008년 금융위기 때 각국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급히 쏟아부은 돈은 천문학적이다. 작년 4월 IMF가 발표한 세계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영국, EU 정부와 중앙은행이 반년 만에 투여한 돈은 8조9550억달러에 이른다.

빚을 빚으로 막는 해법으로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전 세계는 빚더미에 올랐다. 대가가 없을 리 없다. 선진국의 연합인 EU가 후진국처럼 국가부도 위기에 떨고 있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앞으로 글로벌 경제가 안정된 경제적 성장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건전한 재무구조와 부채관리가 필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빚으로 빚을 막다 보니 출구전략에서도 전 세계는 딜레마에 빠졌다. 출구전략 일환으로 금리를 올리면 빚으로 인한 경기 침체가 걱정되고, 출구전략을 미루자니 돈이 너무 많이 풀려 버블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케인스는 불황이 오면 정부가 적자재정을 통해 부족한 수요를 충족하도록 하는 해법을 제시했다.

경제위기 때마다 세계는 케인스의 해법으로 위기를 넘겼고 그의 해법은 만병통치약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적자재정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만성적인 저성장과 잦은 경기 침체에 빠지게 하는 원흉으로 지목됐다. 최근에 와서는 국가부도의 위험성이 공공연히 거론되는 형국이다.

민간의 빚을 정부로 고스란히 이전해 다시 기업과 가계의 과다한 부채로 이전되면서 새로운 경제위기를 촉발하는 시작점이 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가 채무는 탕감이 불가능하다. 과중한 국가채무가 국채이자 지급을 위한 국채 발행 누증으로 이어지면 그 나라의 경제는 `블랙홀`처럼 헤어나기 어렵게 된다. 결국 글로벌 빚더미 경제는 버블과 침체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불안한 성장을 추구할 수밖에 없고 과도한 부채의 부담은 후손 몫이 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현대경제학이 근본적 해법을 찾지 못하는 한 재정 건전성과 경제 회복 두 핵심 가치를 넘나드는 위험한 줄타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병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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