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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스토리텔링

IPTV, 융합콘텐츠 활성화는 시늉만

IPTV, 융합콘텐츠 활성화는 시늉만
애초 정부지원 명분인 `영상산업 육성’ 효과 없고
`통신사 결합상품’으로 저가경쟁…시장질서 해쳐

한겨레 권귀순 기자 메일보내기
» 케이블과 IPTV 가입가구 추이
서비스 20개월 돌아보니

케이티(KT) 등 통신3사가 아이피티브이(IPTV·인터넷텔레비전) 본격 서비스에 나선 지 20개월이 됐다. 4만5000명으로 시작한 아이피티브이 가입자가 지난달 말 기준 228만명으로 늘어났다. 유료방송시장의 강자인 케이블과의 경쟁이 한껏 달아오르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아이피티브이가 결합상품을 통해 ‘저가 경쟁’을 이끌면서 시장을 흐려놓는다는 비판도 있다. 또 방송통신 융합콘텐츠 활성화라는 애초 목표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목소리가 많다.

■ 콘텐츠 발전에 기여했나? 정부가 아이피티브이 도입 당시 내걸었던 주요 목표는 융합콘텐츠를 활성화해 영상산업을 육성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시간채널과 브이오디(VOD·다시보기) 중심의 ‘또 하나의 케이블방송’ 형태로 자리잡은 아이피티브이에서 차별화된 융합콘텐츠는 찾아보기 어렵다.

‘국책사업’에 버금가는 지원을 받으며 탄생한 아이피티브이가 콘텐츠 투자 약속은 소홀히 한 채 ‘유통 플랫폼’ 역할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인숙 경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통신3사는 아이피티브이 도입 시점에 콘텐츠 기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정작 콘텐츠 투자는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케이티 쪽은 현재 콘텐츠 관련 펀드에 1111억원을 출자하고 있음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 실효성에 고개를 갸웃한다. 김민기 숭실대 언론홍보학과 교수는 “정부가 황금알 거위인 양 아이피티브이를 밀어주고 대가로 펀드를 만들게 했지만 새 수익모델이나 새 콘텐츠를 내놓은 게 없어 가시적 투자가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브이오디 서비스 활성화와 플랫폼 증가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케이블보다 아이피티브이 망에서 이용 편이성이 높은 브이오디는 케이티에서만 월 1억6000만편 정도 내려보고 있다. 한 채널사용사업자(PP) 대표는 “브이오디 소비가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제공하는 콘텐츠업체는 수익배분의 수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응휘 녹색소비자연대 이사는 “채널이 다원화되면 콘텐츠는 궁극적으로 탄력있게 성장한다”고 전망했다.

■ 저가경쟁의 덫 아이피티브이는 씨제이미디어 계열 등 주요 피피들이 참여하지 않아 가입자 유치에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할인폭이 큰 결합상품으로 공세적 마케팅을 펼치면서 가입자가 크게 늘고 있다. 케이티는 올 상반기 자회사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 채널과 인터넷티브이를 결합한 ‘쿡티브이스카이라이프’를 출시하면서 저가경쟁을 주도하고 있다. 케이티에 따르면, 월 3만원대인 결합상품 가격 중 6000원이 스카이라이프로 배분된다. 이 액수는 디지털케이블의 반값 수준이다. 에스케이브로드밴드도 가족끼리 이동통신에 가입하면 아이피티브이를 공짜로 끼워주는 마케팅을 계획하고 있다.

케이블 가입자는 지난해 9월 1536만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감소세를 띠고 있다. 케이블방송사업자들은 아이피티브이 사업자들이 통신시장 마케팅에 방송을 들러리 세워 콘텐츠 값어치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선호 씨앤앰 부사장은 “케이블업계는 지난해부터 디지털케이블 전환에 집중투자하며 수신료 정상화에 힘써왔는데, 다시 저가 출혈경쟁에 내몰리게 됐다”며 한숨지었다. 씨제이미디어의 한 관계자도 “유료시장 콘텐츠가 저평가돼 수신료를 올려야 콘텐츠업체의 투자여력이 생기지만, 통신과 가입자 경쟁을 하다 보니 더 낮아질 판”이라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철기 케이티 홍보실 차장은 “저가 경쟁에서 케이블도 자유롭지 못하다”며 “피피들에 나눠주는 수신료도 케이블보다 많고 지상파 콘텐츠에도 저작권료를 지불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 대안은? 우선 신규매체 도입 때마다 공언한 ‘방송산업 발전과 고용창출’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철저히 정책평가를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인숙 교수는 “융합콘텐츠 생산에는 관심 없고 마케팅 수단으로만 활용하는 특정 사업자를 정책적으로 배려해줄 필요가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합상품 요금 승인 때 방송 수신료의 하한선을 둬야 한다는 견해도 제시됐다. 강혜란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은 “유료방송시장은 수신료 중심으로 돌아가야 방송산업이 활성화된다”며 “결합상품 승인 때 방송 수신료의 하한선을 정해 콘텐츠업체에 적정 수신료가 배분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귀순 기자 gskw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