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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메리카의 비수’로 전락한 코리아

차이메리카의 비수’로 전락한 코리아

시사INLive | 이종태 기자 | 입력 2010.08.05 10:35

1949년 건국한 신중국(중화인민공화국)의 초대 주석인 마오쩌둥은 "우리 침대 옆에서 코 골겠다는 자들을 용납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 7월 말 동해에서 전개된 한·미 연합훈련 '불굴의 의지'는 중국을 격분시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침대 옆에서 코를 고는' 정도가 아니라 '총을 겨눈' 것이기 때문이다.

장소를 서해에서 동해로 옮기기는 했으나, 이번 훈련에는 미국의 초대형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21세기 최고의 전투기'로 불리는 FA22 랩터 등 첨단 대형살상 무기가 총집결했다. 중국은 간담이 서늘했을 것이다. 전투기 80여 대와 전투원 6000여 명이 탑승할 수 있는 조지워싱턴호의 작전 반경은 1000km에 달하는데, 한반도 근해에서 베이징까지는 300~400km에 불과하다. 중국 공산당의 공식 영문 기관지인 '차이나 데일리'(7월12일)는 "한·미 연합훈련은 중국의 안보에 대한 도전이고 지금의 중국은 제국주의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1세기 전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격분했다. 중국은 한·미 연합훈련이 명목상으로는 '천안함 사태'와 북한을 내걸고 있지만, 진정한 속내는 '미국의 중국 포위망 구축'이라고 보는 것이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 외교 국방장관 회의에 앞서 손을 모은 양국 외교·국방 장관들.

"우리 침대 옆에서는 코도 골지 말라"

중국의 동쪽 포위망이 한국과 일본이라면, 남쪽에는 서남아시아 국가들이 있다. 실제로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최근 전임 정권(부시 행정부)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때문에 소홀했던 서남아시아에 대한 개입(engagement)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우선 미국 주도의 림팩(세계 최대의 다국적 해상 훈련)에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를 최초로 참여시켰고, 외교적 친북 성향인 베트남·라오스 같은 국가에도 접근하고 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은 7월 초 워싱턴에서 베트남 전쟁 이후 최초로 라오스 외무장관과 고위급 회담을 벌인 데 이어 같은 달 말에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다는 명목으로 베트남을 방문했다. 같은 시기, 친중 성향인 캄보디아에서 미국 주도의 다국적 군사훈련인 '앙코르 센티널'(앙코르의 파수꾼)을 수행하기도 했다. 오는 11월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인도를 방문해서 50억 달러 상당의 무기 거래를 시도할 전망이다. 미국은 2005년부터 인도와 연합 해상훈련을 매년 실시하고 있다.

한편 미국은 중국의 서쪽인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등과는 이미 군사협력을 수행하고 있거나 그 나라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와 함께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있는 몽골이 '앙코르 센티널' 훈련에 참여하는 등 미국의 군사 네트워크는 중국의 북쪽 국경선까지 뻗어가고 있다.

중국 역시 말과 행동으로 미국에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글로벌 타임스'(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환구시보'의 영문판) 7월14일자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국이 쿠바를 봉쇄한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미국이 계속 도발적 행위를 일삼으면 중국이 군사력으로 (서해를) 봉쇄하는 사태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미 연합훈련을 계기로 한반도 근해에서 미·중 군사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또한 중국군은 '불굴의 의지' 훈련 기간 내내 서해 인근에서 대규모 군사시위를 벌였다.

중국 시각에서 이번 한·미 연합훈련은 '동쪽'에서 벌어지는 '중국 포위망'의 일환이다. 더욱이 한·미 양국은 오는 9월에는 중국 내륙에 더욱 근접한 서해에서 다시 연합훈련을 실시하는 등 연말까지 한 달에 1~2차례 지속적으로 무력시위를 벌이겠다고 공언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미 연합훈련에 동원된 미국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에서 전투기들이 출격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중국 봉쇄'가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전략은 아니다. 오히려 오래전부터 수행되어 왔으나 최근 들어 '노골화'되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유지되어온 미·중 밀월관계가 해체되고 있는 것일까. 2000년 이후 미국과 중국은 매우 유기적인 협력체제를 유지하며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뤄왔다. 하버드 대학의 저명한 경제사학자인 니얼 퍼거슨 교수가 미·중 간 협력 시스템을 가리켜 '차이메리카'(ChiMerica)로 부를 정도였다. '차이메리카'는 China(중국)와 America(미국)의 합성어로 두 나라가 '한 몸' 처럼 움직인다는 의미다.

이 차이메리카 체제에서 중국의 성장동력은 자국 내의 저비용 노동력으로 생산한 값싼 생필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것이었다. 이 상품들을 가장 많이 사들인 나라가 미국이다. 미국의 대형 할인매장 월마트 매출의 70%가 중국산일 정도였다.

중국이 '생산국'이었다면 미국은 '소비국'이었다. 미국인들은 사고 사고 또 샀으며, 돈이 떨어지면 빌려서 소비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2000년 이후 금융위기 때까지 미국의 저축률은 사실상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퍼거슨 교수에 따르면, 2000~2008년 미국의 총소비는 총수입보다 45%나 많았다. 1000달러를 벌어들이는 동안 1450달러를 쓴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2006년 한 해에만 GDP의 6%인 8500억 달러에 달했다.

개인이든 국가든 '적자'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메워야 한다. 그런데 2000년대의 미국에는 '적자'를 끝없이 메워주는 '자금의 원천'이 있었다. 바로 중국이다.

중국은 자국산 저가 상품을 미국 등에 팔아서 엄청난 경상수지 흑자를 쌓아두고 있었다. 중국은 이 흑자로 미국의 국채를 구입했는데, 이는 사실상 미국에 돈을 빌려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빌린 돈으로 미국은 자국의 적자를 메웠다.

어떻게 보면 중국은 자국산 상품을 팔기 위해 미국에 계속 돈을 빌려준 것이다. 이런 과정의 결과로 현재 중국은 2조 달러 정도의 외환보유고를 가지고 있는 반면 미국의 순외채 규모는 2조7000억 달러에 이른다.

이 같은 차이메리카 체제로 미·중 양국은 각자 재미를 볼 수 있었다. 중국은 수출 증대로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달성했고, 미국은 적자 걱정 없이 마음껏 소비할 수 있었다.





ⓒAP Photo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하는 기축통화로 성장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부작용도 컸다. 중국 경제학자 헝호풍은 자신의 논문인 '미국의 으뜸 하인(Head Servant)인가?'에서, 중국은 수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국내 제조업 부문의 임금이 오르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농촌을 파산시켰다고 주장한다. 파산한 농촌 인구는 도시로 이주하면서 노동 공급을 늘렸고 이는 다시 임금 수준을 낮췄다. 그런데 이처럼 농촌이 쇠락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이 낮으면 내수가 바닥을 기는 수밖에 없다. 2000년대 중반에도 중국의 총소비는 GDP의 20%에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50% 내외인 동아시아 국가들, 60~70%인 서구 선진국들에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낮다.


"차이메리카는 키메라였다"


중국이 수출을 확대한 또 하나의 방법은 자국의 통화(위안화) 가치를 낮추는 것이다. 그래야 해외에서 판매하는 중국 상품의 가격을 내릴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공장'으로 불릴 만큼 수출을 많이 하는 중국의 통화(위안화) 가치는 지금보다 크게 높은 것이 정상이다. 해외에서 중국의 상품을 수입하려면 위안화를 먼저 사야 하고, 이는 위안화에 대한 수요를 늘려 그 통화가치를 높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대량으로 위안화를 팔고 달러화를 사는 방법으로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왔다. 이는 중국의 서민들에게는 매우 불리한 정책이었다. 저평가된 위안화는 수출품의 경우와 반대로 수입품의 가격을 올려 내수 활성화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즉, 차이메리카는 적어도 중국의 서민들을 부유하게 만들어 내수시장을 확장시키기 어려운 체제였던 셈이다.

다른 한편 미국의 경우, 중국의 자금이 계속 들어온 덕분에 자금 공급이 확대되면서 낮은 금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런 저금리에 따라 소비 수요가 늘고, 부동산 투기가 판치면서 이번 금융위기가 터진 것이다. 퍼거슨 교수는 지난해 말 발표한 < 차이메리카의 종언 > 에서 "미국에서 '차이메리카'는 더 소비할 수 있고, 더 적게 저축해도 괜찮으며, 낮은 이자율과 안정적 투자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라고 썼다. 그러면서, 알고 보니 차이메리카(ChiMerica)는 키메라(Chimera: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머리는 사자이고 몸통은 산양인 괴물)였다고 말장난까지 했다.


"미국은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 원한다"


그러나 이런 차이메리카 체제가 2008년 가을 세계 금융위기 이후 동요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포위망'이 노골화된 것도 이에서 파생된 현상 중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이제까지 보았듯이 차이메리카 체제는 미국의 소비가 끊임없이 증가해야 유지될 수 있다. 그리고 중국이 자국의 경상수지 흑자로 미국 국채를 사는 이유는 그나마 달러화가 안정적이기 때문인데, 미국 경제가 불안해지면 차이메리카를 유지할 필요가 줄어든다.





ⓒAP Photo 오바마 대통령(왼쪽)과 후진타오 중국 주석(오른쪽)이 글로벌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중국에 '위안화 절상 요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위안화가 오르면 중국 수출품의 가격 인상으로 중국의 성장동력인 수출 부문이 쇠락할 수 있다. 중국 체제에 대한 위협이다. 중국은 2005년 이후 위안화를 조금씩 평가절상해왔지만 미국의 요구는 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퍼거슨 교수의 경우, 위안화가 정상적 수준에 비해 30~48%까지 과소평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위안화 절상이 중국에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많다. 예컨대 위안화 가치가 올라가면 중국이 수입하는 물품의 가격이 내려가기 때문에 중국의 내수시장이 활성화될 수 있다. 그래야 서구 선진국들의 소비 경기에 따라 갈대처럼 흔들리는 중국 경제가 정상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미국에 비견할 만한 '패권국가'로 성장하려면 미국의 소비·금융 시장에 의존하지 않고, 자국 내에 거대 시장을 창출해서 해외의 수출품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다른 국가들이 중국에 수출한 대가로 받은 위안화를 활발히 거래하고 금융시장에 유통시키면서 위안화가 기축통화로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미국은 중국을 자국과 비견할 만한 패권국가로 성장시키기 위해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일까. 국제경제 전문가인 인천대 이찬근 교수는 미국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위안화 절상이 아니라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이라고 주장한다. 현재 해외 투자자들은 규제 때문에 중국의 주요 대기업 주식을 의미 있는 규모로 사들일 수가 없다. 자국 산업이 해외 투자자에게 지배당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조치다. 그래서 "미국은 서방 투자자들이 중국의 주요 기업에 대해 영향력 있는 지분을 확보해서 중국의 경제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금융책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이 같은 논지에 따르면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는 진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견제구'에 불과한 셈이다.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에 중국도 '견제구'를 던지고 있다. 중국의 인민은행 총재는 가끔 미국 국채를 계속 사들이는 것에 대해 회의를 표시한다. 심지어 중국은 서구의 3대 신용평가기관(S & P, 피치, 무디스)을 대체할 것을 목표로 '다공'이라는 중국적 신용평가기관을 내세워 서구 선진국의 신용등급을 낮게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연안 수출지역 출신 지배 엘리트들은 현 상황(차이메리카)을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헝호풍은 주장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차이메리카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글로벌 강대국인 미·중이 격돌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양국은 상대방을 위협할 무기(위안화 절상, 중국의 대미 채권 등)도 가지고 있다. 미·중은 이 무기들을 활용하며 이후의 차이메리카 체제를 자국에게 좀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복잡다단한 전략을 구사할 것이다. 이런 전략 중 하나가 지난 7월의 한·미 연합훈련과 중국의 대규모 군사훈련이라면, 한국은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비수'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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